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대원사, 도로명 주소에 ‘대원사길’
지리산 대원사, 도로명 주소에 ‘대원사길’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0.01.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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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 원장 눈 감았던 도로명주소…스님들 노력으로 역사성 회복

지리산 대원사의 도로명 주소가 ‘대원사길 455’로 최근 변경됐다. 1,500년 역사의 대원사 이름이 도로명 주소에 포함된 쾌거다.

지리산 천왕봉 동쪽 아래에 자리 잡은 대원사(주지 기현 스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신라 진흥왕 9년(548)에 연기조사가 ‘평원사’ 창건했고,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다층석탑을 만들어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폐사했다가 1685년 조선 숙종 때 운권 선사가 문도를 데리고 와 사찰을 중창해 ‘대원암’으로 개칭하고 선불간경도량을 개설했다. 1784년(조선 정조) 때 혜월 옥인선사가 탑을 중수하면서 사리 72과를 발견. 기단을 정돈하고 보수하면서 사리를 재봉안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 당시 화를 입었다가 1955년 만허당 법일(法一·1904~1991) 스님이 다시 중창해 동국제일선원을 세우고,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도량이 됐다. 2008년부터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대원사의 옛 주소는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304’였다. 도로명주소가 시작되면서 ‘평촌유평로 453’으로 바뀌었다. 평촌리와 유평리를 합쳐 도로명 주소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옛 주소인 ‘우평리 304’보다 더 찾아가기 어렵게 됐고, 도로명주소에 역사성이 배제됐다. 이에 대원사는 2019년 여름부터 ‘대원사’가 들어간 도로명 주소로 변경해 줄 것을 관청에 건의했고, 2020년부터 ‘대원사길’이라는 도로명주소를 부여 받았다.

도로명주소는 이명박 정부 때 시작했다. 애초 목적은 국민 생활 편의 도모, 물류비 절감, 그리고 국가 경쟁력 강화였지만, 우리 전통문화가 담긴 지명이 사라지는 과오를 범하게 됐다. 미국 등 서구 도시는 도로를 만들고 주변 집에 도로명 주소를 부여하지만, 우리나라는 각 마을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마을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이 달라 도로명 주소가 우리 문화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더구나 도로명 주소는 불교전통문화 말살 정책으로까지 여겨졌다. 하지만 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 중앙종회는 2011년 도로명주소 반대결의문을 준비하고도 MB선거캠프의 상임고문을 지낸 자승 당시 총무원장이 결의문 채택을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교계에서는 자승 총무원장이 개인의 사욕을 위해 불교전통문화를 MB장로에게 팔아먹느냐는 비판도 제기됐었다.

개신교 장로 출신의 이명박 정권 시절 시행된 도로명주소 사업은 전국의 수많은 불교관련 지명이 사라지는 과오를 남겼다. 때문에 지역 사찰들이 나서 도로명 주소에서 불교의 전통문화를 배제하지 않도록 노력이 이어졌다.

서산 연암산 천장암은 2012년 ‘충청남도 고북면 장요리 산1번지’ 옛 주소를 잃고 ‘서산시 고북면 고요동 1길 93-98’라는 도로명 주소를 부여받았지만, 당시 주지 허정 스님과 신도들의 노력으로 ‘천장사길 100’으로 도로명주소를 변경했다. 또 천장사 진입구간인 고북면 신송리~장요리 3.8km 구간을 명예도로명을 활용해 ‘경허로’로 이름 붙였다. 지리산 백장암도 ‘천왕봉로 447-76’이라는 도로명주소를 부여받았다가, 스님들의 노력으로 '백장암길 66'으로 사찰의 이름이 들어가는 도로명주소로 변경됐다. 조계종단이 눈 감고 있을 때 개별사찰의 스님들과 신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다.

정부 주도의 도로명주소에 전통사찰의 역사성이 반영되지 못한 곳은 많다. 조계종립선원인 봉암사는 ‘원북길 33’이다. 영천 은해사는 ‘청통로 951-313’이고, 대둔산 태고사는 ‘청림동로 440’이다. 남원 승련사는 ‘요천로 2675-90’이다. 도로명주소에 천년고찰들의 역사성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대원사가 대원사길 도로명 주소를 부여받은 것은 스님들의 불교전통문화를 보전하려는 노력 때문이다. 템플스테이 사찰인 대원사는 사시사찰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는데 ‘평촌유평로 453’이라는 도로명주소는 대원사를 찾는 이들에게 편리한 이름이 아니었다. 또 1500년이 넘는 대원사의 역사성이 철저히 배제된 주소였다. 도로명주소 변경기준이 역사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만큼 사찰에 인접한 도로명은 사찰이름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대원사 스님들의 노력이 도로명주소에 대원사의 역사를 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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