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즐거움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 현안 스님
  • 승인 2020.09.0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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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안 스님의 수행 이야기 28

 

명상이든 참선이든 또는 기공, 태극권, 요가 등 모든 수행법들은 두 가지의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첫번째가 멈추기 즉 지이고, 두번째가 관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아신다면 당신은 명상을 이해하는 것이죠. 여러분은 멈추는 방법을 배워야하고, 그리고 관하는 것도 배워야합니다. 이것을 챤(禪), 한국에서는 선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 지관(止觀)에서 “지”는 무엇인가요? 생각을 멈추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을 멈출 수 있나요? 생각을 멈추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면서 일시적으로 선정을 경험하거나 거친 생각이 멈추는 것을 경험하는데, 사실 이때 그 아래 미묘한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당신은 생각을 멈추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지”라는 것은 여러분이 모든 생각을 완전히 멈춘 것을 의미합니다. 거친 생각과 미묘한 생각 두 가지를 모두 멈춰야 합니다. 생각이 멈추는 경계를 경험하면, 여러분은 더욱 건강해지고, 스트레스 지수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경계에 들어가면 스트레스 수준이 점점 줄어서 완전히 사라질 지경이 됩니다. 스트레스도 미묘한 수준에서 아직 일어납니다. 

스트레스는 외적인 스트레스와 내적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외적 스트레스가 뭔가요? 외적 스트레스의 뜻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가서 상사로 부터 압력을 받고, 교사라면 학생들로부터, 그리고 밖에 나가면 만나고 소통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압력을 받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내면에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이것이 외부적인 스트레스라면, 내적 스트레스는 무엇인가요? 영화 스님의 참선 법문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내적 스트레스에 대해서 아주 잘 설명해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왜 스트레스가 있는지 아나요? 이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건가요? 아상에 대한 집착일까요?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우리는 즐거움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 기쁨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즐거움과 기쁨에 많은 집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미리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쁨에 집착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잘 설명해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즐거움에 집착하는 순간, 기쁨에 집착이 생기는 순간, 그 즉시 생기는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다른 이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을 잃을까봐 무서워하게 됩니다. 이것은 즉각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이 “나 이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동시에 그것을 잃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사랑을 잃는 것이 무섭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적 스트레스입니다. 

우리가 내적인 두려움 때문에 내적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우리는 잃는 것을 우려합니다. 손해를 봐야하는 것을 걱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여러분은 즐거움을 보자마자 동시에 그 두려움을 보게 됩니다. 저도 또한 즐거움을 즐기면서, 그 뒤에 항시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채 살았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참선/명상을 할때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명상을 하면 흔히 평화, 즐거움, 환희를 맛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아무 것도 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니라고 해볼 수도 있지만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다고 말하지만, 당연히 두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즉각적이고 자동으로 생기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안락을 즐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명상이나 참선에서 오는 환희를 즐기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랑이나 맛있는 음식도 그렇습니다. 좋을 것을 소유하는 즐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죠. 우리 모두 그런 반응을 보입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참선을 할 때, 어떤 형태의 수행을 하든, 반드시 안락을 경험합니다. 기술이 늘면 늘수록 더욱 더 많은 안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즐거움 또는 안락을 경험할 때, 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집착은 우리가 더 큰 안락을 경험하는 것을 막습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수행에서 오는 안락에 집착하면 더 큰 안락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집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집착이 없으면 앞으로 더욱 더 좋아질 것입니다.

이런 것은 생겼다가 없어졌다 합니다. 집착하지 않으면 더 늘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차리는 모든 생각들이 일어날 때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집착하지 마세요. 그것이 바로 “지” 즉 멈춤입니다. 그것이 “지”의 시작입니다. “지”의 시작은 이런 생각들이 일어나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의 갈망 즉 집착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라고 부릅니다. 

중국 전통의 이것을 지관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선 즉 명상입니다. 모든 형태의 명상은 여러분이 앉아서 하든, 서서 하든, 걸어서 하든, 어디서 하든 상관없이 이런 지와 관이 있습니다.

지는 명상을 하면 먼저 생기는 것인데, 생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고, 예를 들어서, '다리 아프다', '앉을 때마다 아프네' 이런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모든 갈망(욕구)들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들이 마음속 내면에서 일어나면 이를 내적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보기만 하세요.

여러분이 참선을 시작하면 마음 속에서 온갖 걱정과 생각들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남편 걱정, 아이 걱정, 남자 친구 생각 등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이런 생각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이런 생각들이 일어나게 두세요. 그러면 결국 생각들이 스스로 사라져야 합니다.

올라가는 것은 반드시 나중에 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중력의 법칙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일어나게 냅두세요. 이를 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왜 이것을 “지”라고 부를까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것을 “지”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새로운 생각을 일어나게 하는 것을 멈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머리는 이미 생각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하루 종일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먼저 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런 다음에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새로운 생각이 생겨서 그걸 따라잡습니다. 첫 생각에 반응하여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이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마음은 생각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일어납니다. 안 그런가요? 저도 어느 순간 이런 일들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참선을 매일 해야합니다. 

불교에서 이런 것을 뭐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이것을 불교용어로 업보(業報)라고 부릅니다. 왜 그렇게 부르냐면 생각이 일어나면, 우리의 마음이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직장에서 집중해서 일하고 있는데, 한 생각이 올라와서 집중을 방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마음속에서 '엄마가 오늘 왜 나한테 그렇게 말했지? 속상해' 또는 '내 남편은 왜 요즘 나한테 이쁘다고 안하지' 등 자연스럽게 생각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을 탓하지 마세요. 이런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할 수 없지요. 이렇게 한 생각이 먼저 일어납니다. 우리의 마음은 쉬지않고 계속 간섭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앉아서 참선하려고 하는데, 누가 전화를 합니다. 옆에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하거나, 차가 지나가면서 큰 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부엌에서는 맛있는 음식냄새가 솔솔 납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방해라고 부릅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방해를 받는 대상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첫번째 부분입니다. 

통제가 안됩니다. 예를 들어서 우울한 감정이 있습니다. 앉아 있는데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만 두자.'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 생각이 스스로 일어납니다. 이건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울증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기분이 나쁜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울증의 일부입니다. 실질적인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기분이 안좋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나쁜 기분을 정당화합니다. '이래서 그럴꺼야', '저사람이 그렇게 말해서 기분이 안좋은거야', '다음엔 안그러겠지 오늘은 컨디션이 안좋아' 이렇게 우리는 그런 부정적인 기분을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기분이 안좋다. 맞아. 내가 왜 이렇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어야 하겠어. 여기 있을 필요도 없어. 집에 가서 편하게 TV보고 친구 불러서 놀 수도 있는데,'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정당화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본래의 생각을 쫓는다'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첫 생각에 반응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내면에서 이 생각이 일어나는데, 우리의 존재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 매달리는 것이 최악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첫 생각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가 날 사랑해!'. 이게 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 속에서 '맞아! 그렇지'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계속 생각이 이어집니다. '맞아 그녀가 날 이렇게 쳐다봤어. 그리고 향수를 어떻게 뿌리고 왔는지 기억나?' 이렇게 한 생각이 우리가 더 생각을 보태는 것입니다. 본래의 생각에 반응한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내면적 동요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잡아쥡니다. 

이것을 명상하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앉아서 명상을 하는데, 마음속에서 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다리 아파!'. 여러분에게 명상할 때 이런 일이 생겼나요? 명상을 하려고 앉았는데 불편한적 없었나요? 이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가만히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안그런가요? 우리가 할 일이 많고, 처리해야할 문제도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앉아서 가만히 있으면, '아이 내 다리야, 허리도 아프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합니까? 다리를 풀고 기지개를 하나요? 다리가 아프면 바로 '아파, 이러다가 다치는건 아닐까?' 이렇게 아프다라는 첫 생각에 매달리자마자 다른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첫 생각에 응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첫 생각에 반응하지 않으면 바로 “지” 즉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통제입니다. 생각을 쫓지 않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선에서는 이것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통제라고 말하면, 돈, 집, 자동차, 재정적인 안정 등을 생각합니다. 또는 건강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통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돈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으면 충분하지 못해서 걱정하고, 돈이 풍족하면 잃을까봐 또 걱정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통제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아직도 걱정이 생깁니다. 건강도 그렇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천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건강도 환상일 뿐입니다. 우울한 일 아닙니까? 

하지만 참선을 하면 건강에도 기적같은 일들이 생깁니다. 참선을 하면 더욱 건강해지고, 노화과정의 속도도 늦출 수 있습니다. 수행은 우리의 건강을 향상하게 해줍니다. 다 자동으로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유루(有漏) 즉 기의 유출을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번뇌를 멈출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쇠퇴(괴, 壞)를 늦출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 선사의 참선 법문을 토대로 지에 대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아직 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참선 또는 어떤 수행이든 우리가 행하면 스트레스가 줄고, 건강이 좋아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명상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돌봐야 합니다. 

명상의 첫 단계는 “지” 즉 불필요한 생각, 낭비의 멈춤입니다. 우리가 모든 생각을 멈출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 기술을 통달할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우리가 생각에 반응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고, 두번째 단계는 모든 생각이 일어나는 것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우리가 생각을 따라가지 않도록 배우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을 멈추는 것입니다. 영화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두번째 단계가 바로 진정한 통제인데, 모든 생각이 다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정(九定) 즉 아라한의 단계입니다. 즉 우리가 아라한의 단계에 도달하려면 “관”의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라한이 되지 못합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어떻게 관을 하는지 가르쳐 주시기 전까지, 아무도 아라한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 이 글은 미국 위산사 영화선사의 참선 법문을 토대로 집필하였습니다. 이 법문은 영어로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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