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말하는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스님들이 말하는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 조현성 기자
  • 승인 2020.10.13 15:23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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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적명을 말하다’

“적명 스님은 강골 기질에 직선적인 성격입니다. 정면돌파형이죠. 적명 스님의 이런 추진력 있는 성격이 오늘날의 봉암사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대중들을 잘 살폈고 거기에 더해 원로선원까지 개원했습니다. 적명 스님이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못했을 일입니다. 최근에는 세계명상마을 불사까지 챙겼습니다. 대단한 추진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적명 스님은 참선수행을 잘 하려고 애쓴 전형적인 수좌입니다. 스님의 기질과 성격 자체가 수좌에 딱 맞았어요. 참 섭섭하게 가버렸습니다.” 무여 스님(축서사 문수선원 선원장)

“죽음보다 중요한 것은 삶입니다. 평생의 삶을 놓고 얘기를 해야지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요. 죽음의 형태는 몸뚱이를 버리는 방법의 차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적명 스님은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걸어간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욱 존경합니다. 우리 시대에 스님 같이 고집스럽게 수행자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 계셨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역대 조사스님들 가풍이 적명 스님과 같은 분들 덕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훗날 사람들은 현대 한국불교에 적명 스님이 있었기에 행복한 불자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혜국 스님(석종사 금봉선원 선원장)

“간화선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소개받는 분이 적명 스님이었습니다. 서구학자들은 선적인 대화에 익숙지 않습니다. 단도직입 같은 것이 잘 통하지 않아요. 적명 스님께서는 스타일이 전혀 다른 서구학자들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실 수 있는 엄청난 역량을 가지고 계셨어요. 평생 봉암사에서 조실을 마다하고 수좌로 계시면서 외국의 스님들과 학자들에게 한국의 간화선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던 적명 스님의 열반은 불교계에 너무나 큰 손실임에 틀림없습니다.” 원택 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적명 스님은 수행의 모든 것을 체험한 납자이면서 이론에도 통달하셨습니다. 초기불교는 물론 대승과 선에도 매우 해박했습니다. 리더십도 뛰어났습니다. 대중들을 이끄는 힘이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강자들에게는 엄청 강하셨고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약한 분이었습니다. 또 정의감도 대단해 교단의 모순이 보이면 발언하는 것을 서슴치 않으셨구요. 최고의 선원이자 수좌들의 고향인 봉암사에서 당신의 법을 좀 더 펼치시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의정 스님(전국선원수좌회 상임대표)

“제가 죽비를 잡았던 철이었습니다. 해제 전날 자자(自恣)를 마치고 대중들과의 교감 끝에 스님을 큰방에 모시고 말씀을 올렸습니다. ‘대중의 이름으로 스님을 조실로 추대하겠습니다.’ 말씀을 듣던 적명 스님은 물러서지 않으셨어요. ‘고우 스님과 나는 이미 오래전에 조실 같은 소임을 맡지 않기로 약속을 했네. 만약 내가 조실을 안 해서 봉암사가 잘못된다면 하겠지만 우리 대중들이 이렇게 잘 사는데 그런 일이 있겠어?’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결국 스님을 조실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영진 스님(인제 백담사 무금선원 유나)

신간 <적명을 말하다>는 지난 2019년 말 홀연히 입적한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을 기록한 책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에서 후학들을 지도해온 적명 스님과 오랫 동안 인연 지어온 불교계 원로, 중진 스님들이 수좌 적명의 삶과 수행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

지난 2009년 대중들이 봉암사 조실로 추대했을 때 적명 스님은 이를 고사하고 봉암사 수좌로 들어갔다. 당시 적명 스님은 “나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조실 말고 수좌로 살겠다’라고 했고 그렇게 살았다. 스님은 후배들과 함께 큰방에서 같이 정진했고 함께 울력하고 함께 공양하며 철저하게 대중생활을 했다. 평생 대중을 떠나지 않고 살아갔기에 많은 수좌들이 존경하고 따랐다.

적명 스님은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걸어간 수행자다. 수행자는 수행과 행이 따로여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그런 확신으로 종단에 일이 있을 때면 직언을 서슴치 않았고 때로는 행동도 불사했다. 이런 모습들이 자신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기에 많은 수좌들이 정신적인 대부로 모셨다. 산을 좋아한 적명 스님은 평생 산에서 살다 산에서 돌아갔다. 수좌로 살다 수좌로 갔다.

 

적명 스님은 1939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나주 다보사 우화 스님 앞으로 출가하고 1959년 해인사 자운 율사에게서 사미계를 받고 1966년 해인사 자운 율사에 의해 비구계를 수지했다. 당대 선지식인 전강 스님, 경봉 스님, 구산 스님, 성철 스님, 서옹 스님, 향곡 스님 등 문하에서 정진하였으며 이후 해인총림 선원장, 영축총림 선원장, 고불총림 선원장, 수도암 선원장, 은해사 기기암 선원장 등을 역임하였고 전국수좌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9년 정월, 대중의 추대로 봉암사 수좌 소임을 맡아 대중들과 함께 수행정진 하다 2019년 12월 24일 입적하니 세속 나이 81세, 법랍은 6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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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헌 2020-10-18 22:04:14
명상쎈타 건립한다고
하는 놈들한테
무슨 말을 하겠나

별 참 공부도 안하고
희양산이 아무도 없어도
잘 돌아가는데

자네들이나
열심히 정진 한번 해 보시요

그곳은 하나 안하나
별 표시 없을꺼요
에이그 뭘 그런 공부 가지고

엊그제 한분 가셨나 본데

뜬구름 2020-10-18 09:24:16
행여나 님 찾아 왔다가
못 보고 가거든
옛 정에 매이지 말고
말없이 돌아가 주오

소나 말이나
이름난 절에 살다오면
거기 살았다고 자랑들 하시네
스승 도반 도량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야 도인
한사람 나올까 말까 하는데

요즈음 선객들은 좌불안석만 하는지
나오면 개차반이고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를 배워도 야무지게
배워야 되는데

걸음걸음 마다
향기가 나시는지
하기사 열리지를 못했으니
보아도 보질 못하고
들어도 듣지를 못하겠지

선은 널려 있지만
이렇게 인물이 없어서야
뿌린게 없으니 거둘게 있을까 보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

살림살이 2020-10-14 10:02:19
이 시대에 수행자가 걸어가야 할 길을 모색하며 평생 애쓰셨던 모습 기억합니다. 각자 자신의 잣대로 운운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적명스님 만한 분은 없습니다. 잘 살다 간 수좌였습니다.

미궁 2020-10-14 06:25:09
행이 따라주지 않은 스님
과연 수행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