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워져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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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도겸
  • 승인 2020.01.1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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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뜻으로 보는 입보리행론 34

세간의 보호자인 부처님께서도 역시 '마음으로는 마음을 볼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칼이 스스로를 벨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마음을 볼 수 없다.

등불은 스스로를 빛내는 것이니 따라서 마음도 스스로를 볼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등불은 스스로를 빛낸 것이 아니라 어둠이 덮지 않았기 때문에 빛난다.

블루 사파이어와 같은 보석의 파랑은 다른 것에 의존하여 파란 것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한다. 이와 같이 어떤 것은 다른 대상에 관련하기도 하나 마음 등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생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블루 사파이어가 파란 것 역시 스스로를 푸르게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와 조건들이 있어서 그렇다고 봐야 한다.

등불이 스스로를 빛낸다고 인식했다면, 마음이 스스로를 빛내는 성품이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마음이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데 대체 무엇으로 마음이 빛난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으로 마음을 아는지 모르면서 마음(또는 등불)이 스스로 빛을 내거나 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의 (생길 수 없는) 딸의 용모가 어떨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냥 무의미할 따름이다.

마음이 스스로를 안다는 증거가 없다면 어떻게 해서 그런 기억은 가지고 있단 말인가? 기억은 다른 경험과 관련지어 생기는 것으로, 저리고 아프고 나서야 쥐가 전에 물었을 때 독이 들어온 것 같다고 기억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다른 이유나 조건[緣]이 있기에 기억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조건들이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법의 안약을 바르면 (땅에 묻힌) 보병들이라도 보고 찾아낼 수 있지만, 안약 자체에는 보는 성품이 없는 것과 같다.

여기서 보고 들어서 인식하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들은 것이 진리라고 또는 실재한다고 여기고 싶은 것이 바로 고통이 원인이 되기에 그런 잘못된 생각을 부정하려는 것이다.

'마음과 허깨비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다르지 않기에 분별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따로 실재한다면 어떻게 다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다르지 않다면, 따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허깨비는 실재하지 않더라도 볼 수는 있다. 그와 같이 볼 수 있는 것이 마음이다. 윤회는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허공과 같은 것인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떻게 실재하는 것에 의존해서 마음에 작용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실재하는 것이 없는데도, 실재하지 않는 것에 따라 마음이 실재한다는 말이 된다. 마음만이 홀로 존재한다면 그때는 모든 중생이 다 부처와 같다는 말이 된다. 이런데도 마음만이 홀로 존재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허깨비인 걸 깨달았다고 해도 어떻게 번뇌가 다 사라진단 말인가. 아름다운 여인이 허깨비인걸 안다고 해도 여전히 애착은 일어나는데 말이다. 허깨비를 만든 우리 역시 여전히 대상에 탐내하는 번뇌의 습기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실재하는 것은 없다는 공성(空性)의 습기가 약해진 것이기도 하다. 공성의 습기를 무르익게 하여 사물[집착하는 번뇌망상]의 습기를 버려야한다. 이와같이 ‘실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고 나면 나중에는 그런 생각조차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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