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선생님, 절집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스승이셨습니다
김종철 선생님, 절집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스승이셨습니다
  • 명진 스님
  • 승인 2020.06.29 11: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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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종철 선생 추도사] 명진, 평화의길 이사장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전환이냐 자멸이냐’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고 김종철 선생이 지난 2013년 7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전환이냐 자멸이냐’를 주제로 강의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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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생님, 김종철 선생님...
몇 번이나 불러봅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승을 떠나 속으로 살고 선생님은 속을 떠나 승으로 사셨으니 선생님과 저는 승속이 뒤바뀐 것 같습니다.

세상을 연민하고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성찰하면서 평생 수행자 자세로 살아오신 김종철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수행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스승이셨고 이 어지럽고 어두운 세상에 길을 일러주시는 사표가 되는 어른이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이렇게 황망히 떠나보내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반백년 넘게 출가해 수행한다고 애쓰고 살아가면서 입버릇처럼 '생사가 없다' '생사가 둘이 아니다' 이렇게 노래했건만, 속절없이 무너지는 가슴, 허전하여 기댈 데 없는 가슴은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30년 전에 만난 저의 스승
 우리나라 대표 생태운동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25일 별세했다.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부터 영남대 교수로 재직했다. 1972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거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표 생태운동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25일 별세했다.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부터 영남대 교수로 재직했다. 1972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거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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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생님,
살아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끝없이 고민하시면서 물질의 욕망으로부터 세상과 인간이 더렵혀지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하시던 생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절집에 갇혀 있던 제가 광주항쟁을 알고서 비로소 세상에 눈뜬 1986년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가까이 있으나 멀리 있으나 언제나 저의 스승이셨습니다.

절집에서 만나 보지 못한 스승을 저는 세속에 나와 참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런 스승 중 한 분이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왜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나 하는 자책이 자꾸 듭니다.

선생님, 1990년대 초반 <녹색평론>을 만드실 때 저는 반대했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려 파멸이 아니고서는 결코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러한 세상인 줄 모르지 않으셨지만, 그런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꿈꾸는 것이, 더불어 사는 것을 꿈꾸는 것이 비록 꿈일지라도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하셨지요.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 희망을 버리시지 못한 까닭은 인간에 대한 연민, 생명에 대한 한없는 자비였다고 생각합니다. 생명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비 때문에 절망의 세상에서 결코 절망할 수 없었고, 타락한 세상이지만 결코 저버릴 수도 없으셨던 것이겠지요.

모든 사람에게 박수 받으려 하지 마라

김종철 선생님,
빈소에 앉아 선생님의 환한 영정사진을 보면서 다시금 그리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세상사람들이 선생님을 까칠한 분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처럼 30년 세월을 건너 제가 아는 선생님께서는 따뜻하기 그지없는 분이셨고 한없이 인간적이 분이셨지요. 다만 더러운 세상, 타락한 세상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비판하셨고 탐욕의 세상에 대해 한 치의 타협도 양보도 없으셨을 따름이겠지요.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제 삶을 담은 책 <스님은 사춘기> 출판기념회에 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박수 받으려 마십시오. 그 길은 사기꾼의 길입니다"라고 일갈하셨습니다. 이 그릇된 세상에서, 이 비뚤어진 세상에서, 가진 자와 강자가 없는 자와 약한 자를 억누르는 이 불의한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박수 받는 길이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려 하고 좋은 평판을 받으려 하기에 흔히 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할 길은 김종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박수 받는 길이 아니라 옳은 길입니다. 옳은 길을 가다 고통 받을지라도, 또 때로는 오해받고 비난받을지라도 그것이 인간 양심으로 부끄럽지 않다면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꿈꾸시던 것과 같이 그것이 비록 꿈이고 이상일지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면,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라면 가야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일일 것입니다.

선생님,
평생 자리 욕심도 없으셨고 물질적 욕심도 없으신 선생님께 지금 제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평화의길'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아주십사 부탁드렸을 때, 결코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셨지만 두말없이 맡아 주시면서 생태운동은 본질적으로 함께 살자는 평화운동이고, 평화운동도 우리가 생명답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것이니 둘이 아니라고 하셨던 것 기억합니다. 그 둘이 아닌 길을 선생님과 함께 오래도록 같이 걷고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가셔야했는지 아쉬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마음 속에 맴도는 부끄러움... 큰 가르침
 2018년 6월 명진 스님의 <어떤 게 잘사는 겁니까> 북콘서트 때 고 김종철 선생은 ‘평화의길’ 창립준비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함께 평화의 길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2018년 6월 명진 스님의 <어떤 게 잘사는 겁니까> 북콘서트 때 고 김종철 선생은 ‘평화의길’ 창립준비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함께 평화의 길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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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생님,
선생님을 떠나보내면서 제 마음 속에 가장 많이 맴도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부끄러움'입니다. 하지만 단지 '부끄러움'만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종철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언젠가 말씀하셨지요? 죽지 않으려 하지 말라고. 우리가 죽어야 후손들이 살 수 있고, 뭇 생명들이 또한 살아갈 수 있다고. 절집에서는 밥 먹는 것을 '공양(공양)'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본래 '공희(공희)'에서 왔다고 하시면서요. '공희', 다른 말로 희생입니다. 내가 산다는 것은 다른 존재의 희생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위해서, 뭇 생명들을 위해서 기꺼이 우리 자신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
육신의 덧없음과 허망함을 몸으로 보여주고 가시니 이 또한 큰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머리를 깎았으나 어리석기 한이 없는 이 중생에게 얼마나 큰 가르침인지 모릅니다.

김종철 선생님,
참담한 가운데 큰 가르침을 남겨 주신 것 잊지 않겠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가기로 다짐했던 뭇 생명이 더불어 사는 평화의 길, 제가 이어 가겠습니다. 그 길에 늘 함께 해주십시오. 이 생에 만나 뵐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 이 글을 제휴매체인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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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2020-06-29 14:27:14
극랑왕생을 발원합니다

매원 2020-06-29 14:22:22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 시대에
경책을 울려주시던 큰 어른을 또 잃었습니다.
선생님의 극락왕생을 기원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