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사관(死關)
신무문관: 사관(死關)
  • 박영재 교수
  • 승인 2020.04.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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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42.

성찰배경: 2020년 4월 20일 현재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증 증가 추세로 인해 국내는 누적 확진자가 10674명이고 사망자가 236명이며, 지구촌 전체로는 확진자가 227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6만 명을 곧 넘어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문관> 제6칙 ‘세존염화’를 통해 소개드렸던, 영산회상에서 세존으로부터 법을 부촉(咐囑) 받아 선종(禪宗)의 초조(初祖)가 된 마하가섭 존자로부터 오늘날까지 전법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선사들은 모두 화두를 타파하며 온몸으로 체득한 ‘참나’를 통해 사관(死關)을 정면돌파한 후 입적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삶을 이어가신 분들입니다.

한편 앞글에서 남양혜충(南陽慧忠, ?-775) 국사와 시자 탐원응진(耽源應眞, ?-?)과의 문답이 담긴 <무문관(無門關)> 제17칙 ‘국사삼환(國師三喚)’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구촌 곳곳으로 감염과 죽음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이때, 시기적절하게 <무문관>에서 아쉬운 부분을 상보적으로 채워주는 <벽암록(碧巖錄)> 가운데 특히 주목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죽음을 주제로 한, 두 일화를 중심으로 죽음에 관해 두루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충국사무봉탑(忠國師無縫塔)

먼저 죽음을 앞둔 원숙한 혜충 국사와 국사의 전법제자로 성장한 탐원 선사가 무지한 대종(代宗, 재위 762-779) 황제와 나눈 문답이 담긴 <벽암록> 제18칙 ‘충국사무봉탑(忠國師無縫塔)’의 본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칙(本則): “대종 황제가 혜충 국사께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스님께서 돌아가신 후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노승에게 무봉탑(無縫塔: 일종의 평범한 흙무덤)을 만들어 주십시오.” (국사에 걸맞게 으리으리한 묘택을 꾸며달라고 부탁할 것으로 기대했던) 황제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스님께서 구체적으로 탑의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국사가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양구良久], “알았습니까?”라고 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국사 말하기를 “저에게 법을 부촉한 제자 탐원 스님이 있는데 이 일을 알고 있습니다. 청컨대 불러서 물어 보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국사가 입적한 뒤 황제는 탐원 선사를 불러 그 뜻을 물으니 탐원 선사가 답하기를 “상주(湘州)의 남쪽과 담주(潭州)의 북쪽 사이, 즉 천하에 황금이 있어 온 나라에 가득하고 그림자 없는 나무 아래 모든 사람이 함께 타는 배가 떴으나 궁궐[유리전溜璃殿]에는 국사의 참뜻을 알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제창(提唱): 이 공안은 표층적으로는 혜충 국사의 임종 무렵 대종 황제가 국사로서의 예를 다하기 위해 장례에 대해 국사께 정중히 문의를 드리자, 전법제자인 탐원 선사까지 끌어들여 ‘무봉탑’을 주제로 나눈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심층적으로는 세속적 잣대로 볼 때 황제는 삼독(三毒), 즉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극치에 이를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자칫 잘못하면 온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수도 있기에 은유(隱喩)를 통해 황제를 넌지시 깨우치려 했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더 나아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조차도 혜충 국사께서 대종황제와의 대화를 통해 남긴 이 화두는 오늘날까지도 선수행자들로 하여금 죽음의 관문을 돌파할 때까지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수행을 치열하게 이어갈 것을 다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비록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경우도 역시 황제와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삼독에 중독된 채 허우적거리다가 무의미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정신 차려 죽음의 관문을 넘어서기 위한 ‘참나’ 체득과 이를 바탕으로 남은 여생 동안 함께 더불어 멋진 인생을 살아가야겠지요.

마대사일면불월면불(馬大師日面佛月面佛)

죽음에 관한 또 다른 전형적인 보기는 <벽암록> 제3칙으로 본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칙(本則):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께서 병이 깊어 세상을 떠나려고 할 무렵, 그 절의 원주(阮主) 스님이 문병(問病)하러 와서 “스님! 요즈음 병세가 어떠하십니까?”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선사께서 “일면불(日面佛, 수명이 1800년인 부처)! 월면불(月面佛, 수명이 하루인 부처)!”하고 대답하셨다.

제창(提唱): 이 공안을 통해 잘 알 수 있듯이 마조 선사께서는 죽는 순간까지도 온몸을 던져 한 제자라도 더 일깨우고자 하셨습니다. 그후 이 문답 역시 공안, 즉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삶을 이어가게 하는, 투과해야할 관문(關門)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선수행자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참구하게 다그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필자는 1997년 1월 당시 화계사에 주석하고 계시던 숭산행원(崇山行願, 1927-2004) 선사님을 방문해 마조 선사의 ‘일면불월면불’에 대해 견해를 제시했다가 통렬한 지적을 받고 정신 차려 즉시 재차 제시해 입실점검을 마쳤습니다. 그후 필자는 이 화두를 발전시켜 필자에게 참문하는 분들에게 마조 선사의 견해뿐만이 아니라 ‘만일 당신께서 그 당시 원주의 위치에 있었다면 마조 선사의 ’일면불 월면불‘이란 대답에 즉시 어떻게 응대했겠습니까?’라는 제2관을 새롭게 제창하며 참구하도록 권해오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검소한 장례 유언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 2010년 3월 11일 입적하신 법정(法頂) 스님의 유언장 ‘상좌들 보아라’ 제5조에 들어있는 검소한 장례 절차 요청에 관한 다음 내용은 깊이 성찰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내가 떠나는 경우 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기 바란다.”

군더더기: 참고로 삼십 년 전의 일입니다만 주말이면 관광객이 들끓는 어느 절의 주지 스님이 40대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뜨셨습니다. 그러자 절 근처 상인 분들이 평소에 잘 대해 주셨던지 ‘아무개 대선사(大禪師)’라고 쓴 기념비를 크게 세웠습니다. 그 얼마 후 참선 수행도 열심히 하시는 당시 그 지역의 사학 전공 교수께서 필자에게, “저도 돌아가신 그 스님을 잘 알고 있는데 선(禪)과는 거리가 먼 스님을 대선사라고 칭송하며 기념비를 세웠으니, 삼사백 년 후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에 굉장한 큰스님이 계셨었나보다 하고 역사를 오도하게 될 것이 걱정스럽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사실 죽은 뒤 있지도 않은 공적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거창한 비문과 주변 경관을 훼손하며 조성한 으리으리한 유택(부도나 사리탑 등 포함)을 꾸며놓는 일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두고두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도 모르고, 일 년에 한두 차례 그 자손(문손)들이 우리는 잘난 조상(스승)을 두었다고 뽐내면서 성대하게 형식적인 성묘(법회)를 하는 것보다, 고인을 화장한 뒤 또는 아직 정서상 화장이 곤란한 경우에는 그저 평범한 삼사 평 정도의 무덤에 고인을 모신 뒤 그 나머지 비용으로 어려운 이웃과 함께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좋은 일을 위해 쓰는 것이, 고인이나 그 자손을 위하는 일일 것이니 바른 수행자였다면 반드시 뜻 있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 것이며 바른 교육을 받은 자손(문손)이라면 고인(스승)을 욕되게 하는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겠지요.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기

오늘날 인간의 수명이 평균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고는 하나, 우주의 역사인 138억 년 세월에 비하면 찰나보다도 짧은 시간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단지 사회적 거리두기에만 초점을 맞추어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그저 기계적인 수명만을 연장하기보다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루빨리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고 이를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아 세상 떠나는 날까지 우리 모두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늘 틈날 때마다 자기성찰을 이어가는 동시에, 함께 더불어 가치 있는 일에 온몸을 던져 몰입하는 태도를 익히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 판단됩니다.

끝으로 죽음의 공포를 포함해 그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치열하게 삶을 이어간 분들의 본보기를 들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먼저 학문 분야의 경우,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대학 시절 전 유럽을 휩쓸었던 전염병으로 귀향해 2년 간 머물며 연구에 전념한 결과 인류 최초로 자연현상을 수식화 하는데 성공하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법칙은 절친이었던 에드먼드 핼리(Edmund Halley, 1656-1742)로하여금 76년을 주기로 태양을 돌고 있는 핼리혜성의 궤적을 정확히 예견하게 하여 인류가 혜성충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은 석사 2학년 무렵 루게릭병이 발병해 이후 50여 년을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한 결과 양자중력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한편 죽음에 대한 통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좋은 사례로 세 살 때부터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해 13살에 요절한 천재소년 시인 매튜 스테파넥(Matthew Stepanek, 1990-2004)는 선천성 근육병을 앓았던 세 형의 투병과 죽음을 지켜보는 동시에, 똑같은 병마와 싸우면서 통찰한 체험을 바탕으로 죽기 직전까지 멋진 시들을 지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자기 한 몸 추스르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시작 활동을 병행하며 희귀근육병협회의 명예홍보대사로 투병 환자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후원을 이끌어내는 등 온몸을 던져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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