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바를 입에 달고 사는 대만불교
아미타바를 입에 달고 사는 대만불교
  • 이성운
  • 승인 2020.03.12 20:5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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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러] 이성운

잘 알려져 있듯이 대만 불교의 인사진언은 “아마타바”이다. 나모아미타바에서 예경의 나모를 제외하고 아미타바의 이름만 칭명하는 것이다. 나모가 나무로 발음된 역사는 길지 못하다. 20세기 초반 문헌에도 남모라고 표기된 경우도 적지 않다. namo의 원형은 namas이고 나무로 발음된 것은 한자 음가 영향과 모음변형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 대중의 중천사 수륙재 참관 도중 누구든 서로 마주치면 아미타바라고 인사했다. 늘 아미타바를 칭명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아미타불의 가피를 청원하며 인사하는 것도 되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에 들려주는 염불이기도 하다.

참선이 수승하고 간경이 수승하다고 하지만 우리네 업보중생은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삼악도에 떨어지곤 한다. 그래서 염불이 창안되었다고 본다. 염불하는 동안이나 염불의 힘으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삼선도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인연 있는 바웃다(불자)님들 가운데 우리끼리 문자나 인사를 할 때는 “나모붓다야”를 하지만 다른 이들과는 하시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안녕하셔요 대신에 ‘나모붓다야’ 하고 ‘안녕하셔요’를 이어하면 된다. 문자나 글을 쓸 때도 ‘나모붓다야’ 하고 줄을 바꿔 사연을 적고 마지막에 ‘빠라미타’ 하고 자신의 이름을 적고 올림이나 합장을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 분도 있고 더러는 상대를 무시한다거나 우습게 안다고 여기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나모붓다야’ 칭명은 종교 이전에 자기정체성을 표현하고 다짐하는 것으로 신행의 제일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과의 인사를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불자나 대중들과 인사할 때 나모붓다야 하고 칭명하여 그분들의 귀에 스치게 해주는 것도 그분들을 붓다님과 인연지어 주는 것이라 포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오시는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은 저희랑 대화할 때는 나모붓다야를 따라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잘 하시지 않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쑥스러울 수 있으나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처음부터 낯익은 것은 없다.

인사진언이 활성화되면 불교가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삶의 액세서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해방시키는 데 더 없는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붓다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불교 해야 한다. 그 중심에 나모붓다야 칭명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만불교를 알고 나면 대만불교를 부러워하는 분들이 많다.

대만불교가 흥하게 된 배경은 여럿 있을 것이다. 그 첫째는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스님들이고, 둘째는 인사진언 칭명으로 불교의 윤리를 현실에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를 하면서 육바라밀의 첫째 보시바라밀을 잘 실천하는 것이다. 대만 수륙재 공덕주들은 우리식으로 하면 설판재자이다.

공덕주들이 내는 보시는 최소 몇 십만 원에서 억대에 이른다. 많은 보시를 하고도 보시를 했다는 상에 빠지지 않고 나를 위하기보다 중생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있는데 어떻게 대만불교가 발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교가 흥해지면서 술질 같은 유흥업소가 엄청나게 줄었다고 한다.

불교 믿으면서 술을 마시고 거짓말을 수도 없이 한다면 어찌 불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만 불교인들은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고 사람 사는 세상에 있으니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만들어가는 긍정적인 모습은 배울 필요가 있다. 부러워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붓다아카데미에서 ‘나모붓다야’를 칭명의 인사진언으로 삼은 것은 불교의 출발은 붓다의 출현이고 붓다는 남이 아닌 바로 우리가 깨달음으로써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위대한 신도 붓다를 넘을 수 없다. 그분에게 예경하고 귀의하며 그분을 부르면 그분과 내 안의 붓다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불교의 시작은 ‘나모붓다야’이다.

‘아미타바’는 붓다의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는 무량한 광명이고 무량한 세월이다. 그런 붓다님께 예경하고 귀의하는 구체적인 행위는 삼귀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삼귀의 이전의 근원은 ‘나모붓다야’이다. 붓다님께 예경하고 귀의하면 붓다에게 의지하게 되고 붓다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려는 이들과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나모붓다야’는 초기불교나 대승불교나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인사진언이 될 수 있다. 종파와 지역이 달라도 그 시작은 붓다이다. 법신불을 믿든 화신불 보신불을 믿든 그 중심은 붓다이다. 붓다는 각자이다. 각자는 깨달은 자이다. 각자(各自) 각자(覺者)가 되자는 서원이자 가피를 기원하는 나모붓다야 칭명, 이 칭명이 세상을 뒤덮기를.

나모붓다야


밴드 '붓다아카데미' https://band.us/band/68240348

붓다아카데미 연구 후원 농협 301 0262 407961 (예금주 붓다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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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2020-08-10 07:42:43
대구 침산동에 있는 도심 법당(포교당) 운영해보실 스님을 찾습니다.
법당 시설 후 점안불사만 올리고, 개원불사도 올리지 못한 채,
급한 사정으로 본찰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삼존불 및 일체의 법당시설이 완비되어 있으니,
공심으로 포교당 운영에 뜻이 있는 스님은 연락주세요.

혹은 대구지역 불자들의 모임장소나 사무실 등...
지역 불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어도 좋겠습니다.

- 보증금 500만/월 30만 (33평/공양간포함)
- 시설권리금 : 거저 드리다시피 넘겨드립니다.
- 아니면... 월세 30만원만 부담하시고, 운영하셔도 좋습니다.

<열린선원...현장 합장> 010-9592-9288
* 기도중에는 전화를 못받을 수가 있습니다. 문자 남기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상록 2020-07-06 14:46:35
나모 붓다야.....
잘 배워갑니다.
전세계 불교도를 위한 표준이 시급해 보입니다.
인삿말부터 기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혜의 2020-03-14 03:34:38
예 좋은 말씀입니다.
사회에서 긍정적인 불교용어는 사라지고
불교용어가 나쁜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포교라는 말보다는 전법으로 바로세우는 것이 어떨지 제안해 봅니다.
포교원 포교사가 아니라
전법원 전법사로 바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