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국사삼환國師三喚
신무문관: 국사삼환國師三喚
  • 박영재 교수
  • 승인 2020.01.2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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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41.

성찰배경: 바로 앞의 기고 글에서 육조 선사께서 은둔해 오후悟後 수행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직후 크게 일갈一喝하는 과정이 담긴 <무문관> 제29칙 ‘비풍비번’ 공안을 다루었었습니다. 그후 입적 때까지 오가칠종의 원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671-738)와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 선사를 포함해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하택신회(荷澤神會, 670-762), 및 남양혜충(南陽慧忠, ?-775) 선사 등을 포함해 걸출한 제자들을 다수 배출하며 선종이 중국 천하에 널리 퍼지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육조의 제자로서 유일하게 <무문관> 17칙의 주인공인 남양 선사에 대해 살피고자 합니다.

출가出家 인연因緣

<조당집祖堂集> 제3권에 따르면 남양 선사는 소년 시절인 16세가 되도록 전혀 말도 하지 않았고 문밖출입조차 하지 않다가 어느 날 한 스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즉시 문밖 다리를 건너 스님께 절을 올리며 출가를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이 스님이 ‘너 같은 시골촌놈이 무슨  출가냐?’하고 거절하자 당차게 “본래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 저의 순수한 마음을 내치려고 하십니까?”하고 응대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그렇더라도 나는 그대를 받을 수가 없네.’라고 하면서, “광남廣南 조계산漕溪山에 육조 선사께서 계시니 그곳으로 가서 출가하게.”라는 조언해 주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부모의 허락도 없이 즉시 가출家出해 잰 걸음으로 조계산에 이르렀습니다. 때마침 육조께서 설법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앞으로 나아가 절을 올리니, 육조께서 “그대는 어디 출신인가?”하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절강성浙江省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육조께서 다시 “그렇게 멀리서 이곳까지 무엇 때문에 왔는가?”하고 묻자, 소년이 “첫째 이유는 밝은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정법正法을 듣기 어렵기에 작심하고 여기까지 와서 조사를 뵙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로는 온몸을 던져 스님께 의지하여 출가하고자 함이니,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라고 간청했습니다. 육조께서 “자네는 슬기롭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60년 동안 천자가 될 사람이니, 천자가 되어 불법佛法을 널리 알리는 임금이 되어라.”고 하시며 출가를 만류하셨습니다. 이에 소년이 “비단 60년이 아니라 100년 동안 천자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원치 않으니, 부디 스님께서 자비롭게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거듭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육조께서 이마에 손을 얹고 “만약 그대가 (그와 같은 굳센 의지로) 출가한다면 반드시 천하에 홀로 우뚝 선 부처가 될 것이니라.”고 수기授記하시고는 소년을 곧 거두셨습니다.

참고로 육조 선사 입적入寂 후 남양 선사는 백애산白崖山에서 40여 년 동안 수행에 전념하다가, 761년 숙종肅宗 황제의 부름을 받아 상경하여 천복사千福寺 서선원西禪院에 주석하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광택사光宅寺로 돌아갔습니다. 한편 숙종과 대종代宗황제께서 친히 보살계菩薩戒를 받았으며, 남양 선사를 예를 갖추어 국사國師로 모셨습니다.

군더더기: 서두에서 16세가 될 때까지 말 한마디 없던 소년이란 표현을 통해 남양 선사가 어릴 적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앞으로 크게 될 ‘영기靈機’, 즉 ‘신령스러운 기틀’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지나가던 한 스님의 ‘시골촌놈은 출가할 수 없다.’는 응답에 ‘본래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라고 응대한 이 대목에서는 오조홍인 선사께서 육조가 된 나무꾼 출신인 혜능과의 첫대면에서 ‘남쪽 오랑캐가 무슨 불법을 배우려 하는가?’라는 질문에 ‘사람에는 남북이 있으나 불성에 어디 차별이 있습니까?’라는 혜능의 응대와 유사한 일화를 대비시켜 남양이 육조의 법을 잇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사려됩니다.

선악을 생각하지 말라[善惡不思]

한편 임제종 석옥청공(石屋淸珙, 1272-1352) 선사의 법을 이은 고려의 백운경한(白雲景閑, 1299-1375) 선사께서 1372년에 엮은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에, 남양 국사가 육조의 계승자임을 거듭 확인하는 기록이, <무문관> 23칙에 담긴 육조의 ‘불사선악不思善惡’ 공안을 연상하게 하는, 국사의 다음과 같은 짧은 문답이 이 책 85절에 들어있습니다.

“남양 국사께 어느 때 한 승려가 ‘(해탈解脫하기 위해) 어떻게 상응相應하며 수행해야 합니까?’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국사께서 “선도 악도 분별하지 않으면 저절로 불성을 꿰뚫어볼 수 있느니라[善惡不思 自見佛性]. 또한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분별을 일시에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서 곧 해탈解脫하게 되느니라.”

군더더기: 사실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라는 점보다 여기에 담긴 내용이 더 가치 있는 일이겠지요. 그런데 ‘역사학자라면 모를까, 사실 선 수행자에게 있어서 인쇄 시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지>가 오늘날 전 세계로 퍼진 간화선 수행법을 확립한 선승禪僧들이 매우 중요시했던, 깨달음을 증득證得한 각자覺者들의 수행담을 담은 ‘선어록禪語錄’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수행자에게 자기성찰에 관한 매우 요긴한 가르침을 우리 모두 부디 온몸으로 체득하여 일상 속에서 ‘언행일치’의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 드려 봅니다.

신무문관 제창: 국사삼환國師三喚

끝으로 육조 선사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늘날까지도 수행자로 하여금 온몸을 던져 참구하게 하는, 남양 국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무문관> 제17칙 ‘국사삼환’ 공안에 대해 제창提唱하고자 합니다.

본칙本則: 남양 국사께서 시자를 세 번 부르니, 시자가 세 번 대답했다. 국사께서 가로되, “실은 내가 너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네가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구나.”
[國師三喚侍者 侍者三應. 國師云 將謂吾辜負汝 元來却是汝辜負吾.]

평창評唱: 국사께서 세 번씩이나 시자를 부름이여! 그 허물로 국사의 혀가 땅바닥에 떨어져 체면이 말이 아니로구나. 반면에 시자가 이에 응해 세 번 대답함이여! 진리를 몽땅 드러내었네. 이제 국사께서 나이가 들어 외로운 마음에 마치 (빨리 살찌우게 하려는 욕심에 억지로) 소머리를 눌러 풀을 먹게 하려는 듯이 애는 썼으나, 시자가 이를 받들지 않는구나. 사실 진수성찬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소용없는 법이네. 자! 일러보아라. 어디가 시자가 그릇된 곳인지를! 나라 일이 투명하면 인재을 중용하지만, 부잣집 아이는 (자칫 잘못 받아주면) 응석이 심하(니 교양있게 잘 키워야할 것이)네[家富小兒嬌].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이 화두는) 마치 구멍 없는 쇠칼을 머리에 씌우려는 것과 같아서/ 재앙이 그 자손에까지 미쳐 (온몸을 던져 이를 투과하고자) 쉴 틈이 없네./ 만일 (선종의) 가문을 길이 유지하고자 한다면/ 다시 모름지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맨발로 칼산을 올라야 하리라! [鐵枷無孔要人擔 累及兒孫不等閑. 欲得撑門幷拄戶 更須赤脚上刀山.]

군더더기: 우리 모두 만일 어디가 국사께서 시자를 잘못 대한 곳인지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마치 광화문 한복판에서 친부모님을 만난 것과 같아서 옆 사람에게 ‘이 분이 내 부모님이 맞느냐?’고 물을 필요조차 없이, 시자가 국사께 잘못 응대한 곳은 스스로 자명할 것입니다. 만일 이럴 경우 필경 여러분께서는 바른 경계를 어떻게 제시하면 되겠습니까?

한편 어느 때인가 스승인 종달宗達 선사께서 필자에게 수행자마다 코드가 맞는 화두들이 있는데, 이 화두를 투과할 때가 가장 무척 힘들었으나 그 희열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헌호軒號를 ‘잘못된 곳을 꿰뚫어 보는 곳’이라는 뜻하는 ‘고부헌辜負軒’이라 지으셨다고 합니다. 덧붙여 필자의 경우 <벽암록> 제2칙 ‘조주지도무난’에 이르러 깊이 통찰한 바 있어 ‘어려움이 없는 곳’이라는 뜻의 ‘무난헌無難軒’으로 지었습니다. 물론 인생여정 속에서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벽에 부딪치는 힘든 일들과 종종 마주 대하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좌선 수행으로 길러진 아랫배의 뱃심 덕택으로 회피하지 않고 무난하게 정면돌파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끝으로 비록 상식적인 차원이기는 하지만 ‘가부소아교家富小兒嬌’에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새겨볼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 현실 속에서 자주 생생하게 목격하곤 하는데, 부모의 바른 가정교육 여하에 따라 하나는 ‘부잣집 아이들은 예의 바르고 교양있게 행동하네.’라는 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문제가 심각한 경우로 ‘부잣집 아이들은 응석이 심하고 교만하며 걸핏하면 갑질을 하네.’입니다. 사실 요즈음 적지 않은 부모들이 주위에서 눈살을 찌푸리든지 관계없이 뭐든지 다 받아주면서 자녀들을 공주나 왕자처럼 키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시대 때 왕자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대부분의 학자들은 잘못했을 경우 때로는 ‘그래가지고 훗날 어떻게 백성을 편안케 하는 성군聖君이 되겠느냐?’고 다그치면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등 매우 엄격하게 법도를 몸에 배게 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오늘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나이 든 세대들도 세대차를 극복하기 위해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흐름을 파악하도록 힘쓰면서 일방적이 아닌 눈높이에 맞는 조언을 할 필요가 있겠지요. 참고로 필자의 경우 전공을 불문하고 강의 시간에 틈틈이 수강생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성찰 관련 일화들을 소개하곤 합니다. 지난 2019년 2학기 일반물리 수강생 가운데, 한 학생이 보낸 감사의 글을 소개 드리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한 학기 동안 정말 좋은 강의 감사했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강의 중간중간에 살아가면서 인생에 도움이 될 이야기들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부디 편안한 겨울방학 보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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