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깨달음' 논쟁 불씨 살릴 책
한국불교 '깨달음' 논쟁 불씨 살릴 책
  • 조현성 기자
  • 승인 2020.08.28 14:4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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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

 

한국불교에서 '깨달음'이란 단어는 금칙어에 가깝다. 지난 1980~1990년대 성철 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돈점 논쟁' 후 20여 년 동안 '깨달음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선원과 강원에서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는 자조의 표현들이 난무했다. 수행자들은 수십 년을 '투자'했지만 깨달았다는 수행자는 도무지 소식이 없다. 경전과 선어록을 뒤적거리며 마치 '보물찾기' 하듯이 깨달음 퍼즐을 끼워 맞추는 학자들의 논문들은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9월 당시 조계종 교육원장이었던 현응 스님(현 해인사 주지)이 저서 <깨달음과 역사> 발간 25주년을 맞아 "깨달음은 연기관의 이해를 확립함이며, 삶의 괴로움의 문제를 이러한 통찰과 이해로써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최근의 깨달음 논쟁이다.

현응 스님은 깨달음을 '이해하는 깨달음'과 '이루는 깨달음'으로 구분했고, 스님의 이러한 깨달음 인식은 "알음알이에 불과하다" "깨달음은 이해가 아닌 체득의 문제다" 등 비판과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불교에 깨달음 논의는 조용히 뒷방에서 소곤거리는 단어가 됐다. 오히려 세속의 자본주의 사고방식이 더 깊이 승단으로 들어와 '깨달음'이란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다.

대담하게도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은 '깨달음'을 정면으로 다룬다.

"내가 정의하는 깨달은 사람이란,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세상의 본질이 무아와 연기임을 명백하게 이해하고, 자기 삶에 적용하여 생로병사에 걸림이 없게 되며, 이에 관련한 더 이상의 공부가 필요 없게 된 사람이다. 나는 지금 그렇다."

저자 김영식 씨의 말이다. 확신에 찬 표현이다. 앞서 현응 스님은 깨달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라며 '잘'이란 부사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저자는 이를 "명백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깨달음의 전과 후를 나누는 기준을 "명백함"으로 표현한다.

현응 스님이 깨달음을 관찰자의 시각, 객관화된 시각으로 표현했다면 저자는 이를 행위자의 시각, 자신의 시각으로 선언했다. 이 책은 저자인 김영식 씨의 깨달음에 대한 글이다.

책에 담긴 79편의 모든 글은 그가 직접 체험한 깨달음 내용을 풍부한 과학적 근거와 논리적인 글쓰기로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글이 빛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깨달음을 다루는 '지성의 언어'에 있다.

"지성이 부족한 사람도 깨달을 수 있지만, 깨달은 사람이 입을 열어 설명하는 일에는 지성이 필수적이다"고 말할 정도로 저자는 깨달음을 지성의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저자는 깨달음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싶어 한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심하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직업을 버릴 정도로 전념하는 수행을 해야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저자 김영식 씨는 2009년 회사의 모든 주식과 경영권을 포기하며 회사 문을 나섰다. 일 중독으로 일군 회사였지만, 나올 때는 작은 아파트, 2003년식 소나타, 노트북이 전부였다. 그 후 서울의 작은 아파트에서 은둔하며 화두를 들고 좌선 정진했다. 2011년, 50세가 되는 날, 남은 생을 수행에 힘쓰고자 모든 것을 정리하며 아내와 함께 충북 단양으로 낙향했다. 65세대의 작은 마을에서 소규모 농사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고된 육체노동의 일상 속에서 간절함으로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하며 잘라냈다. 그러던 중 2015년 어느 날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언제 깨달았는지를 모른다. ...질문들이 사라졌고 해답은 명백해졌다. 질문과 간절함이 사라진 곳에는 명백함이 남았다. ...불교 경전, 화두 공안, 경전 해설서 등의 내용이 환해졌다. ...번역이 잘못된 것, 저자가 자기 말이 아닌 베낀 글을 쓴 것도 구분이 되었다. ...문제들이 저절로 사라졌고 온 세상이 해답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내가 건너간 것이 아니고 그것이 건너온 것이다. ...세상은 모든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인과를 따라 자연스럽게 생멸하고 있다. 거기에 잘못된 것이나 긍휼이 여길 것은 없으며, 지금 그대로 완벽하다."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김영식 지음|어의운하|값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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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생불멸 2020-09-02 00:05:58
불교의 근본 원 리는 불생불멸이다라고 성철스님게서 말씀 하셨어요
아래 댓글 내용 감사한 마음 으로 읽었습니다
불교방송 에서 덕일스님 의 대반열반경? 언뜻 보았는데요 열과 성 의를 다해 강 연하시고
감사합니다 스님들 이생 에서 부지런히 수행하셔서 꼭 깨달음 을 증득하시길 두손모아 빌겠습니다
모든 분들 속세에서나 속세를 떠나거나 깨달음 향해 나아가셔서 고통 의 바다인 윤회를 벗어나시길

나그네3 2020-08-29 13:08:42
구현 설명2

통찰지견이란
일체境界를 모두 꿰뚫어 아는 지식적 지혜가 아니라,
일체境界가 해탈된 진여와 절대 무관함을 통찰하는
견해를 의미한다.

즉,
凡所有相 皆是虛妄의 견해를 의미하는 것이다.
見하되 집착없이 있는 그대로만 보게되는
견해가 되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해탈자의 無變의 性品이며, 견해이며,
해탈 智見인 것이다.

좀더 자세한 구현설명은-
<다음블러그>에서
미주현대불교 카페의 <한줄 수행기>란에
"불교수행의 실제"라는 제목으로( 3회의 댓글에 1.2.회가 들어있슴)

2019.8.1.부터 (42회)의글을
반복하여 참구해 본다면,
불교수행을 이해하는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물론,
이해의 몫은 각자의 몫이 되겠지만 말이다.

합장.

나그네2 2020-08-29 12:19:38
前篇의 구현설명

불교궁극의 해탈Nirvana체득을 위한 수행체계는
오직 三學이라는 수행체계를 완성으로 성립된다.

戒學은
戒律의 계목을 지키는 단계가 아니라,
意根에 生起하는 오온의 근원인 육경계를
六根의 門에 들지못하도록 警戒단속하는
수행단계이며,

定學은
戒學의 수행단계가 완성된 중생근본의 소멸단계인 해탈Nirvana경지이며,
그 체득은 三昧를 통해 성립된다,

慧學은
定學의 단계를 완성하고 삼매에서 깨어난 후에
그 완성자에게 드러나는 통찰적 지견을 의미하며.
모든것을 앎, 통찰知 또는,깨달음(?)이라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 있어 깨달음이란 단어가
많이 형용되고 있으나
진정한 주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해탈경지 체득 이후의 後有證이기 때문이다.

나그네 2020-08-29 08:51:27
저자께선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불교,
깨달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중생굴레에서 해탈Nirvana완성을 위한 가르침임을
明知해야 할것이다.

수행의 정좌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바른 가부좌의 의미는
해탈 즉, Nirvana를 체득하기 위한
준비자세이며,

깨달음 (앎)이란.
지혜적 견해 즉,
해탈Nirvana 경지체득 후에
그 완성자에게 자연스레 드러나오는 後有證,
즉,
통찰지견을 의미 하는 것이다.

만약
Nirvana경지를 삼매를 통해 체득하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결코
지혜,
즉, 진정한 깨달음(통찰지)는 성립될 수 없슴을
다시한번 明知하기 바란다.

참고 바랍니다.

합장.

역시 2020-08-28 20:12:00
청정재가의 청정수행 깨달음이라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