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이제 아셨나요?
한국의 대부분의 절에서 '불공'이나 '수행'이라는 용어대신에 '기도'라는 용어가 판을 친지가 언제인데.
저는 이제 포기했습니다.
법응스님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고쳐보자고, 늦었지만 대안적인 표현이라도 제시하지만 그정도로 바뀌지 않는답니다. 설사 그 용어가 조금 바뀐다 해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거의 전부가 '기도'의 내용일 겁니다. 불교의 본 모습과는 관련도 없는 것들. 왜 그럴까요? 무식해서 그렇답니다. 특히 주지들이 무식하고, 저 총무원 사판들이 무식해서 그렇답니다. 무식하니까, 불교가 카톨릭, 개신교등등의 특정신을 숭배하는 종교들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다 욕심에 찌들어서 돈 많이 벌어야 대우받는다는 천박한 사고에 사로잡혀있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많은 사람 들은 코로나19의 장기화와 확산으로 인하여 ‘코로나 블루’라 칭하는 심리적 불안과 위축, 격리 그리고 고립으로 인한 우울감과 경제 활동 영역의 제한과 무기력증을 호소하며 일상의 삶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불교는 어떨까?
언제부터 일지 모르겠지만 이미 오래전에서부터 교계 내부의 지도층에 있는 승려들에서부터 일반의 수행자들에게 이르기까지 에둘러 타 종교의 교세 현황까지 들먹이며 GDP 3만불 시대에 대한 탈종교화로 인한 신도의 감소와 교세의 약화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자조적인 불안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의한 현실의 직면한 상황을 보면 빈부귀천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막연한 공포로 인한 불안을 생과 사의 끝자락에 매달려 삶의 안위를 호소한다.
법보신문에서 2019년 1월2일자로 내보낸 새해특집의 '기도가 불교다' 연재 6편을 한번 읽어보세요. 학자라는 사람들, 승려들 모두 '기도'하랍니다. 아주 당연한듯이.
이사람들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기도'라는 의미를 바꿔가면서 온갖 소리를 하며, 합리화하고 있는데, 그 뿌리가 매우 깊습니다. 탐욕의 뿌리.
'기도'라는 말은 불교와 무관하니 사용하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고, 오늘도 쉬지않고, 이부처-저부처에게 빌고,
이보살-저보살에게 빌고, 신장에게 빌고, 산신에게 빌고, 빌고, 또 빌고. 대부분 탐욕스런 기도죠.
'정법의 유통기한'은 이미 오래전에 지난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불교수행을 하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