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즉심즉불(卽心卽佛)
신무문관: 즉심즉불(卽心卽佛)
  • 박영재 교수(서강대)
  • 승인 2020.08.31 10: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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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43

성찰배경: 앞글에서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선사의 전법제자인 남양혜충(南陽慧忠, ?-775) 국사를 중심으로 죽음에 관해 두루 성찰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또 다른 전법제자인 남악회양(南嶽懷讓, 677-744) 선사 문하에서 크게 깨친 후 강서(江西) 지역을 중심으로 대활약했던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에 대해 <무문관(無門關)>에 담긴 그의 ‘불(佛)’자(字) 화두들을 중심으로 두루 살피고자 합니다. 참고로 역시 육조 선사의 전법제자였던 청원행사(靑原行思, 671-738) 선사의 법을 이은 후 호남(湖南) 지역을 중심으로 대활약했던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 선사와 마조 선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며 중국 천하를 양분해 명성을 떨친 이들 선사로 인해 두 지역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강호(江湖)’는 중국 천하를 지칭하는 또 다른 표현으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마전불성경(磨磚不成鏡)
먼저 <사가어록(四家語錄)>에 담겨있는 마조 선사의 오도(悟道)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唐) 나라 현종(玄宗, 712-756) 시절 도일 스님이 형악(衡嶽)에 있는 전법원(傳法院)에서 선정(禪定) 수행을 닦고 있던 때에 회양 선사를 만났다. 당시 회양 선사께서 크게 될 재목[법기(法器)]임을 알아채시고, “스님께서는 좌선 수행을 하여 무엇을 도모(圖謀)하려 하는가?”라고 물으셨다. 도일 스님이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圖作佛].”라고 답했다. 그러자 회양 선사께서 곧 그 암자 앞의 벽돌 한 개를 집어 들고 갈기 시작하셨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도일 스님이, “벽돌을 갈아 무엇에 쓰시려고 하십니까?”라고 여쭈었다. 회양 선사께서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磨作鏡].”라고 답하셨다. 도일 스님이 “아니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라고 다시 여쭈었다. 그러자 회양 선사께서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듯이 그대처럼 흉내나 내며 아무리 오래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답하셨다.

도일 스님이 “그러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회양 선사께서 “소가 끄는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려야 되겠는가, 소를 때려야 되겠는가?[打車即是 打牛即是.]”라고 반문하셨다. 이에 스님이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러자 회양 선사께서 친절하게 “그대는 ‘앉아서 참선하는 것[坐禪]’을 배우려고 하는가, 앉은 부처를 배우려고 하는가? 좌선을 배운다고 하는데 선(禪)은 앉거나 눕는 데 있지 않으며, ‘앉은 부처[坐佛]’를 배운다고 하는데 부처는 어떤 모습도 아니다. 머뭄 없는 법에서는 마땅히 취하거나 버리지 않아야만 한다. 만일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며,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라고 다시 조언을 주셨다. 도일 스님이 이 가르침을 듣자 마치 청량(淸凉)한 제호탕(醍醐湯)을 마신 듯하였다.

즉시 감사의 절을 올린 다음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써야만 ‘모습 없는 삼매[無相三昧]’에 계합(契合)하겠습니까?”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회양 선사께서,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익힘은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불법의 요체(要諦)를 설함은 비유컨대 하늘에서 비가 내려 씨뿌린 땅을 제때 적셔주는 것처럼 그대에게 시절 인연이 도래했기 때문에 마침내 불도(佛道)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當見其道]”

군더더기: 학문의 세계에서 박사학위 과정의 경우 재학 연한은 최대 12년 정도입니다. 즉 주어진 기간 내에 공부를 마치고 해당 분야에서 활약하면서 그동안 지원 받은 것에 대한 밥값을 잘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학문을 지속할 학자적인 소양이 없으니 다른 길을 가라는 뜻으로 제적을 시키는 것이지요. 물론 학위과정에서 능력부족을 포함해 여러 사정으로 스스로 포기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한편 필자의 경우 주로 일반물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이공대 학부 1학년 신입생들을 늘 접하게 되는데 절대평가 시절에는 따라올 수 없는 학생들에게 엄격하게 F 학점을 부여하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 등에 의해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이공계가 적성에 맞지 않으니 부디 재수해서 적성에 맞는 전공을 다시 선택해 신바람 나게 공부하라는 의도였습니다.

사실 생업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수행을 지어갈 수 밖에 없는 재가의 경우와는 달리 출가의 경우에는 수행이 곧 생업이기 때문에 자신과 코드가 맞는 수행법을 통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수행을 이어가야만 하겠지요. 그런데 만일 코드가 맞지 않는데도 남들 따라 ‘이것이 최상승 수행법이야!’라고 하면서 우직하게 그 길을 고집하며 허송세월하다 보면 ‘상구보리’든 ‘하화중생’이든 어느 것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채 일생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마조 선사처럼 좋은 스승을 만난 덕택으로 길을 바꾸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즉시 길을 바꾸어 가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사실 종교계를 포함해 다른 모든 분야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언젠가는 크게 기여할 날이 오겠지 하면서 집안이나 단체나 국가가 기약 없이 언제까지나 (경우에 따라서는 죽는 날까지) 뒷바라지를 해줄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신무문관 제창: 즉심즉불(卽心卽佛)

실질적으로 선종사에서 석두 선사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마조 선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문관> 제30칙 ‘즉심즉불’ 공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칙(本則): 마조도일 선사께 어느 때 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 스님이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물으니, 마조 선사께서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라고 답하셨다.[馬祖 因 大梅問 如何是佛. 祖云 即心是佛.]

평창(評唱): 무문 선사 가로되, 만약 이 ‘即心是佛’이란 한마디에 곧 알아차릴 수 있다면 부처의 옷을 입고 부처의 밥을 먹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설하고 부처의 행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되니, 즉시 부처니라!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저울 눈금을 잘못 읽게(되어 ‘佛’이라는 문자에 집착하게 하게) 됨을 어찌할꼬? 이 ‘불(佛)’이라는 글자를 입에 담기만 해도 삼일 동안 양치질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만약 대장부라면 ‘마음이 곧 부처니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즉시 귀를 막고 도망치리라!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밝은 대낮에/ 부처를 찾으면 안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마치 훔친 물건을 껴안고 (나는 도둑이 아니라고) 절규하는 격이네. [青天白日 切忌尋覓. 更問如何 抱贓叫屈.]

군더더기: 초심자들의 경우 대개 머리로만 헤아리며 밖을 향해 ‘부처[佛]’를 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를 꿰뚫어 본 마조 선사께서 어느 때부터인가 학인이 ‘如何是佛’이라고 물으면 늘 ‘即心是佛’이라고 일갈(一喝)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법상 스님이 이 ‘即心是佛’이란 한마디[一轉語]에 즉시 깨달았습니다[常即大悟]. 그후 대매산(大梅山)에 머물며 오후(悟後)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대매 선사는 치열하게 수행을 이어가다가 시절 인연이 도래해 ‘即心是佛’을 접하는 순간 ‘마음[心]’이니 ‘부처[佛]’니 하는 분별에서 자유로워진 것이지 결코 ‘即心是佛’이란 구절 자체는 깨달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신무문관 제창: 비심비불(非心非佛)

한편 마조 선사께서 어느 때인가 학인들이 ‘即心是佛’이란 구절에 집착하는 것을 접하고 그후부터 ‘비심비불(非心非佛)’도 제창하기 시작했는데 <무문관> 제33칙에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본칙: 마조 선사께 한 승려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으니, 마조 선사께서,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니라!”라고 답하셨다. [馬祖 因 僧問 如何是佛. 祖曰 非心非佛.]

평창: 무문 선사 가로되, 만약 이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공부를 다 마친 것이네[參學事畢]’.

: 게송으로 가로되,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칼을 쓰고/ 시인 아닌 이를 만나서는 시를 읊지 말게./ 제자[人]를 만나면 3할[三分]만 설하고/ 부디 몽땅 통째[一片]로 설하지는 말게. [路逢劍客須呈 不遇詩人莫獻 逢人且說三分 未可全施一片]

군더더기: ‘즉심즉불(卽心卽佛)’의 응용공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화두 역시 ‘심(心)’의 상대인 ‘비심(非心)’이니 불(佛)의 상대인 ‘비불(非佛)]’이니 하는 이원적인 분별에서 자유로워지면 그만인 것이지 결코 ‘非心非佛’이란 구절 자체는 깨달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본보기가 <사가어록>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법상 선사께서 ‘即心是佛’로 깨달음에 도달한 후 대매산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마조 선사께서 한 스님을 시켜 법상 선사를 찾아가 “마조 선사께서는 요즈음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하십니다.”라고 전하게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법상 선사께서 “이 늙은이가 망령이 드셨나 한없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구나. 마조 선사께서 제멋대로 ‘비심비불(非心非佛)’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오직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뿐이다.[任汝非心非佛 我只管即心即佛]” 그러자 이 스님이 마조 선사 회상으로 돌아와 법상 선사의 흔들림 없는 경계를 전하자 선사께서 “과연 매실이 익었구나[梅子熟也].”라고 그의 흔들림 없는 경지를 찬탄했다고 합니다.

한편 게송 가운데 특히 뒤의 두 구절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요즈음 친절한 스승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은 지식이 아닌 온몸으로 체득하여 스스로 발현하는 것이기에 아무리 자세히 설한다고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제자를 크게 망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스승의 역할은 다만 사잇길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길 안내자인 것입니다.

고향 이웃집할머니에게 당한 일화[계변파자화溪邊婆子話]

도일 스님이 회양 선사로부터 법을 얻고 나서 이름을 떨치던 중 고향인 사천에 들렀습니다. 금의환향하니 모든 사람들이 “큰스님이 오셨네.”, “우리 마을에 인재人才가 나셨네.”하고 야단법석인데, 당시 근처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이웃집 할머니의 다음과 같이 툭 내뱉는 한마디는 그야말로 환영사의 압권(壓卷)이었습니다.

“무슨 대단한 경사나 난 줄 알았더니, 뭐야! 마씨 집의 키질하던 코흘리개가 아니냐!”[將謂有何奇特 元是馬簸箕家小子.]

그러자 마조 선사의 황당해하는 상황이 송대의 자료인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제1권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통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부디) 고향에는 가지 말게./ 고향에 가면 도인(道人) 대접받기가 어려울 걸세./ 내가 고향에 들렸더니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이웃집 할머니가/ 부끄러운 코흘리개 시절의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더군. [勸君莫還鄕 還鄕道不成 溪邊老婆子 喚我久時名]”
 
군더더기: 마조 선사께서 비록 늘 ‘평상심이 바로 도[平常心是道]’라고 제창했던 대선사였지만, 고향 할머니의 한마디에 허를 찔려 당시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분별없는 평상심을 드러내며 응대하시겠습니까?

끝으로 필자가 숭산 선사님께 입실해 점검받았던, 지난 <불교닷컴> 칼럼 17. ‘눈 깜짝할 사이에 그르칠 우리 인생’에서 다룬 <벽암록> 제3칙인 마조 선사의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 대목도 함께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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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6 07:55:01
밝은 대낮에
부처를 찾으면 안되지 ㆍ그럼에도 불구하고 ㆍ
또 다시 ㆍ부처가ㆍ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마치 훔친 물건을 껴안고
ㆍ나는 도둑이 아니라고ㆍ 절구하는 격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