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포를 먹는 것이 옳습니까?”
“육포를 먹는 것이 옳습니까?”
  • 김경호
  • 승인 2020.01.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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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조계종 '육포' 사건에 부쳐
시중에 판매되는 한 회사의 육포 선물세트
시중에 판매되는 한 회사의 육포 선물세트

 

《마조록》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홍주(洪州) 염사(廉使)가 물었다.
“술과 고기를 먹어야 옳습니까, 먹지 않아야 옳습니까?”
“먹는 것은 그대의 국록(國祿)이며, 먹지 않는 것은 그대의 불복(佛福)입니다. 만약 먹는다면 중승의 녹이요(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요), 먹지 않는다면 중승의 복입니다(복을 짓는 일입니다).”

염사라는 직위를 당나라 때는 관찰사라고 불렀습니다. 지방 행정조직의 수장인데, 시대에 따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사법과 군사까지도 총괄하는, 거의 지방의 왕과 같은 고위직입니다. 그래서 시절이 수상할 때면 이들 관찰사들이 지방 군벌이 되어 천하를 놓고 한 판 붙기도 하지요. 조조와 유비, 손권이 격돌하는 《삼국지》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아무튼 마조 도일 스님께 지역의 최고위 공직자인 염사가 찾아와 하소연했습니다. 공직에 있다 보니 연회도 잦고 손님 치를 일도 많아서 술과 고기를 멀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청정하게 오계를 지키려는 불자에게 세상의 유혹은 참 이겨내기 어렵지요.
저도 중생이니 세간에 살면서 술과 고기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또 내심 즐기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가능하면 지나치지 않으려 함으로써 마조 스님의 조언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삼갈 줄 알아야 불복이라는 말씀, 부처님의 복을 짓는 일이라는 가르침 말입니다.

이른바 투 플러스 에이(A++)급 한우 인기 부위는 100g에 만 원이 넘습니다. 배불리 먹으면 수십만 원이 훌쩍 넘게 나오지요. 그래서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예요.”라는 우스개가 공감을 받습니다. 이 우스개 앞에는 다음 문장이 붙어있습니다.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명절을 앞두고 자그마한 선물 하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합니다. 글쎄 야당 당대표가 스님들에게 육포를 선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뒤늦게 잘못된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 선물을 회수하고 한과선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불교를 우습게 알면 이렇게 황당한 일이 예사로 벌어질까요?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불살생을 제일 중요한 계율로 지키는 스님들에게 육포를 선물로 하다니요.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려면 품목부터 가격까지, 보내는 방법까지 여러 번 고민하지 않던가요? 여러 번 고민은커녕 단 한 번의 살펴봄도 없었다는 무신경이 느껴져 아쉽습니다. 극단적으로는 불교계가 조롱받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까지 있어요.

악의 없는 실수라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선물을 선정하고 보내는 전 과정에서 그 허물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그 쪽 사정이니 제가 따로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래도 이 해프닝을 보면서, ‘중 벼슬 닭 벼슬보다 못하다’는 옛 속담도 이제는 정말 옛말이구나 싶습니다. 이른바 종단의 사판승 자리가 정치지도자들로부터 선물을 받는 자리라는 것을 언론이 확실하게 보도해 주었으니까요.

‘녹’이라는 것은 직장인의 월급처럼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니 명절 육포 선물은 ‘녹’에 해당하지 않겠지요. 그럼 ‘불복’일까요? 스님들에게 육포가 복이 될 리 없지요. 그보다는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조심하세요.’라는 말처럼, 정말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사람관계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 명절에는 어떤 복을 지을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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