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 없는 포교
포교 없는 포교
  • 현안 스님
  • 승인 2020.05.2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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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안 스님의 수행이야기 23

몇 년 전 제가 아직 미국에 있을 때 일입니다. 그 당시 제 은사 스님이신 영화스님의 사찰인 미국 캘리포니아 노산사와 위산사에 한국 사람들이 간혹 방문을 오시기 시작했는데, 그 분들이 저에게 “불교 포교 활동을 참 잘하시는군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 말씀을 해주시면 내심 ‘어떤 부분을 포교라고 하시는 것일까?’라고 묻곤 했습니다.

영화 스님을 만나러 또는 참선을 배우러 오는 분들과 함께 수행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그냥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런 대가도 원하는 것도 없이 수 년간 지도해 주신 스승님에게 제가 보답할 수 있는 최상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매주 미국 주민센터에서 참선을 지도하고, 절의 방문객들에게 최대한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불교 잡지에 글을 쓰고, 영화 스님의 법문과 책을 통번역하는 일들이 포교활동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좋은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최근 한국에 귀국해서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 어떤 분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성실하고 마음 씀씀이가 좋아보이는 이 분의 꿈은 장사를 열심히 하고 돈을 모아서 집 윗층에 어떤 노스님을 모시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 이들이 불교에 관심이 없어서 우려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근처 대학교에서 지도하는 교수님들이 한 명당 학생 3명씩만 포교하고, 또 이런 학생들도 한 명당 평생 단 3명씩만 포교를 해도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네 맞아요. 요즘 절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포교를 그렇게 하면 첫 단추부터 잘못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불교신자인지 불교신자가 아닌지 분별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우리들로 하여금 차별하지 않고, 변두리 없이 즉 막힘이 없는 상태가 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너는 천주교인, 나는 불교인’라는 생각부터 시작한다면 이는 바로 ‘내가 너를 불교인이 되도록해서 구제하겠다’라는 마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난 맞고 너는 틀리다’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운영하던 참선 교실의 학생 중 80%는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그 지역에는 중남미 계열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이들은 대부분 모태신앙으로 카톨릭 신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제 참선 교실에 오기는 하지만 천주교의 신앙심이 강렬한 사람도 꽤 있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먼저 왜 명상을 하고 싶어하는지 묻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명상(또는 참선)을 통해 성취하고 싶어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영화 스님이 저에게 대승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해주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행하는 자는 절대로 다른 이들에게 내 의도나 의지를 강요하면 안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선 교실을 지도하면서 학생들이 묻기 전에 제 자신의 지식과 믿음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수행하는 자가 선정의 힘이 클수록 던지는 한 마디에도 힘이 있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 참선을 배울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 스님은 제가 묻기 전에는 미리 무언가를 가르쳐 주시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수 년간 영화 스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스님은 이미 훨씬 더 많은걸 알고 계셨는데, 한번도 마음을 조급해 하시거나, 내가 너무 모른다고 무시를 하시거나 그런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도 매우 감사함을 느낍니다. 영화 스님은 제자들을 위해 항상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셨고, 그러한 이유로 지난 수년간 수행을 하면서 해야했던 많은 선택들도 제 스스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출가 후에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내 스스로한 선택임을 알기에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종교 생활로 좋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좋은 의도로 다른 이들에게 권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가 부족하여 자칫하면 본인의 의도를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게 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스스로 선택에 맡기지 않고 강요나 힘으로 다른 이들을 따르게 하는 것은 청정하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특히 부처님의 법으로 수행하고, 그런 영적인 힘으로 다른 이들에게 내 의지를 강요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사악한 존재가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제가 지도한 참선 교실에 꾸준히 참여한 학생들은 그들이 누구이든 상관 없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힘들어도 열심히 참으면서 수련한 이들은 스트레스 감소, 마음의 편안함, 불안증, 우울증, 불면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의 개선,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향상 등의 많은 이점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참선 학생들은 종교, 인종, 나이 등에 상관 없이 새로 온 학생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저에게 있어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학생들이야 말로 성당에 다니든 교회에 다니든 더욱 대승적이고 불교적인 학생들입니다. 스스로의 아상의 변두리를 내리고, 본인이 겪었던 몸과 마음의 어려운 경험들을 나누고, 함께 수행하자고 독려하는 이런 학생들이야 말로 참된 불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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