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쇼카왕부터 청호 스님까지 중생구제 실천하고 이어가
아쇼카왕부터 청호 스님까지 중생구제 실천하고 이어가
  • 이창윤 기자
  • 승인 2020.05.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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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역사 속 불교계 구호·구제활동
▲ 봉은사 주지 나청호 스님이 대홍수로 위기에 처한 이재민을 구한 사실을 전한 매일신보 1925년 7월 23일자 2면 기사

어려운 이 돕는 일 ‘복전’으로 여겨

코로나19는 한국사회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모임과 약속은 취소되거나 미루어졌고, 시민들은 바깥나들이를 삼가며 스스로 고립 생활을 이어갔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방역선진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계의 노력도 돋보인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법회와 기도, 행사를 취소하거나 미룬 것은 물론, 일부 사찰은 산문까지 폐쇄하는 등 방역에 적극 동참했다. 심지어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한 달 미뤄 윤 사월초파일인 5월 30일에 봉행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나라와 시민이 어려울 때 앞장서서 극복해온 불교계가 그 저력을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나라와 시민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불교의 전통은 어제 오늘 생긴 게 아니다. 역대 선지식은 고통을 여의고 중생을 구제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면면히 실천하고 이어왔다.불교에서는 어려운 이, 보호가 필요한 이를 돕는 것을 복전(福田)으로 여긴다. 이복전(二福田)의 하나인 ‘비전(悲田)’은 어려운 사람이나 아픈 이에게 베푸는 것이고, 삼복전(三福田)의 하나인 ‘빈궁복전(貧窮福田)’은 가난하여 살아가기 어려운 이를 돕는 것이다. 또 팔복전(八福田)은 △먼 길에 우물을 파는 일 △나루에 다리 놓는 일 △험한 길을 닦는 일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일 △재난 당한 이를 돕는 일을 포함한다. 《범망경(梵網經)》에서는 간병복전(看病福田)을 ‘복전의 으뜸’이라고 했다.

중생의 아픔 보듬은 여러 선지식

경전에는 중생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여러 선지식이 소개돼 있다. 아나따삔디까(Anāthapiṇḍika) 장자는 의지할 곳 없는 이를 도와 ‘급고독(給孤獨)’으로 불렸고, 위사카 우바이는 “눈앞에서 굶거나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어린이가 없도록 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실천했다. 《승만경》의 주인공인 승만 부인도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가난한 중생을 돕겠다.”(십대원 중 제6원)거나, “의지할 데 없거나, 갇혔거나, 병났거나, 여러 재난을 만난 중생을 도와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제8원)는 서원을 세웠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전륜성왕)의 상징인 아쇼카왕은 불교의 구호·구제사상을 제도적으로 실천한 첫 인물이다. 아쇼카왕은 자신의 통치사상을 바위나 돌기둥에 새겨 실천하도록 했는데, 아쇼카법칙이 그것이다. 그중 상당수가 ‘복지시설을 만들고 자선사업을 펼쳐 모든 이가 행복하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아쇼카왕은 수용시설을 만들어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였고, 사람과 동물을 치료하도록 병원을 설치하고 약초를 재배했다. 여행자를 위해 가로수를 심고 우물, 도로 표지, 교량, 숙박시설을 만들었으며, 무분별한 살생을 금지해 생명의 존엄함을 일깨웠다. 또 죄인을 풀어주고, 사형수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었으며, 왕족과 왕실 친인척, 귀족이 자선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했다.

삼계교의 자선기관 무진장원

중국불교의 구호·구제활동은 삼계교의 무진장원(無盡藏院)과 비전양병방(悲田養病坊), 숙방(宿坊)이 대표적이다.

수나라 신행(信行, 540~594) 스님이 일군 삼계교(三階敎)는 사회적 실천을 중시한 종파다. 신행 스님은 말세 중생을 제도하는 방법의 하나로 보시행을 강조했다. 신행 스님은 보시를 하면 과거의 죄악이 소멸된다고 가르쳐 삼계교에는 많은 재물이 모였다. 이 재물을 물적 토대로 설립된 자선기관이 무진장원이다. 무진장원은 재물을 빌려준다는 문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빌려준 재물도 빌린 이가 약속한 대로 스스로 갚도록 했다.

비전양병방은 당 측천무후 때 여러 사찰에 설치된 사회사업기관이다. 비전양병방은 비전방과 양병방으로 구분된다. 비전방은 가난한 이를 지원하려고 마련한 토지를 운영한 사찰이고, 양병방은 질병 치료와 굶주린 어린이를 수용한 시설이다. 비전양병방은 당 무종이 일으킨 회창폐불(會昌廢佛) 때 철폐되었다가, 빈민과 병자가 증가하자 양병방만 다시 운영됐다.

숙방은 사찰이 여행자를 위해 운영한 무료 숙박시설이다.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나 숙박할 수 있었으며, 먹을 것을 제공했다. 오대산 보통원(普通院)이 대표적이다.

고려시대 구호·구제사업의 중심은 사찰

한국불교의 구호·구제사업은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이래 꾸준히 지속되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관련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보인다. 왕실부터 귀족, 평민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 사람이 땅을 시주한 고려 사찰이 부유했다. 때문에 흉년이 들면 사찰은 굶주린 백성을 돕는 중심지가 됐다. 연복사와 개국사가 대표적이다.

고려시대 사찰은 대부분 구호·구제사업을 펼쳤다. 사찰은 시주 받은 전곡의 이자로 재물을 늘리는 제도인 ‘보(寶)’를 통해 재원을 마련했다. 고려시대 구호·구제시설은 국가와 불교계가 협력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위보(濟危寶), 대비원(大悲院), 혜민국(惠民局) 등이 대표적이다. 제위보는 질병과 굶주림을 대비해 개설한 기금 관리 기관이었고, 대비원은 질병을 치료하고 유민을 구호하는 기관이었다. 개경 동쪽과 서쪽에 한 곳씩 두어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으로도 불렸으며, 서경에도 분사를 한 곳 두었다. 혜민국은 질병치료를 위해 설치한 상설 의료기관이다.

숭유억불 정책 영향으로 점차 축소

조선시대 불교계의 구호·구제사업은 세종 대까지는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점차 축소됐다. 이 시기 불교계 구호·구제사업의 특징은 사찰 단위보다는 승려 개인 차원에서 이루졌다는 점이다.

태종 때 장원심(長願心) 스님은 굶주린 자는 먹이고, 헐벗은 이는 입혔으며, 앓는 이는 힘을 다해 돌보았다. 홀로 죽은 이는 장사지냈으며, 도로를 내고 다리를 건설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전국 곳곳에 스님의 발길이 닫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세종 때 탄선(坦宣) 스님은 왕명으로 승려 300명과 함께 병들고 다친 군인을 치료하였고, 천우, 을유 두 스님은 왕에게 상소해 병든 이를 한증(汗烝)으로 치료하는 온수욕장을 만들어 운영했다.

세종 대까지 국가가 시행하는 빈민구제, 의료사업은 대부분 사찰이 담당했다. 나라에서는 승려를 각종 부역에 동원했는데, 부역에는 의료 활동과 굶주린 백성을 구호하는 일이 포함됐다.

일제 강점기, 다양한 구호·구호사업 펼쳐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불교계는 빈민구제, 아동복지, 청소년 복지, 노인복지, 지역복지 등 다양한 구호·구제사업을 펼쳤다.

을축년 대홍수 때 활약한 봉은사 나청호(羅晴湖) 스님은 일제 강점기 불교계 구호·구제사업을 대표하는 분이다. 스님은 1925년 3일 밤낮으로 내린 비로 한강이 범람하자 나무배 5척을 빌려 잠실, 부리, 신천 등 세 마을 사람 708명을 구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 수해의연금을 지원했다. 스님은 1929년에도 극심한 가뭄으로 굶주리는 사람이 속출하자 이재민 구호에 나서는 등 봉은사를 중심으로 꾸준히 구호·구제활동에 나섰다.

불교계는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월정사 등 전국 주요 본사와 철원 심원사, 진주포교당, 양주 묘숙사 등 각 지역 사찰이 정기적으로 구호·구제활동을 펼쳤다.

또 능인포교당 능인유치원, 월정사 영월포교당 금성유치원, 유점사 금강유치원, 함양포교당 함양유치원, 심원사 강습소, 대각사 일요학교, 능인포교당 능인여자야학회, 공주불교포교당 실달강습소 등 교육사업과 화광보육원, 무량사 보육원, 대전고아원, 자정원, 목포고아원, 자광원, 청곡사 고아원, 무량사 고아원 등 아동복지사업도 활발히 펼쳤다.

불교중앙포교소가 펼친 의료사업도 돋보인다. 불교중앙포교소는 1923년 불교제중원을 설립했다. 내과, 외과, 조산과를 운영한 불교제중원은 1925년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불교계가 처음으로 설립한 현대적 의료기관으로서 의료복지의 맥을 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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