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스님이 선시를 발표했다
자승 스님이 선시를 발표했다
  • 법응 스님
  • 승인 2020.08.24 10:38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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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응 스님

“번뇌는 모두 사라졌다. 번뇌의 흐름도 사라졌다. 더 이상 태어나는 길을 따르지 않나니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하노라.”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 나오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사자후이다. 깨달음을 얻으시고 그와 같은 사자후를 토해내셨던 부처님은 이후 여생을 중생제도에 매진하시다가 열반에 드셨다. 평생 동안 제자를 거두시고 만 중생을 인도하시며 그 자신 수행자이자 수행집단의 지도자로서 철저하게 진리의 길을 가신 삶이었다.

과거 시대에 스님들은 때때로 법거량을 하고 게송도 지었으니 이를 모은 것이 조사어록일 것이다. 누구라도 인생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고된 일상에 치어 잊고 있다가도 특정한 상황에서 불현 듯 떠오르게 되는 삶의 의문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의문점에 대해 골몰하다가 문득 번쩍하고 어떤 해답 같은 것이 떠오를 때 우리는 흔히 “알았다!”, “그렇지!” 하는 소리를 순간적으로 내거나 박장대소하게 된다. 다 일상의 깨달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표현이다. 하물며 부처님께서 평생에 걸쳐 이르신 가르침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고자 하는 불가의 승려임에랴. 고단한 수행의 끝자락에서 한 생각이 번쩍이거나 일상에서 경계와 대면했을 시 그 순간을 침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역대 선지식들이 게송을 남겼고 후학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수행자가 게송을 읊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인데 이러한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게 여긴다.

몇 일전부터 <불교닷컴>에『회주 자승스님 선시』가 대문 뉴스로 올라와 있다. 실력 있는 스님이나 학자, 오피니언들의 자세한 한글 해석과 평 무엇보다 투고를 기대했는데 열흘이 다 되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만 한문 일색의 현대 작품을 다른 이가 한글로 번역을 하면 오해나 작자의 의중과도 어긋날 수 있기에 다소 염려가 된다. 한문의 어휘 이면에는 역사나 상황에 대한 함의가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글 본도 함께 공개 했다면 시대상황에도 부합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선시에는 제목이 없다. 네 단락씩 끊는 것이 의미 전달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해 바란다. 일차 직역을 하고 자재로 의역을 했다.

영화 아홉스님 포스터
영화 아홉스님 포스터

 

〇직역

喊怒戰耶(함노전야) 고함치고 화냄이 전쟁터다,
何其築場(하기축장) 어떤 타작마당(또는 건축 터다짐)을 다지는 소리인가!
晝夜不休(주야불휴) 밤낮으로 쉬지 않으니
吠狗尤猖(폐구우창) 개들이 더욱 짖어댄다네.

法堂擴聲(법당확성) 법당에는 염불소리 드높으니
咻咻世事(휴휴세사) 세상사의 신음소리로다.
神之昏懞(신지혼몽) 정신이 혼미해지니
身亦困疲(신역곤피) 육신 또한 피곤하다네. 

竹篦一聲(죽비일성) 죽비(竹篦) 내려치는 한 소리에 
坐罷蒲團(좌파포단) 포단(蒲團/방석)을 박차고 일어난다네.
鳥啼相樂(조제상락) 우는 새들 서로 즐거운데
川魚游閒(천어유한) 냇물의 고기들은 한가롭게 유영한다.

日無再中(일무재중) 해는 다시 (오늘)정오에 오지 않고
兎烏過隙(토오과극) 세월은 빠르게 흘러간다네.
六十有七(육십유칠) 예순이고 또 일곱이니
望七來卽(망칠래즉) 일흔이 곧 오겠지.

曒日之旦(교일지단) 밝은 해 떠오르는 아침이니
東窓已明(동창이명) 동창(東窓)은 벌서 밝았다네. 
夢中之夢(몽중지몽) 꿈속에서 꿈을 꾸니
胡蝶之莊(호접지장) 장자의 호접(胡蝶/나비) 꿈이로다.

坤唱長歌(곤창장가) 땅에서는 장가(長歌)를 부르고
乾舞大袖(건무대수) 허공에서는 옷소매 날리며 춤을 춘다.
須彌山兮(수미산혜) 수미산이여!
眞是娑婆(진시사바) 진실로 이것이 사바세계인가!

전체적으로 초반은 상월선원 당시의 상황에 따른 내용으로 이해된다.

〇 아래는 필자의 의역으로 원문과는 여러 곳이 상이하다

喊怒戰耶(함노전야) 세상사 시절인연이 마치 전쟁터와 같다.
何其築場(하기축장) 인간사 탐욕의 끝이 보이지를 않는다.
晝夜不休(주야불휴) 낯과 밤을 쉬지 않고 탐욕에 매여 있으니,
吠狗尤猖(폐구우창) 마치 굶은 짐승들이 고기를 마주한 것과 같다.

法堂擴聲(법당확성) 점점 커지기만 하는 법당의 염불소리는   
咻咻世事(휴휴세사) 삶에 지치고 지친 중생의 하소연이로다.
神之昏懞(신지혼몽) 중생의 아픔에 나의 마음이 찢어지고 
身亦困疲(신역곤피) 육신 또한 고통에 잠긴다. 

竹篦一聲(죽비일성) 죽비 내려치는 한 소리에 
坐罷蒲團(좌파포단) 대장부 일대사를 마친다.
鳥啼相樂(조제상락) 새들이 서로 지저귀나 다툼이 없고
川魚游閒(천어유한) 냇물의 고기들이 오고가나 서로 평화롭다.

日無再中(일무재중) 하늘의 태양은 늘 변함이 없는데
兎烏過隙(토오과극) 중생의 세월은 빠르게만 흘러간다.
六十有七(육십유칠) 육바라밀 십회향에 칠불이 미소 짓고 
望七來卽(망칠래즉) 남은 인생 또한 그러 하리다.

曒日之旦(교일지단) 새 아침의 해가 밝게 떠오르나 
東窓已明(동창이명) 천지는 어두운 적이 없다.
夢中之夢(몽중지몽) 세상사 모두가 꿈속의 꿈이니
胡蝶之莊(호접지장) 불조가 무상함을 설파한지 오래다.

坤唱長歌(곤창장가) 한번 소리를 지르니 땅 끝까지 퍼져 나가고
乾舞大袖(건무대수) 한 춤사위에 옷자락은 하늘에 닫는다.
須彌山兮(수미산혜) 수미산에 오르니
眞是娑婆(진시사바) 사바세계가 머리위에 있음이다.

자승 스님이 관련한 문헌에 선시를 공개한 것은 나름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승려가 경계를 표현한 것이 게송이고 선시로서 대중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보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선시 또는 게송을 세상에 발표하는 데는 긍정 또는 부정의 대응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것은 대중으로부터 자신의 경계에 대해 점검을 받는 기회가 되기도 하며, 저자가 게송과 어긋나는 언행을 하면 누구라도 대중은 당연히 지적을 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선시나 게송의 그 진면목은 불조의 길을 깨닫고 이후는 그렇게 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자 세상에 대한 공표다. 특히 선원 등에서 한글게송이 수시로 발표돼서 새로운 수행문화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향후 자승 전 총무원장스님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참고 - 선시 둘째 줄의 ‘축장築場’은 “九月築場圃, 十月納禾稼” “9월에는 타작마당을 다지고, 10월에는 벼를 거둬들인다.” 는 말로「시경」에 나온다. ‘축장’은 건축을 위한 기초 공사의 의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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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2020-08-30 19:09:49
喊怒戰耶 함노전야 분노한 함성 전쟁인가?
何其築場 하기축장 무었을 이곳에 지으려고
晝夜不休 주야불휴 밤낮으로 쉬지 않으니
吠狗尤猖 폐구우창 문을 지키는 개소리 더욱 크다.
法堂擴聲 법당확성 법당에 (정진)소리를 키웠으나
咻咻世事 휴휴세사 시끄러운 세상에
神之昏懞 신지혼몽 정신은 흐려지고
身亦困疲 신역곤피 몸 또한 피곤하다.
竹篦一聲 죽비일성 죽비 일성에
坐罷蒲團 좌파포단 앉은 자리를 파하니
鳥啼相樂 조제상락 새들은 노래하고
川魚游閒 천어유한 물고기 자유롭다.

日無再中 일무재중 해가 두 번 중천에 뜨는 일은 없지만
兎烏過隙 토오과극 태양 빛이 틈새로 지나고
六十有七 육십유칠 육십하고도 일곱을 넘어
望七來卽 망칠래즉 칠십을 바라본다.
曒日之旦 교일지단 밝은 해가 뜨는 아침이면
東窓已明 동창이명 동창이 이미 밝은데
夢中之夢 몽중지몽 꿈 가운데 꿈으로
胡蝶之莊 호접지장 나비는 장자이다.

나비 둘 2020-08-30 19:08:44
坤唱長歌 곤창장가 땅은 오래도록 노래를 부르고
乾舞大袖 건무대수 하늘은 긴 소매로 춤을 추니
須彌山兮 수미산혜 수미산인가
眞是娑婆 진시사바 참으로 이것이 사바세계이다.

무명처사 2020-08-29 17:22:35
근대철학을 집대성한 칸트(Walking Kant로 불리운)는 매일 정확한 시간대에 산책을 통해 복잡한 이론들을 분석 정리 하였고,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실존철학의 선구자 니체는 "모든 생각은 걷는자의 발끝에서 나온다"며 아침 마다 걸었다.
석가세존께서도 득도후 탁발과 전도여행길을 겸허한 자세로 걸으셨다.스님들은 放禪하고 한가로이 포행도 한다. 예수도 걸었지만 "네가 밟는 땅은 네게 주리라, 너로 인해 그 땅의 족속들이 복을 얻을것이니..."
그것이 탐욕의 땅밟기 시원이다. We r trav'ling in the footsteps Of those who've gone before But we'll all be reunited. . O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

무명처사 2020-08-29 16:48:11
보여주기식 엔터테인먼트 Show Biz .
상월선원에 이어 씨즌2로 행진을 보여 준단다.
무리지어 의현 진제 터전에서 출발 상월선원 경유 봉은사 도착,
로마 군대나 나찌 점령군의 공포스러운 진군이 오버랩 된다. 하지만 그들도 후일에는 고통스럽게 지쳐버린 멸망의 패잔병 길을 뒤돌아 걸었다
기왕지사 흥행에 성공하고 대박나고 싶거든 걷지말고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연출하시라~!
도보여행에 나름 경험이 풍부한 승려 도법도 캐스팅해서 끝내 바람막이 배역으로 앞줄에 세우면 그림이 한층 괜찮지 아니할까~? _()_

ㅋㅋㅋ 2020-08-28 14:02:49
자승처사가 선시를? 자승처사 머리에서는
절때 안나오고 자승처사 주위에 감투 견승들이
그럴싸하게 끄적거여준듯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