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풍수와 묘지풍수
건물풍수와 묘지풍수
  • 김규순
  • 승인 2020.03.13 0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풍수란 무엇인가 1
풍수경전_청오경과 금낭경
풍수경전_청오경과 금낭경

 

조선시대에 잡학시험의 풍수과목 중에 <장경>이 있었다. <장경>이 귀한 책이라고 비단주머니에 넣었다고 하여 <금낭경>이라고도 한다. <장경>이라는 책은 이름 그대로 시신을 땅에 묻을 때 사용하는 풍수, 즉 묘지풍수이다. 이와 함께 풍수고시과목인 <청오경>과 <명산록>, <지리신법>, <감룡경>, <의룡경>도 그 내용이 묘지 잡는데 포인트를 두고 있다. 이를 볼 때 조선 풍수는 묘지풍수로 특징지을 수 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와 고려 풍수의 일면을 보면 소위 양택(건물)풍수가 우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서 석탈해가 호공의 집을 빼앗아 자기의 거처로 삼았다는 것과 <고려사>에서 도선국사가 왕륭에게 집을 짓는 방법을 디테일하게 알려주었고 그 후 왕건이 태어났고 삼한일통을 이루어 도선이 국사로 추앙받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평민출신이었던 왕건에게 조상이 뚜렷하지 않아 도선국사의 양택풍수에 의해 고려의 정통성을 확보하였으나, 조선은 <도선비기>에 따라 한양천도로 정통성을 확보하면서 세종이 용비어천가에서 육룡(조상)의 도움을 받아 왕조를 건설하였다고 노래한 것은 대조적이다. 조선창업 후 이성계는 4대조까지 능으로 조성하였다. 

그것은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왕조와 유교가 국시였던 조선의 기본적인 성향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불교는 서방정토로 가는 것이 목적이지만, 유교는 여기서 지금 잘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풍수에는 내세와 극락이 없고, 이승의 자신과 후손이 잘사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유교와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조선의 묘지풍수는 유교의 모토인 충효를 실행하게 하는데 매우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면이 있었다. 즉, 조상을 명당에 모시면 후손이 잘된다는 것이다. 조상을 잘 모시는 것은 유교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당연한 일을 함에도 복을 받는다고 하니 조선시대 초에 불교를 밀어내고 유교를 숭상하고자하는 과정에 있어서 일거양득의 무기가 아니겠는가.

조선 건물풍수의 집대성_경복궁
조선 건물풍수의 집대성_경복궁

 

풍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음택풍수와 양택풍수이다. 다시 말해 묘지풍수와 건물풍수이다. 묘지풍수는 조상의 유골과 천지의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후손이 복을 받는 경우이고, 건물풍수는 내가 직접 천지의 기운을 받아 복을 받는 경우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풍수에서 복을 논하지 말라고도 했지만, 풍수에서 복을 빼면 앙꼬 없는 붕어빵과 같다. 다만 풍수가 발복에 너무 치우치면 혹세무민하므로 경계하는 것은 옳다고 하겠지만, 기복신앙이 강한 종교에 신도가 몰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묘지 방식이 점점 드물어지는 시대에 조상을 통한 풍수보다는, 본인이 점유한 공간에서 직접 천지의 기운을 받는 양택풍수가 각광을 받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왕건처럼-.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