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학에서 길지의 핵은 구녕이다. 풍수용어로 혈이다 혈은 실존적 존재이나 혈의 완전체를 본 사람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혈을 확신하고 혈을 보았다는 풍수사가 있지만 그 실체를 파악하기란 무척 어렵다. 따라서 풍수사에 따라 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그들 각각의 직관과 영감에 따른 실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풍수사가 혈을 현장에서 증명하는 방법으로 혈증오악이 있다. 혈증오악을 갖추었다면 혈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혈의 형태이지 혈임을 증명해주지는 못한다. 혈은 발복에서 완성되므로 그 작용이 증명되지 못하면 가짜 혈이다. 이런 가짜 혈을 가화(假花)라 한다. 꽃 모양일 뿐 진짜 꽃은 아니라는 말이다. 소위 자연의 오묘함에 인간이 속은 꼴이다. 즉 혈의 형태가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심지어 발복으로 증명된 혈이라고 해도 그것을 뜯어보거나 해체해 볼 수 없다. 심정적으로 공감할 뿐이다. 이것이 풍수학이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요인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로부터 풍수발복을 믿지 말라는 경구가 쏟아졌다. 시중에 이를 빙자하여 사기를 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풍수사가 실력이 부족하여 혈이 아닌 엉뚱한 꼿을 혈이라고 해도 혈이 아님이 드러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우길 수 있는 것이다. 혹시나 혈이겠거니 하면서 한없이 발복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잘못된 맹신에 의해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고자 많은 사대부들이 밤을 이용하여 자기가 직접 풍수를 공부하곤 했다. 그래서 주유야풍(晝儒夜風)이라 했던가. 낮에는 유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풍수를 공부했다는 말이다. 오직 자기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
혈은 하나의 유기체적 존재로 혼백을 가지고 있다. 즉 혈판과 그것을 지탱하는 기(氣)가 한 몸이다. 혈은 해체하거나 분리해서 확인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순간 혈은 죽어버린다. 사람의 신체를 조각내면 죽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풍수의 혈은 기(氣)를 품고 있다. 기는 바람을 타면 사라진다는 원칙을 기억하시는가. 혈을 해체하거나 분리하는 순간 혈속에 있는 기는 사라진다. 따라서 혈을 찾으면 혈이라고 믿을 뿐 다른 방도가 없다. 그래서 명사(名士)가 아닌 진정한 명사(明師)가 필요하다. 명사(明師)는 거짓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며 혈을 찾았다고 해도 발복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신하게 기다릴 줄 안다.
의뢰인이 시중의 작대기 풍수사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풍수 지식은 부족해도, 풍수사의 진실성과 인간됨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면 운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악지가 필유여앙(積善之家 必有餘慶, 積惡之家 必有餘殃,)'이란 격언이 회자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