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불자들이 불교를 살린다
재가불자들이 불교를 살린다
  • 소암 스님
  • 승인 2020.09.16 14: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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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승려 독식은 적폐 양산

가야시대부터 2천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는 수많은 왕조를 통해 불교가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
조선조의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한 성리학유교정권의 5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문화역사는 대부분 불교가 중심적인 가치였다

일부학자의 학설에 의하면 세계를 지배하던 북방민족의 상징인 흉노족들이 한무제에 패하고 그 중의 일파가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자리잡은 곳이 지금의 영남지역인 가야라고 하고 흉노족은 항상 무쇠솥을 말안장에 꿰차며 금인金人 ,즉 금부처를 모시고 다닌다고 했다.

당시는 종이가 없는 시대라 대나무죽간을 연구한 역사학자의 말이다 .김씨는 한반도최초의 성씨로 한무제가 왕으로 봉한 김일제로 부터 김씨성이 생겼고 가야 김수로왕이 최초의 김씨라는 것이다.
가야를 이은 신라도 석탈해와 박혁거세를 지나 김알지가 신라최초의 김씨로 신라천년왕국이 새롭게 천하를 평정하고 세력을 확장하니 이름이 신라다.

가야의 원래이름인 인도가야는 불교가 탄생한 지역으로 그래서 부다가야다 .불교의 4대성지중 부처님의 탄생지역인 룸비니와 함께 손꼽는 지역으로 지금도 연중내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불교순례객이 몰려들고 수많은 불교국가의 승려와 신도들이 각종기도와 수행을 활발히 하는 곳이다.

예루살렘이 전세계 기독교와 회교도들의 성지이듯이 부다가야는 전세계불교도의 대표성지로서 불자라면 평생 한두번 가야하는 성지일 것이다.

한반도의 네나라를 최초정복한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신라가야를 정복한뒤 가야의 1차유민들은 제철기술과 토착신앙과 불교문화를 가지고 일본에 망명해 가야문화와 기술을 전했고  토착신앙은 일본의 신사신앙으로 발전했으며 제철기술은 일본을 발전시키는 지배문명을 만들었다

그당시 한고조때 멸망한 진시황제의 후손인 울진 진秦씨는 광개토대왕의 남진정책에 밀려 가야와 함께 일본에 망명하게 되었으니 교토의 광융사廣融寺를 씨족사찰로 건립했다 일본이 신성시하는 고대 4대사찰이다.
역사는 무려 1천5백년이 지났건만 역사의 증인인 후손들은 선조들의 역사와 뿌리를 찾는다 고구려의 1차정복후 2차정복은 신라와 합병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가야는 왕조가 바뀌면서  마지막왕인 구형왕전설이 슬프고도 아련하게 전해진다.

가야는 보통 6대가야로 나누는데 그 영역이 호남의 상당한 영역을 포함한 광활한 지역으로 신라와 맞먹는 거대한 왕국이었다.
가야의 김씨왕조와 그후 3세기이후 신라김씨왕국이 크게 발흥한 것은 씨족과 관계가 깊다고 할때 같은 씨족과 동맹으로 왕국이 합병한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한국의 제1성씨인 김씨가 지배세력이 된 것은 가야와 신라 그리고 통일신라이후 1천5백년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김씨왕조와 불교왕국의 융합 
 
조선조에 와서 중국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조 이씨왕조는 고려무인정권의 일파인 이의방형제의 후손인 이성계와 정도전이 쿠테타로 고려불교왕국을 뒤엎어 새왕조를 세우고 유교정권의 바램대로 오직 중국만 숭상하고 이땅에 들어온지 천오백년이 넘는 불교를 탄압하면서 없애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조선태조 이성계부터 독실한 불자였고 왕후들 역시 불자였다 이태조의 스승인 무학대사의 영향도 컸다.
알려진 것처럼 조선조를 통틀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도 돈독한 불자로서 한글창제와 더불어 측우기 천문대등의 과학기술과 애민중생사상의 실천에 진력한 분이었다

이씨왕조가 지배한 조선이었으나 역사를 살피면서 조선시대 학자와 관료의 숫자통계를 보면 김씨성이 1위이고 2위는 왕과 맞먹는다는 뜻의 윤씨이며 이씨는 3위로 조선조 오백년도 김씨가 대부분 운영주체임을 알수 있다.
통일신라이후 불교는 독실한 불자인 법흥 진흥왕은 말년에 승려가 되어 왕위를 왕자에게 그대로 물려줬다.
신라의 부설거사는 아직도 전설로 내려올만치 재가불자의 상징이다 이땅에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을만큰 수많은 부설거사가 존재했다.

황산덕박사와 이종찬장군의 불심 
 
조선조말인 150여년전 흥선대원군과 고종시대 오직 중국만 숭상하던 유교정권은 세계정세와 만민평등의 새시대에 무지함으로서 조선은 수천년의 찬란한 문화역사기술의 문명을 계승했으나 체제유지에만 고집했을 뿐 바깥의 소식은 칠흑같은 깜깜이였다 .눈이 있어도 보지못하고 귀가 있되 듣지못하는 청맹과니의 왕국이었다
결과적으로 대원군의 폐쇄정책과 민비 명성왕후의 권력투쟁으로 망국과 강대국의 식민자가 되는 비참한 운명은 정해진 순서였다.

물론 그후 독립지사들의 투쟁과 희생은 이나라를 정의롭게 세우는 숭고한 독립정신에 빛나는 만민평등의 나라로 만들었으나 강대국에 의한 해방과 분단 ,독재등의 정치적 갈등은 역사의 인과이기도 했다 . 역사의 악순환은 막아야하고 선순환 (필자가 만든 용어)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506070년대 혼란한 시대, 우리사회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우뚝한 서울법대 황산덕박사는 평양출생의 기독교장로 집안이었다 .황박사는 일제강점기시절 ,서울법대의 전신인 경성제대에서 사법행정 양과 고시합격자로 출세가 보장됐으나 권력보다는 학계에 남아 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낸 대학자였다. 당시 한국의 판검사는 물론 법대학자들의 절반이상은 황박사의 제자라 할 정도로 인재가 많았다.

황박사부부는 50년대 기독교신자로써 우연한 기회에 경남출신의 한 노보살님을 만나 불교에 대한 안내와 설명을 든고 감동을 받아 불교로 개종하고 서울법대를 나온 자녀들도 모두 독실한 불자집안으로 유명하다 마치 중국의 방거사나 신라의 부설거사같은 집안이 아니겠는가? 
 
60년후반 ,지방의 승가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내가 서울 선학원에서 황박사의 일가를 만났을때 마치 고승이나 다름없는 큰 선지식을 만난것 같은 감명이 깊었다.

그때만 해도 황박사가 평양의 기독교출신인줄도 몰랐고 기독교역시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폭이 넓고 인격이 고매한 황박사가 유일신종교에만 머물러 있을수 없었고 유불선과 기독교에 통달한 분이라고 회상한다 .이승만, 박정희정권으로 부터 탄압을 받던 황박사는 박정희정권말기, 법무, 문교장관 성대총장을 역임하고 마지막공직은 불교진흥원장으로 마무리했다. 해방이후 재가불자로써 이기영박사,서울법대학장과 동국대총장을 역임한 서돈각박사 ,홍대총장 이항녕 언론인 오종식선생  이승만정권시절 계엄령을 거부한 이종찬장군, 역시 육참총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최영희등 쟁쟁한 재가불자들이 교육학계 정치관료 문화예술분야에 다수로 불교와 사회의 기둥역할을 했다.

참고로 박정희대통령이 하급장교일때 이념문제로 생사기로에 놓여 이종찬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후임인 백선엽장군과 함께 박정희를 구명했고 그 보은으로 기독교신자로서 백선엽은 평생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조선말 친일고위벼슬의 부친을 둔 독실한 불자 ,이종찬장군은 선조의 죄를 참회하고 참선과 기도로 생애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박정희가 유일하게 존경한 분이라 하며 지금도 한국군의 전설이다.

강직하고 청렴한 불자인 이종찬장군의 자료에 나온다. 대통령 박정희가 두번이나 유신국회의원에 추대했으나 한번도 국회에 나가지 않았다는 교훈은 오늘의 부귀영달과 돈 권력 감투와 세력에만 욕망을 불태우는 정치 기업 학자 종교인들 ,특히 세상의 조롱꺼리가 되고 범법행위를 저지르고도 태연한 조계종단의 일부 고위직승려들이 참회하고 부끄러워해야 될 일이다.

수년간 물의를 일으키고 가혹한 일제식민지의 희생양이 된 '정신대'와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사태를 보면서 한국불교가 승려들만의 독점과 탐욕에서 벗어나 사회적 신망과 존경을 받는 재가신도들과 사부대중이 함께 사찰운영과 종단참여 ,사회헌신에 동참함으로써 한국불교가 명실상부하게 국민의 종교로 위상을 회복하리라 믿는다.

현재와 같이 재가불자들을 배척하고 오직 승려들만 종단요직과 각종조직을 독차지하는 것은 마치 대원군시대의 시대착오와 다름없는 폐쇄적인 집단으로 존재가치가 없고 불교와 사회에 적폐로만 남을 뿐이다.
뜻있는 승가와 재가불자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할만큼 코로나와 민생문제등 사회가 큰 위기를 맞고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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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2020-09-16 17:10:24
범계권승들이 청산되고 청정재가가 종단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국불교가 살고 한국문화가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