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왜 침입 물리친 국난 극복의 현장
거란·왜 침입 물리친 국난 극복의 현장
  • 이창윤 기자
  • 승인 2020.02.21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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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떠나는 사찰순례 - 대구 동화사와 부인사
▲ 대구 동화사.

영남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인 대구는 분지에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동쪽과 서쪽은 구릉, 남쪽과 서쪽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대구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으로 유명한데, 분지인 탓입니다.

팔공산(八公山)은 대구분지 북쪽에 앉아 너른 품으로 대구시를 옹위하고 있는 산입니다. 높이 1193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관봉에서 동봉과 서봉을 거쳐 파계봉으로 이어진 봉우리가 두 팔을 벌린 듯 웅장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신라 오악의 하나 ‘부악(父岳)’

팔공산의 옛 이름은 부악(父岳)입니다. 신라 때는 토함산, 지리산, 계룡산, 태백산과 함께 오악(五岳)의 하나로 삼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 산입니다. 나라에서는 봄과 가을에 오악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6권 <경상도> ‘대구도호부’ 편에는 “중악(中岳, 중국 숭산의 다른 이름)에 비겨 중사(中祠)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옛 사람이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긴 팔공산은 국난 극복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기슭에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나라를 지킨 대중의 얼이 깃들어 있습니다. 동화사에서 부인사로 이어지는 팔공로는 그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팔공’이라는 산 이름에는 고려와 후백제 간 전쟁의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동화사 인근에서 벌어진 동수대전(桐藪大戰)은 통일전쟁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태조 왕건이 생애 가장 크게 패한 전투입니다.

태조 왕건 살리고 전사한 신숭겸

고려 태조는 즉위 10년(927) 후백제 견훤 왕이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이고 비빈을 욕보이자,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정벌에 나섰습니다. 태조는 동수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었으나 후백제 군에 포위돼 전멸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때 태조는 왕으로 가장한 신숭겸이 적진에 뛰어든 사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고 합니다. ‘팔공’은 동수대전에서 태조를 살리고 전사한 신숭겸, 김락 등 여덟 장수를 기린 이름입니다. 동화사에서 멀지 않은 지묘동에는 표충재 등 신숭겸 장군 유적지가 있습니다.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동수’는 지금의 동화사를 이르는 말입니다.

▲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동화사를 창건한 심지 스님이 조성에 참여한 석탑이다.
▲ 봉서루에 걸려 있는 영남치영아문 편액. 동화사가 승군 총지휘소였음을 알려준다. 원판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한겨울에 피어난 오동나무꽃

《동화사사적기(桐華寺寺跡記)》에 따르면 동화사는 신라 소지왕 15년(493)에 극달(極達) 스님이 창건한 절입니다. 당시 이름은 유가사(瑜伽寺)였습니다. 하지만 소지왕 대는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전이어서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동화사 창건 유래를 살필 수 있는 기록은 《삼국유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계조(心地繼租)’와 ‘진표전간(眞表傳簡)’ 조를 종합하면 동화사는 신라 헌덕왕의 아들로 태어난 심지 스님이 속리산에서 진표 율사의 상수제자였던 영심(永深) 스님에게 받은 불골간자(佛骨簡子)를 봉안하려고 지은 절입니다.

심지 스님은 팔공산 정상에서 불골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 동화사를 지었는데, 그곳이 첨당(籤堂) 북쪽 우물, 즉 지금의 금당선원 자리라 합니다. ‘동화(桐華)’라는 이름은 창건 당시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꽃이 상서롭게 피어 붙인 이름입니다.

동화사가 희강왕에서 신무왕대에 이르는 왕권 다툼 속에서 희생된 민애왕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로 창건됐다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산내 암자인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민애대왕석탑사리호기(敏哀大王石塔舍利壺記)’에 민애왕을 기리려고 이 석탑을 세운 사실과 심지 스님의 법명이 기록된 점에 주목한 것이지요.

동화사는 고려 시대에 들어 자정 국사 미수(慈淨國師 彌授, 1240~1327), 홍진국사 혜영(弘眞國師 惠永, 1228~1294) 등 유식학승이 머무는 유가종 도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때 보조 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 스님도 이 절에 머물렀습니다.

승군과 의병의 거점 ‘동화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화사는 승군과 의병의 거점으로 이용됐습니다. 사명당 유정(四溟堂 惟政, 1544~1610) 스님은 영남도총섭(嶺南都總攝)으로서 이 절에서 승군을 지휘하였고, 팔공산성을 쌓았습니다. 봉서루에 걸려 있는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 편액과 사명 스님이 사용한 도장 ‘영남도총섭인’, 승군을 지휘할 때 사용한 소라나팔 등은 동화사가 승군의 총지휘소였음을 보여줍니다.

동화사는 또 대구지역 의병인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의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공산으로 피난 온 대구지역 유림들은 부인사(符仁寺, 夫人寺)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으고, 동화사에서 뒷날 공산의진군 대장으로 선출된 서사원과 대구 부사 윤현을 중심으로 의병 구성과 모집을 논의했습니다.

대구지역 유림들이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한 부인사는 동화사에서 멀지 않습니다. ‘팔공선문(八公禪門)’이 쓰인 동화사 후문을 나와 팔공로를 따라 파계사 쪽으로 2.5km쯤 가면 부인사에 다다릅니다.

거란 침입 물리치려 대장경 조성

부인사는 공산의진군을 일으키기로 결의한 현장이기도 하지만, 고려가 불교를 구심점으로 삼아 국난을 극복하려 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고려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를 무너뜨린 거란의 침입을 세 차례나 겪고,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몽고로부터 여덟 차례나 국토를 유린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불교를 구심점으로 뭉쳐 국난을 극복했습니다.

▲ 부인사 석탑 앞 건물지. 부인사에는 거란의 침입을 불력으로 극복하고자 조성한 초조대장경이 봉안돼 있었다.
▲ 부인사지 석조. 크기가 길이 430cm, 너비 175cm, 두께 43cm에 이른다. 현존하는 석조 중 가장 크다고 한다. 부인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흥왕사 보관 초조대장경 이전·봉안

부인사는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을 봉안했던 사찰입니다. 거란은 권신 강조가 목종을 폐위·시해하고 현종을 옹립하자 정변의 죄를 묻는다는 구실로 두 번째 고려 침입을 감행합니다. 고려는 40만 거란 대군과 맞서 싸우는 한편 부처님의 힘을 빌어 거란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조성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입니다.

초조대장경은 당시 조성된 대장경 중에서 규모가 가장 방대합니다. 대략 570함, 6,000여 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초조대경은 권말에 간행 기록이 없고 두루마리 형태의 권자본인 점, 한 면에 14자씩 23줄이 배열돼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초조대장경은 원래 개성 흥왕사 대장전에 보관돼 있었지만, 부인사로 옮겨졌습니다. 언제 무슨 이유로 옮겨졌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침입한 몽고군의 방화로 고종 19년(1232)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과 함께 불탑니다.

부인사 승려들, 최씨 무인정권에 항거

부인사는 최 씨 무신정권에 항거하는 본거지이기도 했습니다. 부인사 스님들은 신종 5년(1202)과 6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부인사를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신라 선덕왕 대에 창건됐다고 전할 뿐입니다. 전성기에는 부인사에 39곳의 부속 암자가 있었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스님들의 장터인 승시장(僧市場)이 정기적으로 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웅전 터, 중문 터, 경판고 터, 쌍탑, 석등, 축대 등만이 남아 절의 규모를 겨우 가늠할 수 있을 뿐입니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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