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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선학원 주석, 보종·항일운동의 구심점”
한국불교선리연구원 만해 추모학술회의 성료
“만해-선학원 관계 연구 일천, 지평 확대돼야”
2019년 06월 05일 (수) 17:00:00 이창윤 기자 budjn2009@gmail.com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이 ‘만해의 독립운동과 선학원 - 재산환수승소판결문을 중심으로’를 주제발표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75주기를 맞아 스님이 입적한 6월 한 달간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법진)이 다양한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만해 스님의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적, 사상적 성격을 살펴보는 학술회의가 열렸다.

재단법인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은 6월 4일 오후 2시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지하 3층 만해홀에서 ‘만해 한용운과 독립운동’을 주제로 추모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학술회의에 앞서 이사장 법진 스님은 “3·1운동으로 옥고를 겪으신 만해 스님께서는 1921년 12월 서대문형무소를 출옥하신 이후 10여 년간 이곳 선학원에 주석하셨다”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만해 스님과 독립운동’을 주제로 개최되는 본 학술회의는 더욱 뜻깊고 의미 있는 자리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만해 연구의 지평이 보다 확장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학술회의에서는 법진 스님이 제1 주제 ‘만해의 독립운동과 선학원 - 재산환수승소판결문을 중심으로’를 발표하고 신규탁 연세대 교수가 논평했다. 이어 김성연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연구원이 제2 주제 ‘한용운의 독립운동과 자유·평등사상의 역사적 맥락’을 발표하고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논평했다. 끝으로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이 제3 주제 ‘자유와 평화를 지향한 한용운의 독립운동’을 발표하고 최경순 씨(연세대)가 토론했다.

법진 스님은 주제발표에서 만해 스님의 항일운동과 선학원 설립의 상관관계를 사료를 토대로 고찰했다. 이어 범어사에 명의신탁한 재산을 되찾으려고 1953년 제기한 소송의 판결문을 중심으로 ‘만해 스님은 선학원의 설립조사가 아니다’라는 학계와 불교계 일각의 주장을 논박했다.

법진 스님은 만해 스님과 선학원의 관계에 대한 연구 성과가 부족한 것에 대한 지적으로 주제발표를 시작했다. 법진 스님은 “만해에 관한 연구 성과가 적지 않게 이루어졌지만 만해와 선학원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며, “연구 부족은 선학원과의 관계 및 활동, 그리고 만해와 선학원이 지닌 근현대 불교사적 의미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일방적 해석의 위험성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와 선학원미래포럼을 중심으로 만해 스님이 선학원의 설립조사가 아니라거나 선학원과의 관계를 부정적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 양자(만해와 선학원)에 대한 소극적인 연구와 사실에 대한 왜곡의 결과라는 것이다.

법진 스님은 “최근 불교계와 학계 일부에서 선학원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만해를 중심으로 한 설립조사의 가치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며, “이것은 역사 왜곡뿐만 아니라 한국근현대불교사 연구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 법진 스님.

법진 스님은 불교계와 학계 일부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임을 밝히기 위해 선학원 설립이 일제 강점기 불교계의 보종(保宗)과 항일운동 계승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만해 스님의 독립운동이 선학원 설립의 정신적 이념이 되었고, 선학원은 설립 이후 만해를 중심으로 한 불교계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었음을 객관적인 사료 소개와 분석을 통해 고찰했다.

법진 스님은 친일승려들의 조계종 맹약에 저항한 임제종 운동과 조선불교청년회의 창립과 활동이 선학원 설립 이념과 운영으로 계승됐다고 주장했다.

임제종운동은 이회광이 원종과 일본 조동종을 연합시키려 한데 반대해 영·호남 승려가 임제종 임시종무원을 송광사에 설립하면서 시작된 보종(保宗) 운동이다. 만해 스님은 당시 종무원 관장으로 선출된 연로한 경운 운기 스님의 권한을 대리했다.

임제종 운동은 일제의 사찰령 제정과 공포로 좌절됐지만, 1920년 임제종 중심 사찰의 후학이 만해 스님을 중심으로 조선불교청년회를 결성하는 등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으로 계승됐다. 조선불교청년회는 1921년 조선불교유신회로 이어졌다. 조선불교유신회는 총독부에 정교 분립과 사찰령 폐지 등을 주장했는데, 당시 대표 15명 중에 선학원 설립 주역인 도봉 본연 스님과 석두 보택 스님이 포함돼 있다. 두 스님은 선학원 설립 조사이다. 만해 스님은 1924년 조선불교청년회 총재로 취임했다.

이처럼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찾고자 했던 임제종운동과 조선불교청년회, 조선불교유신회의 활동의 구심점은 만해 스님이었고, 이들의 활동은 선학원 설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법진 스님의 주장이다.

법진 스님은 이어 재단법인 선학원이 소장하고 있는 《부동산등기권리증철(不動産登記權利證綴)》에 수록된 <법인 재산 환수 승소 판결문>을 근거로 “만해 스님은 선학원의 설립조사가 될 수 없다”는 일부 학계와 불교계 일각의 주장에 일침을 가하고, 만해 스님이 선학원에 주석하는 1921년부터 1931년까지 10여 년 동안 주도한 독립운동을 고찰했다.

법인 재산 환수 소송은 선학원이 설립 직후 일제의 경제적 탄압(과중한 세금 부과)을 피하고자 범어사에 신탁한 재산을 되찾고자 1953년 제기한 소송이다. 재판문에는

재판문에는 “강도봉, 김남전, 김석두 등은 기미독립운동 당시 33인 중의 1인이며 이판계(理判系)의 선종의 지도자인 한용운이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단기 4254년도(1921)에 출옥하게 되자 동인(同人, 한용운)을 중심으로 한 사판계(事判系)에 대응하여 이판계(理判系)의 수도원(을) 창립하고자” 선학을 설립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법진 스님은 판결문을 근거로 “선학원 설립에 실질적 역할을 했던 남전·도봉·석두 스님은 만해 스님이 출옥하게 되자 그를 중심으로 보종과 항일운동 등을 지속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구현하고자 했다”며, “만해 스님을 선학원 설립 이념과 운영의 상징으로 설정하고, 만해를 구심점으로 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독자적 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고 지적했다.

만해 스님은 선학원에 주석하는 동안 1922~3년 민립대학 건립운동, 1926년 6·10만세운동, 1927~30년 신간회 운동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또 1930년에는 김법린, 김상호, 이용조, 최범술 등이 조직한 청년비밀결사 만당의 당수로 추대됐다. 만해 스님은 만당 핵심세력과 함께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전환해 일제 탄압에 맞섰다.

이처럼 만해 스님은 출옥 이후 1921~31년까지 선학원에 주석하면서 불교계의 보종과 항일운동을 지속적으로 주도하였으며, 3·1운동의 연장선상에서 6·10만세운동과 신간회 등에서 항일과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활동하였다.

법진 스님은 “선학원의 설립 조사인 남전·도봉·석두 스님은 만해 스님을 선학원에 주석시킴으로써 미완으로 끝난 독립운동을 완성시키고자 했으며, 선학원을 불교계 보종운동과 항일운동의 구심점으로 삼고자 했다”며, “만해 스님이 선학원 주석은 불교계에 국한되지 않은 범민족운동의 전개이기도 했다”며 만해 스님과 선학원의 근현대불교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법진 스님은 이어 “만해 스님은 선학원의 설립조사가 될 수 없다”는 일부 학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남전·도봉·석두 스님은 만해 스님을 구심점으로 민족의식이 투철한 불교계 인사들의 수행처를 만들고자 했다”며, “만해는 복역 중이어서 선학원 설립공사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 설립이념의 명분과 구심점을 명확하게 제공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만해가 선학원 설립의 민족불교 이념과 상징적 구심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법진 스님은 또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2017년 《역사와 교육》에 발표한 <현대기 선학원의 역사와 성격>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선학원이 만해 추모 및 연구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선학원의 정체성, 역사성을 유의할 경우 지나친 경도”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선학원은 설립조사에 대한 추모재를 매년 지내오고 있다. 만해 스님 역시 교계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찍부터 매년 6월 29일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추모제를 지내왔다”고 반박했다.

“만해는 민족불교에 부합되는 인물이지만, 정화불교에 대한 역사성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화운동은 일제의 한국불교 일본화에 맞서 부처님 본래 정신을 지키고 한국적인 선풍을 강화하는, 종교개혁적이며 항일민족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는 <불교신문> 보도를 사례로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한 근대불교사의 대표적 연구자인 김광식 교수가 민족불교와 정화불교를 분리해서 인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진 스님은 또 김광식 교수가 선학원의 만해 선양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에 대해 “만해 스님이 선학원의 설립조사이고, 민족불교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정화불교로 계승되었다.”며, “만해와 선학원이 지닌 역사적 사실을 두고 김광식의 지적은 상식을 넘어 억지스럽다.”고 비판했다.

설립조사 중 한 분인 만공을 홀대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법진 스님은 “현재의 선학원이 설립조사 만공을 홀대한다거나 설립조사 명단의 후반부에 배열하고 있는 것이 역사왜곡이라는 지적은 역사적 사실이나 인식의 문제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선학원은 만해 스님만 설립조사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설립조사 배열 순서를 가지고 문제제기를 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고, 민족불교 회복을 위해 노심초사했던 선학원의 설립조사를 편 가르기 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고 강조했다.

법진 스님은 이어 “만해 스님은 선학원에 있으면서 밥이나 얻어먹던 분”이라고 폄훼한 선학원미래포럼 회장 자민 스님의 발언을 예로 들며 “한국 근대불교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학문적 오류나 잘못된 해석으로 인한 오류가 불교계에 끼친 악영향은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스님은 끝으로 “미완과 왜곡으로 쓰여진 한국근현대불교사를 기억하고 그 반성 위에 객관적으로 정립하는 일은 과거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고, 선학원 설립 100주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만해와 선학원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윤 기자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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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시간 : 2019-06-05 17:59:43]  
[최종수정시간 : 2019-06-07 13: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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