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 독자적 한국선 경지 확보 노력의 결과”
“선시, 독자적 한국선 경지 확보 노력의 결과”
  • 이창윤 기자
  • 승인 2020.09.1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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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 스님 ‘선문화연구’ 28집 투고 논문서 주장…총 9편 수록

재단법인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이 발간하는 등재학술지 《선문화연구》 제28집이 최근 발간됐다.

이번 호에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이 ‘만해 사상의 계승 - 조선불교유신론과 한국불교의 지향점’을 주제로 6월 24일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지하 3층 만해홀에서 개최한 ‘만해 한용운 스님 76주기 추모 학술회의’ 발표 논문 두 편과 7편의 일반 논문이 수록됐다.

공일 스님은 <달마불식(達磨不識) 공안과 한국 선시의 관련성 연구>에서 만해 한용운 스님과 설악 오현 스님의 시 작품 저변에 자리한 선관을 검토했다.

스님은 “《선문염송》에서 독자적 노선이 확립돼 드러난 한국선의 흐름은 만해 용운에 이르러 뚜렷하게 확증돼 현대시의 성격을 지난 작품으로 나타난다.”며, “《님의 침묵》이 그 결과물”이라고 했다. “달마불식은 만해의 <알 수 없어요>에서 해석학적 변형을 유발하며 공안의 문화적 재창출이라는 측면으로 부각됐다.”는 것이다.

스님은 또 “설악의 <봄의 불식>은 <달마> 한글 선시조와 더불어 만해의 가풍과 성과를 이어 받아 전혀 새로운 지평을 개시하고 있다.”며, “설악은 오현풍의 한글 선시조를 창안하며, 문학적 바탕이 《염송》에 기반하고 있음을 검증하였다.”고 밝혔다.

스님은 “한국선의 특징은 선시의 영역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룩했다”며, “이는 한국선의 가풍이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수행풍토로부터 탈피하여 독자적인 경지를 확보하고자 노력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임홍경 씨(영남대 박사과정 수료)는 ‘근대 한국 비구니의 선수행 문화와 선맥 전승 연구’에서 근대 비구니의 선수행과 수행문화, 선맥 전승을 살폈다.

임 씨는 만공 스님 문하의 견성암과 한암 스님 문하의 지장암에서 정립된 비구니 선원의 수행문화와 가풍이 현재 대부분의 한국 비구니 선원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보았다. 견성암은 일상생활 자체가 수행인 일상선(日常禪)이라는 독특한 가풍을 유지했고, 지장암은 ‘승가오칙(僧伽五則)’의 일체화된 수행규범과 정혜쌍수(定慧雙修), 선교융합(禪敎融合)의 사상을 실천하며 엄격한 청규를 준수했다는 것이다.

근대 비구니들의 수행과 활약상에 대해서는 “비구니교단 전체로 보면 활발하진 않지만 꾸준하게 활약했던 이들이 있었다.”면서도 “수행과 불사에 있어서는 천성산 내원사, 가지산 석남사, 지리산 대원사 등 정화불사 이후 폐허가 되거나 퇴락해 가는 전통 수행도량을 아름다운 전통사찰로 되살린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임 씨는 근대 비구니의 수행환경에 대해 “수행의 3대 조건인 선지식, 도반, 도량이 모두 잘 갖추어진 곳에 비구니 대중이 늘어나고 수행전통을 올곧게 이어가는 특징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비구니 선맥에 대해 임 씨는 “비구니 선맥의 전승은 비구 선지식으로부터 승단의 일원으로서 비구니의 정체성을 인정받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인가의 성격이 깨침의 증표라기보다 수행의 경책이나 격려 차원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수행한 비구니 선승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구도와 수행력은 깨달음에는 성별의 차이가 없음을 증명해 비구니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비구니 승가가 이부 승가를 구성하는 한 축으로서 역할 분담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는 것이 임 씨의 평가다.

여태동 씨(동방문화대학원대 박사과정)는 ‘60년대 말 70년대 중기 법정의 사회민주화 운동 연구’에서 사회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실천적 불교사상가로서 법정 스님의 면모를 첫 수필집 《영혼의 모음》을 통해 조명했다.

박영환 동국대 교수는 ‘옥관빈의 근대 중국불교혁신운동과 불자약창 설립’에서 독립운동가이자 실업가, 불교개혁가, 불교거사로 짧은 생을 마친 독립운동가 옥관빈(1891~1933)의 삶을 조명했다.

옥관빈은 1911년 기독교계와 교사 중심의 민족주의 운동인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5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다 1915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한 옥관빈은 중국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해 불교개혁가, 사업가로서 성공했다.

1924년 상해에서 이슬람교 조직에 부부가 함께 입교해 활발히 활동한 옥관빈은 1926년 11월 태허 대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불교에 귀의해 불교혁신운동에 적극적으로 헌신했다.

옥관빈은 사회참여, 중생구제, 교육문화, 인재배양, 홍법사업 등 현실 참여를 강조하며 생활불교의 실천을 적극 주장했는데, 이는 현대 중국과 타이완의 ‘인간불교’ 운동의 토대라 할 수 있다. 만년에는 ‘불자약창(佛慈藥廠)’을 세워 자비사회를 추진하다가 1933년 8월 밀정으로 의심받아 상해에서 암살당했다.

박 교수는 이 논문에서 밀정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한국 학계의 연구 성과와 중국에서의 불교활동에 초점을 맞춘 중국 학계의 연구 성과에 머물지 않고, 청년시절 옥관빈의 애국활동 이념과 내용이 상해 망명 이후 폭넓었던 활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고증했다. 이를 통해 상해에서 옥관빈과 태허 대사가 함께 추진하였던 근대 중국불교혁신운동, 옥관빈이 추진한 중국 회교혁신운동의 이념적 토대가 그가 청년시절 안창호를 통해서 학습하였던 신민(新民), 자신(自新), 자강(自强), 계몽 등 구한말 계몽사상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박 교수는 또 옥관빈이 “부처의 자비로움과 약물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발원으로 설립한 ‘불자약창’이 “‘민주’와 ‘과학’이라는 5·4정신을 실생활에 응용하면서 그가 강조한 ‘사상의 과학화’와 ‘생활의 과학화’를 통해서 이루어 낸 결과물이자, 중생구제와 불법의 홍양을 설립이념으로 세운 것”임을 규명했다.

박 교수는 “옥관빈은 신민, 자신, 자강, 계몽이라는 양계초 사상의 토대위에서 스승 안창호가 표방했던 실용적, 과학적인 학문을 통해 자아혁신과 자기개조, 외세의 극복과 봉건체제 해체, 공화정의 근대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며, “이런 옥빈관의 신념은 중국회교진흥책, 중국불교진흥책을 통한 불교와 이슬람의 근대화에 공헌하였고, 중생구제와 과학의 생활화를 추구한 불자약창 건립으로 중약의 과학화를 선도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선문화연구》 제28집에 수록된 논문은 한국불교선리연구원 누리집(seonhakwon.or.kr/seonli) ‘논문 원문 공시’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다음은 《선문화연구》 제28집 수록 논문 목록.

만해 학술논문 △만해의 《불교유신론》에 나타난 포교관과 그 지향점(차차석·동방문화대학원대)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과 한국불교의 현재 - 조계종을 중심으로(김종인·경희대)

일반 논문 △달마불식(達磨不識) 공안과 한국 선시의 관련성 연구 - 만해 용운과 설악 무산의 작품을 중심으로(공일·백담사) △초기불교 선정론에 있어서 케짜리 무드라의 재발견(양영순·동국대) △호암 인환의 수행과 포교(오경후·동국대) △근대 한국비구니의 선수행 문화와 선맥 전승 연구(임홍경·홍상욱/영남대) △60년대 말 80년대 중기 법정의 사회민주화운동 연구 - 《영혼의 모음》에 나타난 원고를 중심으로(여태동·동방문화대학원대) △옥관빈의 근대 중국불교혁신운동과 불자약창 설립 - 안창호 계몽사상의 연계성을 중심으로(박영환·동국대) △동화사 내원암 목조보살좌상 연구(이희정·문화재청)

이창윤 기자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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