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특허, 독립운동 자금이 되다
한국인 최초 특허, 독립운동 자금이 되다
  • 이석만 기자
  • 승인 2019.08.1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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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에서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 정인호 애국지사 추모식 개최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정인호 선생(1869.10.~1945.1.)이었다.

한국인 1호 특허권자인 정인호 선생은 1908년 초등대한역사 등 교과서를 저술해 민족교육운동에 앞장섰고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던 활동으로 징역(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정인호(1869.10.~1945.1.) 선생은 경기도 양주출신으로 궁내부 감중관과 청도군수를 지냈고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군수직을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08년 초등대한역사 등 교과서를 저술해 교육을 통한 민족교육운동에 힘쓰는 등 교육자, 저술가, 발명가로 활동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09년 8월 19일 통감부 특허국에 특허 제 133호로 말총모자 특허를 등록받으며 한국인 특허 1호의 주인공으로 우리 특허사에도 큰 이정표를 남겼다.

 일제에 의한 특허제도이지만 한국인 최초로 특허를 획득했고 일본에도 특허를 출원해 등록받았다. 당시 우리의 특허제도는 일본에 의해 1908년 한국특허령이 시행되며 도입됐다. 일본의 특허제도를 적용한 것으로 한국 내에서 미국과 일본의 권리보호에 주안점을 둔 제도였다. 경술국치후엔 한국특허령을 폐지하고 일본 특허법을 그대로 운영했다.

선생은 한국인 최초의 특허권자로 말총모자, 말총 핸드팩, 말총 토수, 말총 셔츠 등 다양한 말총제품을 제작해 일본, 중국 등에 수출하며 민족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선생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독립구국단을 결성해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대한매일신보 1909년 8월 24일자에 게재된 한국인 제1호 특허 말총모자 관련 광고
대한매일신보 1909년 8월 24일자에 게재된 한국인 제1호 특허 말총모자 관련 광고

특허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광복 74주년, 정인호 선생의 특허등록 110주년을 기념해 13일 오후 3시 대전현충원 정인호 선생의 애국지사 묘역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선생의 후손(증손녀 4명)들과 박원주 특허청장, 대전현충원장 등이 참석해 선생을 추모했다.

 특허청은 한국인 제 1호 특허권자로 한국 특허사에 남긴 이정표를 기념하기 위해 선생의 묘역에 상징물을 부착해 특허제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렸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일본제도에 의한 한국인 1호 특허가 역설적이게 민족기업을 성장시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의 숨은 자금원이 됐다”며 “한국인 1호 특허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를 극복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 특허분야에선 200만번째 특허등록을 앞두고 있다."며 "그동안 축적된 200만건에 달하는 특허와 새롭게 축적될 특허들이 우리경제의 위기를 돌파하고 혁신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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