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순례, 코로나19 헤쳐가는 불교적 실천 될까?
걷기순례, 코로나19 헤쳐가는 불교적 실천 될까?
  • 김경호
  • 승인 2020.10.08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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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라는 저서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위기에 대해 지난 3월 “이 위기의 시간에 우리가 직면한 선택지 중에 두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하나는 전체주의적 감시 대 강화된 시민의 힘, 다른 하나는 국가 단위 고립 대 전지구적 연대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한민국 방역의 기본인 동선 공개와 추적 조사에 대해 프라이버시의 침해라고 주장하는 일부 주장은 중국의 전체주의적 통제와 구별하지 못한 오해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례는 국가가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감시가 아니라 강화된 시민의 힘이다.

또 확산 초기에 우한 지역으로부터의 입국 금지를 요구한 이들이 있었다. 전지구적 연대보다 국가 단위 고립으로 역병 전파를 막아야 한다는 선택은 그만큼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심했다는 심리를 반증한다.

정부는 코로나19의 다중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행사를 중단시켰다. 종교에 대해서도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대면 예배 중단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대면 예배를 온라인예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개신교 교회의 일부는 종교활동에 대한 탄압이라며 거세게 저항했다. 반면 가톨릭은 미사를 중단하고 온라인미사로 전환했다. 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도 법회와 모임을 중단하기로 함으로써 방역 위기 상황에 정부 방침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각 종교의 서로 다른 대응을 통해 종교의 본질은 무엇이며 종교행위의 근본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개신교에서 예배라는 집단 모임은 종교적 정체성의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한다. 매주 일요일의 대예배는 물론 계층, 지역별로 이루어지는 소모임과 예배, 가정과 병원을 찾아가는 심방 등 공동체 구성원은 무조건 모여야 한다. 때문에 개신교인들은 예배가 신앙의 근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종교활동에서 예배가 차지하는 중요성만큼이나 재정 확보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예배 중단은 헌금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신교의 모태라고 할 가톨릭은 전례미사를 유연하게 중단했다. 그렇다면 가톨릭 전례미사는 예배와 다른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빵을 나눔으로 예수의 살을 대신하고, 포도주를 마심으로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빠스카의 신비가 미사의 모든 것이다.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빠스카 만찬으로 완성되었고, 미사는 성체성사로 형상화하여 매 미사 때마다 ‘빠스카’의 의미를 새기며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건너가는 종교의식을 갖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전례 행사를 통해서 예수의 빠스카에 성사적으로 참여했는데 이를 중단한 것은 대단한 종교적 결단이다. 가톨릭은, 미사 중단이라는 결단을 통해 전례적 빠스카는 실천적 빠스카로 이어져서 나날의 생활에서 체험해야 한다고 교리를 새롭게 전환시켰다.

그렇다면 불교의 종교생활은 어떨까? 전국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불교의 종교행사 가운데 법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이 주장에 대해 불편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한국불교에서 사찰의 일상 종교의례는 예불과 불공, 기도가 주가 된다. 사람이 적게 참여해도 타격이 적다. 반면 법회는 횟수나 참여인원, 재정 관련성 모두에서 핵심적인 종교행위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법회가 중단되어도 사찰이 입는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다.

걱정스런 것은, 대표적 법회를 중단한 뒤 이를 대체할 종교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예배처럼 온라인법회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참여도는 높지 않다. 유튜브, 불교방송과 불교TV 등이 사찰행사를 대체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참여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방생법회, 성지순례 등은 대부분 중단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전 총무원장 스님의 걷기 연습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스님은 10월 7일부터 27일까지 21일간 대구 동화사에서 서울 봉은사로 걷기 순례에 나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극복과 고통 받는 이들의 치유 염원을 담은 500㎞에 달하는 걷기 순례에는 스님과 신도 등 90명이 참여한다고 상월선원(?) 명의로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렸다. 그러나 새벽 걷기를 미리 연습한다며 진행했던 예비 걷기에 참여했던 서울 구룡사 주지 각성 스님이 쓰러져 입적하는 등 시작도 하기 전부터 말이 많다. 프럼 빌리지의 틱낫한 스님이 쌓아온 걷기명상의 긍정성을,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스님의 걷기순례가 모두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지, 강남 총무원장이 주도하는 행사가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사고 있다. 동원하면 나와야 하고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비극적 세태가 우울하다.

함께 깨닫는 대승의 전통,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의 전통, 개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보살의 전통이 한국불교의 저력이다. 수행으로 이 전통을 닦아나가야 한다. 한국불교를 사랑하는 이들이 더 철저하게 더 열심히 수행하고 기도하여 가짜 수행을 압도할 필요가 있다.

김경호 | 지식정보플랫폼 운판 대표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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