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 선각자들의 위대한 발자취
근대불교 선각자들의 위대한 발자취
  • 소암 스님
  • 승인 2020.10.1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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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 흥선대원군이 예산으로 남연군 묘를 이장하고 7년 뒤에 왕기(王氣)를 가진 고종을 낳은 집
운현궁 :: 흥선대원군이 예산으로 남연군 묘를 이장하고 7년 뒤에 왕기(王氣)를 가진 고종을 낳은 집

 

조선조말엽인 19세기는 세계열강들이 각각 아시아를 집중적으로 진출하고 각축전을 벌이던 때 였다.

이미 15세기부터 유럽은 화포와 군함으로 약소국들을 식민지로 개척하는 시대를 열고 아프리카와 인도 미대륙을 항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의 강대국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미와 아시아를 탐험하고 정복에 나섰다 남미의 침략과 중국 일본등을 호시탐탐 노리며 우월한 군사력으로 '원주민 인종청소'를 하고 드디어 남미대륙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16세기 일본이 포르투갈로 부터 총과 화포제작기술을 전수받고 단련된 군사력으로 조선과 명나라를 침략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꿈꾸었으나 '명나라사대주의'를 신봉하는 조선유교정권이 극렬하게 저항함으로서 무려 '7년전쟁'이라는 기나긴 조명일, 요즘말로 한중일의 국제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수년전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예고할수 있었고 일본의 비공식 사절들도 여러번 경고성정보를 알려줬음에도 당시 조정은 일본을 '섬나라왜구'라고 무시하면서 귀를 귀우리지 않았다. 하기야 4백년후의 현대에도 친정부성향의 젊은 한국인은 일본이 선진국가임에도 여전히 '토착왜구'라고 부른다

작은 나라 일본이 큰나라 조선을 침략한다는 것은 가당치않고 불가능한 일로 일축했다 거기에 덧붙여 인의예절도 없는 야만인들이 공맹의 나라를 어찌 하겠다는 것은 망상이며 아예 상상할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이 일본사절로 가서 일본을 무력통일한 실력자 풍신수길,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난 역사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황윤길은 '풍신수길의 상이 매우 교활하고 영리해서 전쟁도 능히 일으킬 범상치않는 인물'로 본 반면에 김성일은 '소인배의 상으로 그릇이 작아 큰 일을 치를 인물이 못된다'고 조정에 고했다.
 
부산과 가까운 대마도는 그때만 해도 수백년동안 조선에 조공을 바치고 식량을 조달받는 처지로서 조선에 우호적이었다 대마도주의 막료측근인 승려, 현소는 조선에 올때마다 일본이 침략을 준비하므로 대비해야 된다고 조정과 관원들에게 간언했으나 조선조정은 일본을 능멸하고 그때마다 웃어 넘겼다.

임진난후 250년이 지난 조선말기의 통치자 대원군도 대일본의 외교는, 나라가 망하는 길이며 일본은 한낱 야만의 오랑캐에 지나지 않고 일본과 수교를 거론하는 사람은 모두 역적으로 몰았다.

일찍이 선진 청나라의 문물을 보고 진보적인 선각의 길에 들어선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는 사대부로서 명망이 깊은 인물로 대원군정권에 수없이 일본을 비롯 미국 불란서와의 교역과 문화교류를 건의했지만 대외적인 식견이 없고 오로지 중국밖에 몰랐던 대원군은 '척사비'를 전국에 세우고 개혁개방을 위한 언로조차 금했으니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의 혼란기에 국민의 인권과 표현,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반공법 보안법과 유사한 독재정치자와 다름없었다.

물론 그 완고한 대원군도 며느리 민비 명성왕후와 오랜 권력투쟁끝에 청나라에 납치되어 강제귀양을 갔고 그후 조금 국제정세에 눈뜨고 청일 러일전쟁후 일본의 영향력이 막강해짐으로서 일본을 다시보고 일본에 의지해 권력을 재창출할 기회를 노렸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대원군은 노쇠했다.

특히 수십년간 며느리 민비, 민문일가와 권력투쟁을 벌였으나 민비가 일본에 의해 시해당함을 보고는 비로소 인생무상을 깨달았을 것이다.
대원군이 정권초기에 국제정세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박규수 유대치 이동인스님같은 개화선각자의 국정철학에 눈떴뜨라면 조선왕실의 개혁정치가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금을 막론하고 기득권 보수수구세력들은 사리사욕과 폐쇄적인 생각이 전부이고 미래지향적인 안목이 막혀있어 미래에 대한 통찰과 세상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전무한 것은 공통적이다.
지금도 한국의 반공보수세력들은 대원군시대와 해방후 독재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국민들은 반공보수세력에게 희망을 가질까 회의적이다.
 
불교선각자 유대치 오경석 이동인스님의 만민평등사상
 
대원군시대의 마지막왕조인 고종황제시기 19세기중반에 일본과 서양문물에 눈떤 민족선각자는 한약사 유대치와 역관 오경석 통도사승려 이동인스님과 범어사승려, 무불이 유일하였다 이 네분의 공통점은 당시 승려가 천민신세로 도성출입도 자유롭게 못하던 시절이었으나 중인계급인 오경석과 유대치는 이동인스님의 그릇을 알아보고 같은 중인계급의 동지로 평등하게 대하였다.

물론 선각자 네분의 배경에는 정승판서의 높은 신분인 박규수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18세기말 서구열강의 동아시아진출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미 수백년전 서구의 과학기술을 맛본 일본은 드디어 250년간을 지배하던 막부와 투쟁끝에 명목상의 천황제를 유지한채 내각책임제로 전환하였으며 내각총리가 국정을 총괄하는 문인혁명을 일으켰다 사무라이 무인정권이라 하나 독실한 불자이며 실용주의 정치가인 도쿠가와 이데야스 ,덕천가강은 임진난 침략자 도요토미 히데요시, 풍신수길의 세력을 물리친 실용정권으로 조선과 250년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조선의 영조 정조정권이 전쟁이 없는 경제문화의 탕평정권이 가능했던 이유의 한가지다

일본은 명치유신이 성공하고 근대화국가가 되면서 청나라와 미러영불의 서구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국력이 급신장된 나머지 작은 나라지만 근대화에 한발 앞선 일본이 강대국들의 주사위판인 조선에 무력진출해 마침내 청나라와 러시아를 물리치고 서구열강으로 떠오른 미영의 지원아래 조선을 약탈, 식민지화한것은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당연한 인과응보요 역사의 흐름이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인류사는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벗어날수 없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약소국의 변명이고 항의의 표현인 침략자 정복자 약탈자의 야만행위는 분명하지만 역사는 선악의 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 볼 것이다
근대백년사에는 한일합방과 3.1독립운동이 있었고 세계1차대전과 2차대전이 발발했다 조선조가 망국으로 가고 식민지와 해방 분단 독재정권 유엔미국의 장기주둔의 세월이  숨가쁘게 흘렀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남북 평화시대는 과제이며 화두
 
성리학의 완고한 세상에 오직 대외문물이나 안목은 없이 오직 중국만 바라보고 살았던 조선말의 대원군과 유교사대부의 나라는  계급사회로 승려를 비롯한 수많은 천민들을 탄압하고 여성 어린이 기술자 중인계급을 차별하면서 같은 양반사대부끼리 권력투쟁에 골몰했다.이미 천년전 신라 백제 고려의 빛나는 선조의 역사인  해외개방 개혁정책은 망각하고 눈먼 맹인과 같은 지도자만 존재했다.

문제는 '역사는 과거현재뿐 아닌 미래에 대한 통찰'이라고 한 에드워드 ,카의 이론대로 우리는 과거역사란 흘러간 물이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오직현실만 존재하는가?
급진개혁자인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등의 개항개혁세력은 결국 역부족으로 실패하고 강대국에 대한 응전의 정책은 실종된채 조선왕조는 망국과 식민지로 이어졌다.

역관 오경석의 아들,오세창은 3,1운동대표의 독립지사였고 그분의 외조카가 바로 50년대 '조계종정화개혁운동'을 이끈 범어사 조실 하동산 대종사다.

또한 일본의 천년고찰 교토의 동본원사의 말사인 부산대각사는 일본이 최초로 세운 사찰로 이동인스님이 주지와 교토 동본원사주지를 움직여 일본고위층을 비롯한 정치거목들과 연이어 미영러제국의 외교사절까지 친교를 맺음으로써 외교에 무지한 조선왕조가 후일 대외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역할을 하는 공을 세웠다. 일본과 외교사절문서에는 이동인스님이 탁월한 외교수완과 외국어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그러나 호사다마인가 이동인과 개화파세력의 활약에도 조정은 여전히 대원군과 민문일가의 수구세력이 장악해 겨우 개항에 눈떤 고종과 민비 개화파등의 소수가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종의 밀사로 일본에 한번 다녀온 이동인스님은 개항과 개혁을 시기하는 수구세력에 의해 암살되고 그후 '3일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등은 망명했으나 자객에 의해 죽고 개방개혁의 개항은 좌절되었다.
21세기의 남북은 비무장지대를 마주하고 지뢰와 첨단무기로 전쟁중이다
후방의 국민들에게는 전쟁없는 평화지만 한시적평화로 늘 남북갈등이 존재한다 대원군이후 150년이지만 본질적인 변화가 있는가
강대국에 의한 남북의 미래를 어떻게 헤쳐갈 것인가 시대의 화두가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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