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 경자년 동안거 결제법어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 경자년 동안거 결제법어
  • 김원행 기자
  • 승인 2020.11.30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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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마대사의 스승인 인도의 반야다라 존자가 국왕의 청을 받아 독경을 하게 되어 모든 대중이 경을 읽고 있었는데, 반야다라존자는 가만히 있기만 했다. 왕이 이상히 여겨 묻기를 "다른 스님들은 경을 읽는데 존자께서는 왜 경을 읽지 않습니까?" 하니, 반야다라존자는 대답하기를 "저는 숨을 내쉴 때 모든 인연에 간섭되지 않고 숨을 들이 쉴 때에 음계(陰界)에 머물지 않으면서, 언제나 이와 같이 백 천억의 경을 읽습니다. <出息不涉諸緣 入息不居陰界 常轉如是經 百千萬億卷>"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한 쪽으로 치우쳐 두 손을 다 거두어들인 것이다. 이 산승은 이와 다르게 두 손을 다 펼쳐 보이겠다.

 "나는 소리 내어 독경하면서, 숨을 내쉴 때 뭇 인연을 간섭하고, 숨을 들이쉴 때 오음과 18계에 머물면서 백천억경을 읽는다.<出息涉衆緣 入息居陰界 常轉如是經 百千萬億卷>"고 하리라.

 소리내어 읽던 가만히 있던, 이와 같이 경전 백 천억의 경을 읽으면, 낭함(琅函)의 옥축(玉軸)과 용궁(龍宮)의 장경(藏經)들이 남의 것이 아니다.

 운거(雲居)선사가 어떤 학인(學人)에게 묻기를 "읽고 있는 것은 무슨 경인가? <念底是什麽經>"하니, 대답하기를 "유마경을 읽습니다.<念維摩經>" 운거스님이 "나는 유마경을 물은 것이 아니다. 읽고 있는 것이 무슨 경인가?<不問維摩經 念底是什麽經>" 하였다. 학인은 그 말을 돌이켜 듣고 깨침을 얻었다.

 경을 읽고 있는, 읽을 줄 아는 이것은 성색(聲色)이 아니며 취부득 사부득(取不得 捨不得)이니 이름을 붙일 수 없으나, 지금 말하고 행동하는 그 가운데 아주 분명하다.

 이 경을 읽을 줄 아는 이것은 언제나 홀로 밝게 비추면서 비대면으로 깨어있는 마음 즉 각조심(覺照心)으로 그 공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불법(佛法)의 공부는 비대면(非對面)의 공부이며 밑천이 들지 않는 공부법이다.

왜 그런가? 이미 모든 것이 자기에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반조하면 텅 비어있으면서도 가득하고 가득하면서도 텅 비어 있는 오묘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다.

 혜가(慧可)스님은 달마스님에게 "스님,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하니, 달마 스님은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안케 해주겠다."하니, 혜가는 "마음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하므로, 달마는 "네 불안한 마음이 사라졌구나."고 하였다.

 비슷한 이야기로 승찬(僧璨)스님은 혜가(慧可)스님께 "스님, 저의 죄업을 없애주십시오."하니, 혜가 스님은 "그래! 그럼 그 죄업을 가져오너라. 씻어주겠다."하므로, 승찬이 "그 죄업을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하니, 혜가는 "네 죄업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불안도 죄업도 반조(返照)해보면 모두 실체가 없으니, 모든 소유상(所有相)은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靜坐絶塵埃 고요히 앉았으니 티끌먼지 사라지고

虛空無皮殼 허공은 둘러싸인 껍질조차 없는데

對面不相見 마주하고 있어도 서로 보지 않으니

靈光照兎角 신령스런 광명이 토끼뿔을 비추네.

 불법수행에 가장 좋은 것으로는 스스로 자기를 반조하면서 바깥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별달리 따로 볼 것이 없어지는, 즉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볼 것이 없고 할 것이 없는 사람을 무위(無爲)의 한도인(閑道人)이라 한다.

 지금 바깥세상은 코로나뿐만 아니라 온갖 삼재팔난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러니 이번 동안거는 출가자나 재가자나 각자의 위치에서 화두참구를 하던, 비파사나를 하던, 간경을 하던, 사경을 하던, 염불이나 다라니를 하던, 육바라밀로 대중외호를 하던지, 비대면으로 스스로 포살(布薩)하고 스스로 자기를 반조(返照)하며 바깥 외연의 어떤 삼재나 팔풍에도 흔들림 없이 각자 본분자리에서 참으로 '별 볼일 없는' 그런 안거를 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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