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에서 '깨달음'이란 단어는 금칙어에 가깝다. 지난 1980~1990년대 성철 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돈점 논쟁' 후 20여 년 동안 '깨달음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선원과 강원에서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는 자조의 표현들이 난무했다. 수행자들은 수십 년을 '투자'했지만 깨달았다는 수행자는 도무지 소식이 없다. 경전과 선어록을 뒤적거리며 마치 '보물찾기' 하듯이 깨달음 퍼즐을 끼워 맞추는 학자들의 논문들은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9월 당시 조계종 교육원장이었던 현응 스님(현 해인사 주지)이 저서 <깨달음과 역사> 발간 25주년을 맞아 "깨달음은 연기관의 이해를 확립함이며, 삶의 괴로움의 문제를 이러한 통찰과 이해로써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최근의 깨달음 논쟁이다.
현응 스님은 깨달음을 '이해하는 깨달음'과 '이루는 깨달음'으로 구분했고, 스님의 이러한 깨달음 인식은 "알음알이에 불과하다" "깨달음은 이해가 아닌 체득의 문제다" 등 비판과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불교에 깨달음 논의는 조용히 뒷방에서 소곤거리는 단어가 됐다. 오히려 세속의 자본주의 사고방식이 더 깊이 승단으로 들어와 '깨달음'이란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다.
대담하게도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은 '깨달음'을 정면으로 다룬다.
"내가 정의하는 깨달은 사람이란,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세상의 본질이 무아와 연기임을 명백하게 이해하고, 자기 삶에 적용하여 생로병사에 걸림이 없게 되며, 이에 관련한 더 이상의 공부가 필요 없게 된 사람이다. 나는 지금 그렇다."
저자 김영식 씨의 말이다. 확신에 찬 표현이다. 앞서 현응 스님은 깨달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라며 '잘'이란 부사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저자는 이를 "명백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깨달음의 전과 후를 나누는 기준을 "명백함"으로 표현한다.
현응 스님이 깨달음을 관찰자의 시각, 객관화된 시각으로 표현했다면 저자는 이를 행위자의 시각, 자신의 시각으로 선언했다. 이 책은 저자인 김영식 씨의 깨달음에 대한 글이다.
책에 담긴 79편의 모든 글은 그가 직접 체험한 깨달음 내용을 풍부한 과학적 근거와 논리적인 글쓰기로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글이 빛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깨달음을 다루는 '지성의 언어'에 있다.
"지성이 부족한 사람도 깨달을 수 있지만, 깨달은 사람이 입을 열어 설명하는 일에는 지성이 필수적이다"고 말할 정도로 저자는 깨달음을 지성의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저자는 깨달음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싶어 한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심하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직업을 버릴 정도로 전념하는 수행을 해야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저자 김영식 씨는 2009년 회사의 모든 주식과 경영권을 포기하며 회사 문을 나섰다. 일 중독으로 일군 회사였지만, 나올 때는 작은 아파트, 2003년식 소나타, 노트북이 전부였다. 그 후 서울의 작은 아파트에서 은둔하며 화두를 들고 좌선 정진했다. 2011년, 50세가 되는 날, 남은 생을 수행에 힘쓰고자 모든 것을 정리하며 아내와 함께 충북 단양으로 낙향했다. 65세대의 작은 마을에서 소규모 농사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고된 육체노동의 일상 속에서 간절함으로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하며 잘라냈다. 그러던 중 2015년 어느 날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언제 깨달았는지를 모른다. ...질문들이 사라졌고 해답은 명백해졌다. 질문과 간절함이 사라진 곳에는 명백함이 남았다. ...불교 경전, 화두 공안, 경전 해설서 등의 내용이 환해졌다. ...번역이 잘못된 것, 저자가 자기 말이 아닌 베낀 글을 쓴 것도 구분이 되었다. ...문제들이 저절로 사라졌고 온 세상이 해답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내가 건너간 것이 아니고 그것이 건너온 것이다. ...세상은 모든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인과를 따라 자연스럽게 생멸하고 있다. 거기에 잘못된 것이나 긍휼이 여길 것은 없으며, 지금 그대로 완벽하다."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김영식 지음|어의운하|값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