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워져라 6
지혜로워져라 6
  • 하도겸
  • 승인 2020.03.03 12: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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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뜻으로 보는 입보리행론 38

이와 같이, 손가락이 모여 있기에 손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만을 손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뼈와 관절들이 모여 손가락을 이루는데 어느 것만을 손가락이라고 할 수 있는가! 몸의 부분들은 또 입자로 나누어지며 그 입자도 역시 나누어져 원자처럼 되기에 결국 허공과 같아진다. 그러므로 입자라고 할 만한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런 식으로 보면 실재한다고 하는 모든 것은 꿈같은 몽상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모습을 다 나누고 누군들 거기에 집착하겠는가! 만일 이와 같이 몸이 합체일 뿐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남자와 여자는 왜 구분하는가!

고통이 그 자체로 실제로 존재한다면 왜 행복을 방해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편안함과 즐거움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슬픔이나 고뇌 등을 겪을 때 달콤함 등으로 기쁘게 만들지 못하는가! 더 강한 힘으로 제압하기 때문에 (다른 약한 느낌을) 느낄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내게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커다란 행복에 압도되면 고통은 미세한 상태로 존재한다. 이때도 고통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잠복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고통이 줄어들고 또 행복을 느낀다면, 과연 미미한 고통도 굳이 고통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만일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하는 행복이라는 것 역시 굳이 있다고 한다면 느낌을 개념적으로 조작하고 분별하여 실제인 양 집착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치료제와 같은 분별지(分別智)인 관(觀)을 수행해야 한다. 이와 같이, 헤아린 뒤에 들어간 선정(禪定)은 지관(止觀)을 닦는 요가 행자의 양식이 된다.

만일 감각의 대상에 간격이 있다면 그것들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가! 간격이 없다면 결국 하나의 성품인데 무엇이 무엇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 미진(微塵)은 미진에 들어갈 수 없다. 그것들은 간격이나 빈공간이 없고 크기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들어갈 수 없으니 섞일 수도 없으며 섞일 수 없으므로 접촉이나 만남은 없다.

나눠진 부분이 없는데도 서로 만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부분이 없는데도 실제로 만난 것을 만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그 예를 보여주기 바란다.

의식(識)은 몸통이 없으므로 실제로 접촉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결합 역시 실제로 증명할 수 없기에 이는 앞에서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이 접촉이 없었다면 (접촉의 결과인) 감각은 대체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불필요한 논쟁을 하는 것은 왜인가? 대체 (실재하지도 않는데) 왜 기쁨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이며, 대체 무엇이 무엇을 괴롭힐 수 있다는 말인가!

실제로 느낀 사람도 없으니, 당연히 감각 자체도 역시 없다. 이런 상태를 보고서도 무엇 때문에 집착을 못 버리는 것인가!

보고 만지는 대상 역시 꿈이나 허깨비와 같으며, 느낌이란 마음과 함께 동시에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시각이나 촉각으로 분리시켜도 마음으로 느낄 수는 없다.

이전에 있었다거나 이후에 생길 느낌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해도 경험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경험할 수 없으므로 다른 무엇으로도 역시 경험할 수 없다.

실제로 느낀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며 느낌 자체도 없으며, '나(我)'라는 것도 없는데도,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오온(五蘊)의 집합체인 '나(我)'를 그 무엇이 어떻게 해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음은 감각기관들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대상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그 사이에 도 없다. 내부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것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은 몸도 아니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섞이지도 않으며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미세한 그 어떤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본래 자성이 열반(涅槃)이다.

인식 대상보다 앞서 의식이 생겼다면 그것은 무엇을 보고 생긴 것인가. 의식과 인식 대상이 동시에 발생했다면 그것은 또 무엇을 보고 생긴 것인가. 반대로 인식 대상이 생긴 이후에 의식이 생겼다면 그것은 또 무엇을 보고 생긴 것인가! 이와 같이 의식도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생멸하는 속제(세속의 진리 : 俗諦)가 없다면 진속(眞俗)이라는 두 가지 진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래도 속제가 진제(열반의 진리)와 다른 것이라고 한다면 ‘윤회하며 고통을 겪는 중생의 의식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열반으로 갈 수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여러분의 진제와 속제에 대한 생각은 본래의 뜻과는 다른 것으로, 열반으로 향하는 속제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열반을 이룬 후에도 그런 관념이 실재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세속적인 전도된 관념으로 열반으로 향하는 속제는 아니다.

분별할 수 있는 여러분과 분별되는 대상들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 각각은 공통되는 보편에 의지하여 모든 것에 대해 분별하고 말한다. 만일 분별하여 안 것에 대해 다시 보편이 아닌 분별지로서 분석한다면 그때는 그 분석 역시 분별지이므로 무한반복의 오류에 빠져 접촉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분별한 대상을 다시 분석하는 것이라면 더이상 분별했다고 할 만한 바탕(土臺)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바탕조차 없기 때문에 분별심도 생기지 않으므로 열반이라고 부른다.

여러분은 의식과 대상 모두 실재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입증이나 유지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만일 대상이 인식하는 감각기관을 통해 실제로 성립한다고 한다면 의식은 어디에 의지하여 성립할 수 있는가!

대상이 의식이 실재하는 것을 입증한다면 대상은 또 무엇에 의지하여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것들이 서로의 힘에 의존하기에 존재한다면 둘 다 역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아들이 없으므로 아버지가 아니라고 한다면, 아들은 어디에서 생길 수 있는가. 아들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도 없어지며 결국 그 둘 다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

“싹이 씨앗에서 생긴 이상 싹만 보고도 씨앗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인식 대상에서 생긴 의식이 실재한다는 것인데, 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싹을 통해서 씨앗의 존재를 알아챈 의식은 씨앗을 보는 의식과는 다른 것이다. 눈앞에 없는 씨앗의 존재를 추론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인식 대상을 보는 의식은 아닌 것이다. 이런 의식조차도 그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가끔 세상 사람들은 결과에 대한 분별(지각)을 통해 원인을 볼 수가 있다. 줄기만 보고도 연꽃의 종류를 구별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현재의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씨앗이나 종류 등)을 분별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와같이 다른 원인들을 분별하는 것은 무엇으로 가능한가”라고 묻는다면 “이전의 원인(씨앗)을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답할 수 있다. “어떻게 특정한 원인이 특정한 결과를 만드는가?(씨앗이 다르면 줄기도 다른가?)”라고 묻는다면 “이전의 원인(씨앗)이 가진 힘 그 자체(업력)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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