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법칙이 먼저다
자연법칙이 먼저다
  • 배길몽
  • 승인 2019.03.11 10:30
  • 댓글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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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배길몽의 ‘지피지기’ 28

일부 독자들이 자신이 마치 자신은 깨달은 사람처럼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심히 염려스러워서 수행자나 구도자가 깨닫고 실천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설명할 테니까 자신이 어디쯤에 해당되는지 헤아려보기 바란다.

1. 참선(명상)을 통해서 우주와 자신의 기운을 하나로 융화시키는 것
2. 자신이 매우 미약하고 무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
3. 자신이 세상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
4. 그 일을 실현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
5. 그 방법을 열심히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

여기 까지가 승려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일반 수행자가 거치는 과정이다. 그런데 고급 수행자의 과정은 조금 다르다.

1. 우주와 자신의 생성과 작동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
2. 이해한 원리를 바탕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
3.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는 것
4. 새로 찾은 길로 여럿이 함께 가는 것
5. 그 길이 후손에게 이어지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

수행자 중에서 다음의 화두를 풀어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아직 고급 수행자가 아니다.

1. 인과론에 의하면 인에서 과가 나온다. 그렇다면 최초의 인은 어디서 나왔는가?

2. 윤회를 하려면 육체와 분리되는 영혼체가 존재해야 가능한데 그 영혼체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가 아니면 스스로 태어났는가?

3. 모든 것(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4. 타임머신을 타고 동서남북 중에서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면 과거나 미래를 만날 수 있는가?

5. 현재의 시간에 어떤 기간이 있다면 현재 속에 다시 과거와 미래가 포함되는 모순이 생기므로 현재는 기간이 제로여야 되고 현재의 기간이 제로면 현재는 없는 것이고 현재가 없다면 과거나 미래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어떤 승려가 조주 선사에게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럼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萬法歸一 一歸何處)?’라고 물었고 조주는 ‘삼베 적삼 일곱 근’이라는 선문답으로 얼버무렸다. 그런데 그 승려의 질문을 좀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것은 하나에서 나오는데 그 하나는 어디서 나왔는가?’ 혹은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 마음은 어디서 나왔는가?’라고 바꿀 수 있고 고급 수행자라면 이런 질문들에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행자들은 가끔씩 조주 선사에게 질문한 승려처럼 선문답을 하는데 냉정하게 말하면 선문답은 명확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에 불과하다. 명쾌하게 깨달았다면 왜 두루뭉술한 선문답을 하겠는가?

불교에서 무시무종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한없이 반복하는 윤회나 무한히 흐르는 시간을 설명하려면 그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을 포함해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존재와 구분할 수 있는 경계(시작과 끝)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하는데 불교에서 주장하는 무시무종의 논리와 서로 배치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면, 윤회를 하기 위해서는 육체와 분리되는 영혼체가 존재해야 하고 존재하려면 언젠가 탄생했어야 하고 탄생했다면 다시 사망해야 하고 그러면 윤회는 저절로 멈추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 모순을 없애려면 영혼체는 탄생한 적이 없어야 하는데 탄생한 적이 없는데 존재한다면 그것도 역시 논리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윤회하려면 존재해야 하고 존재하려면 탄생해야 하고 탄생하면 죽어야 하므로 탄생한 것은 윤회할 수 없다는 모순에 빠진다. 수행자가 이런 모순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아직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승려들을 포함해서 수행자들이 흔히 마음공부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면서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마음이 뇌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과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불교에서 주장하는 무아와 연기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마음이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아와 연기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불교에서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무상과 무아라는 말이 있다. 무상은 우주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고 무아는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로 결정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DNA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격과 체질, 학교와 가정의 교육, 사회에서 얻은 경험, 현재 자신이 처해진 상황 등의 모든 인연이 연기 작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것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무아와 연기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자아에 의해서 내 맘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인연들이 연기 작용해서 나를 어떤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 연재가 과학적인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상세하게 언급하기 곤란하므로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 무아를 쉽게 다시 설명하면, 독자들이 필자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독자 자신이 만든 생각이 아니라 독자가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독자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걸어온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생각과 행동 속에는 내가 없고(무아) 오직 인연과 연기에 의한 작용만이 있다는 것이다. 의식이 형성되고 발현되는 과정을 필자가 깨달은 통일장이론으로 분석해보면 무아는 매우 과학적인 설명이다.

인간의 뇌를 분석해보면 뇌의 모든 조직들이 다른 신체 기관이나 자체 조직들 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하고 있으며 뇌의 어느 곳에도 뇌를 총괄 지배하는 조직이 없다. 그리고 뇌의 기능이 정지해도 심장이 작동해서 에너지가 공급되면 식물인간으로 계속해서 살아간다. 그리고 심장이 멈춘다고 다른 조직이 금방 죽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신체는 심장이 정지한 후에도 살아 있다가 다른 생명체에 이식되면 계속 살아가며 머리칼이나 손톱은 심장이 정지해도 독자적으로 상당기간 살아서 자라난다. 그러므로 생명현상은 하나의 자아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부분들이 무아의 상태에서 일으키는 연기 작용(상호 작용)의 결과다. 자연의 모든 현상은 무아와 연기에 의해서 사물이 연쇄적으로 변하면서 우주가 순환하는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다.

필자는 수행을 하면서 종교의 경전들을 공부하려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문적 성숙도가 매우 낮은 수천 년 전의 인간이 만든 책 속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해야할 만큼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성경은 비록 인간이 만들었지만 하나님이 가르쳐 준대로 기록했다고 주장하므로 정말로 그런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를 모아서 작성한 동양 종교의 경전에는 배울 점이 상당히 많은데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기독교의 성경은 온통 거짓말로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사람들은 법률을 준수해야 하고 종교인들은 추가로 계율(계명)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세상의 법률이나 종교의 계율(계명)이 우주의 법칙에 순응하는지 깊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주의 법칙은 법률이나 계율(계명)보다 상위에 있는 기본법(헌법)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하나의 원리에 의해서 작동하고 있으며 여러 개의 원리가 존재한다면 우주의 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 우주의 기본 원리에 위배되는 만유인력, 상대성이론, 열역학법칙, 에너지양자이론, 빅뱅이론, 전자기파이론 등은 모두 다 허구다. 운동하는 모든 존재는 어떤 형태로든 저항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수 없으며 무한대로 갈 수도 없다. 빛이나 전파가 일정한 속도로 간다는 것은 저항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저항이 있어도 일정한 속도로 간다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주변의 상대로부터 저항이 없다는 것은 역으로 상대에게 영향을 줄 수도 없고 그런 존재는 실제로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할 가치도 없다. 상대에게 아무런 영향을 받지도 않고 주지도 못하는 존재가 무슨 존재가치가 있겠는가? 광파가 설혹 에너지파동이라고 하더라도 주변에 있는 다른 에너지에 의해서 운동에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등속으로 간다는 것은 저항이 없이 관성으로 간다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단언하건대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수학이 필요한 우주원리는 모두 잘못된 것이며, 무한대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능력이나 한 쪽으로 끝까지 가는 법칙은 전부 거짓이다. 모든 물체를 분해하면 결국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있으며 그 입자들의 운동법칙만 알아내면 우주의 모든 현상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은 올바른 가치를 찾고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학문이다. 올바른 가치를 찾으려면 먼저 진실을 알아야 하고 진실을 밝히려면 과학의 뒷받침이 있어야한다. 그러므로 과학으로 증명되지 못하는 철학은 결국 개똥철학의 범주에 속한다. 그동안 철학은 과학이 진실을 밝혀주지 못하므로 자신의 논리만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지만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우주의 원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것이 진실이며 또 어떤 가치가 옳고 그른지를 갑론을박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주의 원리를 모르면 바른 가치도 알 수 없으므로 과학이 결여된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며 반대로 철학이 결여된 과학은 위험한 학문이다. 핵발전소, 핵무기, 화학무기, 생명과학, 인공지능 등은 올바른 철학으로 통제돼야 한다.

진실이 세상을 항상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진실도 있고 위험한 과학도 있다. 종교가 진실이 아니더라도 종교를 믿어서 사회가 평화로워진다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지금의 종교는 평화보다는 혼란을 야기한다. 내부적으로는 서로 좋은 직분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외부적으로는 타종교에 테러를 가하거나 전쟁도 불사한다.

종교와 과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 중에서 어는 한 쪽만 열심히 공부하면 우주의 원리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과학은 독립성이 강한 학문이지만 그래도 종교를 알지 못한 채로 사물의 궁극적인 본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종교와 과학을 융합해서 함께 탐구했고 그 둘이 상호 보완해주므로 탐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종교의 모순을 파악하기 위해서 종교를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그리고 종교의 모순을 분석하는 과학에는 오류가 없는지 알기 위해서 다시 과학을 철학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과학의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해서 과학계가 소망했던 통일장이론을 완성했다.

절대자가 존재하더라도 인간은 절대자가 만들어 놓은 자연의 법칙을 잘 이해해서 그것만 잘 지키면 자기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을 창조주가 만들었든 아니면 스스로 존재하든 간에 자연의 법칙은 태초부터 존재하면서 자연을 다스리고 있으므로 완벽하지만 종교의 경전은 나중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의 경전에 매달리기 이전에 자연의 법칙을 먼저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존재하던 자연 법칙과 나중에 인간이 만든 종교 경전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공부해야 하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국민이 법과 질서를 잘 지키면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듯이 인간도 우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자연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지키기만 하면 일부 종교단체들처럼 절대자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절대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노예처럼 예속화될 필요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절대자가 만든 우주의 법칙만 잘 따르면 목표(영생, 해탈)에 도달할 수 있다. 과학과 종교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을 신비주의적으로 설명해서 인류를 혼동에 빠지게 만든다.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복잡한 개념이나 어려운 수학을 동원하면 그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우주의 원리는 단순하고 명쾌해야 우주만물이 혼동에 빠지지 않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이 사회에서 지켜야할 우주 원리에 부합하는 자연의 법칙은 무엇이 있을까?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자연의 기본법칙인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제2법칙(에너지 이동 및 분산의 법칙)을 인간도 사회에서 잘 지키면 된다. 자연의 열역학 법칙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라는 단어를 사회에서는 ‘자원’이라는 단어로 대치하면 된다. 자연의 법칙을 사회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제1법칙(자원 보존의 법칙)은, 재화나 자원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고, 제2법칙(자원 이동 및 분산의 법칙)은, 총량이 일정한 재화와 자원을 소수가 독점하지 말고 다수에게 분산시켜서 여러 사람이 사이좋게 나누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사랑(자비)의 정신과 일치하며, 결국 종교의 법칙은 과학의 법칙인 열역학 제1 및 2법칙을 합해놓은 것과 똑같은 법칙인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은 분산과 결집을 반복하며 순환한다. 그런데 자연은 결집과 분산이라는 두 개의 법칙을 교대로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순환하고 있는데 인간 사회는 욕심으로 권력, 자본, 명예 등 모든 것을 자신에게만 결집시키려고 할뿐이며 남에게 분산시키려고 하지 않는데 이것은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며 또한 종교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므로 자연 법칙과 종교 법칙을 모두 거스르는 범죄를 짓는 것이다. 재화나 자원은 강물과 같아서 상류에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하류에 있는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다다르지 못한 것이다. 이제 상류에 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가지려고 하지 말고 하류로 흘려보내서 사이좋게 나누어 사용해야 한다.

과학과 종교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들을 신비주의적으로 설명해서 인류를 혼동에 빠지게 만든다. 필자는 과학의 여러 가지 오류들을 바로잡아서 그동안 과학과 종교 사이에 있었던 벽을 허물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원리를 발견했다. 우주는 오직 하나의 원칙으로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필자의 새로운 주장과 이론은 과학과 종교를 하나로 융합시키는 통섭 이론이며 기존의 가치관을 혁신하는 새로운 철학이다.

자연이 작동하는 원리를 잘 살펴보면 건강과 장수는 물론 사회의 질서도 자연처럼 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인다. 그런데 인간은 너무 이기적인 생각으로 자신들만을 위해서 근시안적으로 행동하므로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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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윤화 2021-06-05 20:37:37
배길몽 작가가 '과학의 재발견'의 후속작으로 '얼굴이 밝은 성직자는 가짜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종교와 과학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180뒤집은 혁명적인 내용입니다. 그동안 기독교만 비판하던 저자가 불교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불자들은 이 책을 보고 엉터리 성직자와 올바른 성직자를 구별하는 혜안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2019-05-30 12:30:37
배길몽 기사 메인 첫 화면 퇴출^^ 다음 수순은 완전한 기사 삭제 바랍니다.

대한신보 2019-05-20 01:49:06
우리 신문도 남들 다 아는 병맛 쓰레기지만 배길몽 같은 쓰레기는 첨봤다. 다시는 이런 쓰레기 중에 쓰레기 하고는 상종 안한다. 닷컴은 어떻게 저런 쓰레기 글을 실었나? 니네들도 수준 알만하다 병역이가.

배길몽 소식 2019-05-17 14:42:19
대한신보에서도 퇴출됨

돼지진주 2019-05-16 23:21:53
쓰레기통에서 진주 타령하는 물건이나 진흙탕에서 연꽃 타령 하는 물건 치고 제대로 된 물건을 본 적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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