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유연하다
불법은 유연하다
  • 현안 스님
  • 승인 2020.03.13 15:23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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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미국서 출가한 한국인, 현안 스님의 수행 이야기 17
선화 상인의 롱비치 사찰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
선화 상인의 롱비치 사찰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

 

출가 전까지 저는 예불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것을 매우 좋아하는 무신론자였으며, 어릴 때 종교적인 사람들을 보면 ‘왜 저 사람들은 열심히 성공하는데 힘을 쓰지 않고 저렇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사람들은 되도록 피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이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에 명상을 하길 원했는데, 우연히 영화 스님으로 부터 참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참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이 열려서, 결국 불교에 귀의를 하게 되었고, 심지어 출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삭발하고 출가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예불이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출가한 후인 최근까지도 저는 예불을 너무 종교적이고, 지루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출가한 후에도 처음에는 여러 가지 핑계로 예불도 많이 빠졌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저에게 빠지지 말라고 강력하게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영화 스님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행을 위해 오신 스님들에게  ‘아무리 일이 바빠도 되도록이면 예불을 꼭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 때 제가 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영화 스님이 저에게 해주신 말씀들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는 끊임없이 하기 싫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저는 열심히 예불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위산사 대중이 능엄신주 중 오대심주를 낭송하고 있다.
미국 위산사 대중이 능엄신주 중 오대심주를 낭송하고 있다.

 


미국 위산사와 노산사에서 우리는 매일 새벽 4시 새벽 예불을 하는데 능엄주, 대비주 즉 신묘장구대다라니, 십소주 (열개의 짧은 신주), 반야심경, 약사불 염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후 약사주과 42수안을 하고,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참선을 합니다. 이렇게 새벽 예불은 2시간 정도입니다. 그리고 매일 점심 공양 후 12시 45분부터 대비참 즉 천수천안 관세음 참회 예불을 합니다. 이 참회가 2시간 입니다. 저녁 예불도 2시간 소요되는데, 홀수일은 아미타경 그리고 짝수일은 팔십팔불참회로 시작하여, 몽산시식의, 아미타불 염불, 반야심경, 왕생주, 정토문을 포함하고, 능엄주 중 오대심주, 약사신주에 이어서 42수안을 합니다.


처음 예불을 할 때 제 마음 속에서는 너무 종교적인 것 같다며 계속 불평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많은 예불을 다 참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여기 미국 위산사에서 하는 예불은 평일에도 하루 평균 6시간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여기에 추가적으로 법문, 특별 법회, 예불이 더 있습니다. 매일 이렇게 예불 시간이 워낙 길다보니 졸지 않고 잘 하려면 고도의 집중이 요구됩니다. 처음에 예불에 참여하려니 몸과 마음이 다 괴로웠는데, 계속 하다보니 올라오는 많은 생각들을 떨어뜨려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음속에 올라왔던 많은 생각들 즉 ‘아 너무 피곤해. 방에서 누워서 좀 쉬면 좋겠다’, ‘오 마이갓 진짜 길다. 아직도 이 예불은 반도 안 끝났네’, ‘너무 힘들다’, ‘이런거 해서 무슨 소용이야’ 이런 생각들을 무시해야 했습니다. 그냥 원한다고 예불 중간에 나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매일 매일 하다보니, 점점 이런 생각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번뇌가 일어나도 너무 바빠서 번뇌와 망상이 이어질 틈이 없었습니다.


사람들 말이 예전 한국의 전통적 행자 생활이 이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런 전통을 보존하면서 선정의 힘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도자가 이끌어 준다면, 뛰어난 수행자들을 키워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런 고된 생활에 선정의 힘과 불법이 잘 어우러지지 못한다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생활을 견디기 어려워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참선하는 것이 더 논리적으로 말이 되니, 참선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예불이나 염불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이런 생활을 하다보니 배운 것이 있습니다. 참선, 예불, 염불, 신주 수행 들이 모두 동일하게 유익한데, 내 마음이 이들을 분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참선은 더 좋고 예불이나 염불은 식상하다고 차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한국 절에 갔을 때 사람들이 절에 지내려면 당연히 예불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제가 처음 참선을 배우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예불을 하라고 강요했다면 계속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떤 나이드신 한국 불자님은 앉을 때 느끼는 다리 저림과 아픔에 공포심과 불안감이 심하게 있어서 나무 아미타불 염불 정진부터 하도록 했습니다. 그 분에게 참선을 처음부터 강요했다면, 그 분 역시 계속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미국 위산사 염불 시간에 결가부좌로 놀고 있는 3세 알롱이
미국 위산사 염불 시간에 결가부좌로 놀고 있는 3세 알롱이

 


이렇게 매일 예불, 염불, 신주 낭송을 하다보니 이런 여러 다양한 수행법들이 어떤 문제에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어떤 강점이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절에 다니면서 만트라, 예불, 염불 등의 여러 수행법들을 접하고, 따라서 해왔습니다. 하지만 출가한 후에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예불과 염불도 더욱 집중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선 학생에 따라 여러 수행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앉는 것을 어려워하고 불교에 신심이 큰 사람의 경우는 염불이나 예불로 수행을 시작하도록 독려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면증, 우울증 등으로 머리가 복잡하여, 매일 스스로 앉아 참선하기 어려운 경우는 사람에 따라 신묘장구대다라니나 능엄주 오대심주와 같은 신주 수행을 하도록 지도합니다. 종교를 싫어하는 서양 문화권의 젊은이들은 먼저 참선부터 지도하면 더 잘 받아들입니다. 또한 천주교 신자들이 참선을 배우고자 찾아오면,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염불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줍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수행 지도자가 먼저 팔만사천가지 법문에 대한 분별심을 없애야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지도해 줄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수행법도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최상의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선사님이 말씀하시길 아무리 좋은 법문도 듣는 제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고, 사소한 한마디라도 제자에게 적합하고, 그것으로 수행에 도움이 되면 그것이 바로 최상승선 [最上乘禪]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수행법 자체에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수행자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이 바로 최상의 수행법이라 생각됩니다.


영화 스님은 저에게 여러번 ‘The Dharma is flexible’ 즉 불법은 유연하다 또는 불법은 융통성이 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전에 이 말씀을 해주셨을 때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학생들에게 여러 방법으로 접근하고 적용하게 되니 그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수행법으로 지속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돌파구를 제시해 주실 수 있는 선지식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예불, 절, 신주(만트라), 불경독송, 참선 등 해왔던 수행법 외에 다른 방법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불교의 어떤 수행법이든 선 아닌 것이 없고 높낮이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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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2020-03-19 11:40:44
성모마리아의 자애로우신 모습과 사찰에 부처님의 자비가 조화로이 어울려있는 듯 합니다.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Dharma is flexible. 의 깊은 뜻은 직접 수행해가는 사람만이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되고, 진전이 없는 듯해 수행의 어려움을 느낄 때 더욱 와닿는 글인 것 같습니다.
교육에도 눈높이 교육, 맞춤식 학습법이 있는 것 처럼 수행의 방법과 사람에 따른 효과도 저마다 다를 것임을 알게하시는 글인 것같아 반복해서 읽어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항상 기사 잘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윤미선 2020-03-19 10:45:45
부처님의 자비심을 찬탄합니다()! 중생들의 근기가 각기 다름을 아시고 팔만사천가지 법문을 유연하게 펼치시어 중생을 구제하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은 원래가 부처인데 망상에 가려 중생으로 산다고 하셨는데 이 글을 쓰신 스님께서 천주교 신자에게 참선을 가르칠 때 성모마리아를 염송하게 하여 선정력을 키우는데 중점을 두시는 방편이 특이합니다. 성모상을 없애지 않고 관세음보살로 모신 선화상인도 남다르십니다. 공부를 이루시면 중생들과는 다르게 보이시나봐요.

gPdml 2020-03-18 21:03:02
유연하면 먹힌다.
그대는 한국에서 천주교가 불교를 얼마나 억압했는지 아는가?
미국에서 중되었다고 자랑하나?
천진암사건에 대해 공부 좀 해라.
현안 중님아.

화엄 2020-03-17 14:38:16
수행을 위한 수행, 종교를 위한 종교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거나
직업종교인들의 밥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