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해외 유출 불교문화재 잇단 환수
조계종 해외 유출 불교문화재 잇단 환수
  • 이창윤 기자
  • 승인 2020.08.0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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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치성광여래도·신흥사 영산회상도 ‘환귀본처’
▲ ‘속초 신흥사 영산회상도’를 보존 처리하기 전 모습. ⓒ 문화재청.

근·현대 혼란기 해외로 유출된 불교문화재가 잇따라 환수됐다.

조계종(총무원장 원행)은 7월 23일 오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에서 ‘순천 송광사 치성광여래도’를 영국에서 환수했음을 부처님께 고했다.

‘순천 송광사 치성광여래도’는 19세기말 송광사 일대에서 활동했던 수화승 향호 묘영(香湖 妙英)과 차화승 용선 천희(龍船 天禧)이 고종 35년(1898)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는 불화다. 비단 바탕에 그렸는데, 크기가 가로 141cm, 세로 102㎝이다. 중앙에 치성광여래가 있고,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합장을 하고 서 있는 모습이다. 치성광삼존 좌우에는 칠여래와 칠원성군, 삼태육성이 좌우에 배치돼 있다.

‘치성광여래도’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 6월 영국 경매시장에 출품된 한국문화재를 살펴보던 중 발견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 사실을 조계종에 알렸고, 조계종은 화기와 화풍을 분석해 송광사 청진암에 봉안됐던 불화임을 확인했다.

청진암은 송광사 16국사 중 제3세 국사인 청진국사 몽여(淸眞國師 夢如) 스님이 창건한 암자다.

조계종은 송광사 16국사 중 한 분인 청진국사 몽여(淸眞國師 夢如) 스님이 창건한 청진암에 철종 8년(1857)년 성산각을 건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 전각에 ‘치성광여래도’가 봉안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청진암은 순종 2년(1908) 의병과 일본군이 전투하는 과정에서 소실된 뒤 1919년 중수됐다. 1927년 성산각이 철거되고, 1938년에는 송광사에 도성당을 중건하면서 청진암 재목을 가져다 쓰면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치성광여래도’도 이 즈음 도성당으로 옮겨졌다가 한국전쟁 등 혼란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7월 29일에는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관장 Michael Govan)가 소장하고 있던 ‘속초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돌아왔다.

조계종과 LA카운티미술관은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6월 16일 반환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영조 31년(1755) 6월 조성된 불화다. 크기는 가로 4.1m, 세로 3.4m이다. 원래 신흥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의 후불탱화로 봉안돼 있었지만,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6월부터 10월 사이에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출 당시 6조각으로 자른 것을 2010년부터 이듬해까지 박지선 용인대 교수가 LA카운티박물관 의뢰로 복원했다.

함께 환수된 시왕도는 정조 22년(1798) 조성된 불화다. 크기는 가로 12.4cm, 세로 93.9cm이다. 이번에 돌아온 시왕도는 3폭이다.

조계종은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를 환수하기 위해 2015년 1월 반환 요청을 시작으로 수차례 협상가졌다. 이번에 돌아온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는 8월 말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리는 고불식에서 공개된 후 원 소장처인 신흥사로 이운될 예정이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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