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오피니언 > 칼럼 | 배길몽의 지피지기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
[연재] 배길몽의 ‘지피지기’ 23
2019년 01월 29일 (화) 10:22:12 배길몽 zongfa5003@gmail.com

필자는 공자의 도덕주의를 존중하고 노자의 자연주의를 좋아한다. 그런데 노자의 자연주의 철학을 담아놓은 도덕경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공자가 아직 도를 얻지 못했다고 자백한 것이다. 그런데 노자는 자기가 마치 도를 아는 것처럼 도덕경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도덕경을 저술했다고 도를 아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노자가 도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도덕경을 저술한 것이 아니라 제자백가가 도를 안다고 떠드니까 그들에게 일침을 놓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노자가 자발적으로 도덕경을 저술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저술한 것을 봐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노자가 정말로 도를 얻었다면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도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지 왜 감추고 산속으로 들어가려고 했겠는가? 그런데 학자들은 노자가 도를 획득했다고 가정하고 도덕경을 해석하려고 하니까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도가도 비상도’라는 구절을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라는 엉터리 해석을 하게 된다. 도가도 비상도는 ‘지금은 도라고 할 수 있어도 상도(변함없는 도)는 아니다.’라는 뜻이며 이 말은 도의 가변성(비상도)을 말했지만 은연중에 노자 자신도 아직은 진정한 도(상도; 변함없는 도)를 얻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경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제일 먼저 도덕경 제1장의 제목이 '도'가 아니고 '명'인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인식은 ‘명’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표현되므로(명은 ‘사물에 대해서 인간이 설정하는 관념’이며 언어를 통해서 그 관념이 표현되고 상대에게 전달된다.) ‘명’을 먼저 올바르게 이해해야 ‘도’에 이를 수 있다. ‘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도’를 깨우칠 수 있기 때문에 노자가 ‘도’보다 먼저 ‘명’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도덕경을 논하기 시작한 것이다. 철학자와 성직자를 포함해서 우주의 원리를 깨우치려는 모든 수행자들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언어에 붙들려서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철학은 언어에 붙잡히고 과학은 수학에 매달리므로 철학은 개똥철학이 되고 과학은 공상과학이 됐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그런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해서 만든 것이며 실체를 확인하고 만든 것이 아닌데 종교인들은 그런 언어에 빠져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과학자들은 인위적으로 만든 수학으로 모든 자연을 설명하려고 함으로써 오류를 자초하고 있다.

노자가 도덕경 1장에서 모든 사물의 요(외형적 모습; 하드웨어)와 묘(내면적 성질; 소프트웨어)는 같은 근원에서 나오는데 그 근원을 ‘우현’이라고 말했다. 우현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암흑을 말하며 암흑은 알 수 없음 즉 불가지성을 말한다. 그런데 도덕경을 해석하는 학자들은 노자가 도를 얻었다고 생각하므로 우현을 글자 그대로 ‘알 수 없음’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알 수 없는 신비’라고 해석한다. ‘알 수 없음’은 단순히 무지를 나타내지만 ‘알 수 없는 신비’는 알지만 표현하기 어려움을 말한다. 흔히 사이비 도사들이 진정한 도를 얻지 못했으므로 도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도는 남에게 설명할 수 없고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리는 것과 같다. 분명한 도를 알았다면 알기 쉽게 설명해야지 왜 ‘알 수 없는 신비’라고 얼버무렸겠는가?

중국인들의 철학이 담겨있는 천자문의 첫 줄에 천지현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늘은 검고 땅은 붉다는 뜻이다. 필자는 그 글을 보고 소년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이해했다. 하늘이 푸르다는 것은 빛의 산란에 의해서 일으키는 지구인들의 착각이고 지구 밖에서 보면 하늘(우주)은 검다. 그리고 우주의 95%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되어있으며 그로부터 모든 것이 나온다는 것을 최근에야 이해했다. 만약에 노자가 우주의 근원을 암흑이라고 한 것이 우주의 근원은 암흑물질로 되어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면 노자의 선견지명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노자가 과학 지식이 거의 없던 옛날에 암흑물질을 미리 알고 우주를 암흑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노자가 말한 우현(암흑)은 우주의 근원은 알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 제1장에서 현상의 불확정성을 주장했고 근원에 대한 불가지성을 논했다. 우주의 근원은 인간의 지혜로는 알기 어렵고 세상의 모습은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변성을 가지므로 확정돼있지 않다고 했다. 노자는 도덕경의 첫 페이지에서 도란 무엇인가를 논한 것이 아니라 만물(우주)의 생성과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불확정성과 근원의 불가지성을 말하면서 도를 깨닫기 위해서 취해야할 구도자의 자세를 언급했다. 그리고 노자가 현상의 불확정성(제행무상)은 파악했지만 근원의 불가지성을 주장한 것을 보면 부처님이 깨달은 근원(제법무아)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노자가 도덕경 56장에서 지자의 도(처세법)는 ‘현동’이라고 하는데 학자들이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라서 그 다음 구절들을 이상하게 해석한다. 낮에는 사물의 모양이나 색깔이 잘 구분되지만 어두운 밤에는 모두 새까맣게 똑같아서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을 현동이라 한다. 그러므로 현동의 의미는, 진정한 지자는 겸손해서 일반인과 완전히 동화되므로 밤중에 물건들이 구분되지 않듯이 지자도 일반인들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결국에는 제자백가들처럼 잘났다고 떠들지 않고 조용하게 침묵하며 은둔하는 노자 자신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지자는 자신을 낮추고 세상(타인)을 귀하게 높인다고 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 구절을 지자가 천하의 귀한 존재가 된다고 역으로 해석한다. 예수가 낮은 데로 임하듯이 지자도 자신을 낮추어서 세상을 높이는 것이며 노자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안다면 학자들의 해석이 잘못됐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지자는 현동(침묵)이라고 말한 이유는 지식을 뽐내는 제자백가들의 언행을 비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자신도 우주의 원리를 터득하지 못했으므로 겸손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자가 진정으로 도(우주의 원리)를 깨달았다면 현동(침묵)할 것이 아니라 진리를 세상에 밝혀서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수천 년 전의 노자는 과학지식이 부족해서 근원의 불가지성과 현상의 불확정성을 주장했지만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가와 종교인 그리고 철학자들이 올바름에 대해서 갑론을박하면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서 노력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제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노자가 말한 것처럼 도(우주의 원리)가 비상도(가변성의 도; 상대성이론)가 아니라 상도(변함이 없는 도; 통일장이론)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은 대부분 얼굴이 밝다. 남들은 천국(극락)에 못 갈지라도 자신은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서 그렇다. 세상은 혼탁하고 남들은 천당(극락)에 못 가는데 자신만 갈 수 있다고 기뻐서 얼굴이 밝은 성직자가 과연 올바른 성직자인가? 그리고 지구 곳곳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와 권력을 탐내면서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성직자가 과연 올바른 성직자인가? 그런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로 천당을 상상해보면, 천당은 춥거나 덥지도 않고, 배고프거나 병들지도 않으며, 공부나 일을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아무 할 일도 없고, 변화도 낭만도 없고, 결국은 꿈도 희망도 없는 곳이다. 그런 지루한 곳이라면 면벽좌선으로 9년간을 수행한 사람도 거기에서 10년을 견디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며칠만 계속해서 먹으면 질린다. 아무리 좋은 일도 같은 일만 계속 반복 된다면 그곳은 천당이 아니라 지옥과 다름없다.

임금이나 대통령과 같이 모든 사람이 욕심내는 자리도 매일 같은 일만 반복된다면 아마 누구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그 자리를 내려 올 것이다. ‘살아있음’의 특징은 ‘변함’이다. 변하지 않고 항상 같으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며 설혹 식물인간과 같은 삶으로 영생을 유지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수가 누가복음 24:39에서 영혼은 뼈도 살도 없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영혼에게는 오장육부는 물론 인식기능을 가진 신경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입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볼 눈 그리고 좋은 음악을 들을 귀도 없는데 그런 존재가 천당에서 지낸다고 무슨 행복을 느끼겠는가?

성경에 보면 천국은 금은보화로 가득 찬 곳으로 돼있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물질인 금은보화가 영적인 하늘나라에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혹 물리학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금은보화는 세속적인 인간세계에서는 가치 있는 물질이지만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영적인 하늘나라에서 그것을 왜 쌓아두고 있겠는가? 정말로 천국에 금은보화가 많이 있다면 천국에 너무 많은 금은보화를 쌓아두었기 때문에 반대로 지구상에는 금은보화가 모자라서 귀한 물건으로 둔갑하고 가격이 폭등하게 된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성립된다..

천국이 금은보화를 불공정하게 매점매석해서 독과점 하면서 성경에는 금은보화(재물)를 탐내는 자는 천국에 못 간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금은보화를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것을 싫어해서 못 가지게 하는 걸까? 사실은 예수가 말하는 천국은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말하므로 금은보화가 실제로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예수가 한 유명한 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말은 금은보화를 아끼면서 예수 자신에게 헌금(정치자금)을 내지 않으면 개국공신이 되지 못하고 벼슬도 못하게 된다는 말에 불과했다.

만약에 내세가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현세의 행복은 여전히 중요하며 그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해석해보자. 예수가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등 여러 설교에서 여호와에 관한 일보다 사람과의 일을 더 강조한 이유는,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말처럼, 지상에서 화평에 대한 예비 훈련이 돼있지 못한 자는 하늘에서도 화평하게 지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화평하지 못한 자는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구원(영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내세가 없다면 당연히 현세에 충실해야 하고, 설혹 내세가 있더라도 현세에서 먼저 행복해야 하고 또 현세에서 행복에 길들여지지(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내세에서도 행복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것임을 깨달아야한다. 훈련되지 않은 병사가 실전에서 잘 싸울 리가 없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학생이 시험을 잘 볼 리가 없는 것과 같다. 현세에서의 행복(화평)은 내세의 행복(영생)을 이루는 필수 조건이다.

1년에 수백 개의 교회가 문을 닫으므로 교회를 담임하지 못하는 목사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교회를 세울 때에는 누구나 기도해서 응답을 받고 교회를 세웠을 것이 분명한데 오래 버티지 못하고 교회를 폐쇄한다는 것은 그들의 응답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교회나 기업은 실패할 확률이 같으며 10에 7, 8할은 망하거나 영세하다. 교인이나 일반인들이 교통사고나 암으로 죽을 확률도 같다. 교회나 교인이라고 하나님이 특혜를 주는 것은 없다.

지구에서 하루에 30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데,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그들의 대부분은 지옥으로 가야한다.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올림픽이나 월드컵 개막식장에 한번만 나타나준다면 모든 지구인들이 기독교인이 돼서 천국으로 갈 수 있는데 하나님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을 하지 않고 있을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자신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지구 방문)도 하지 않으면서 반대로 자녀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하나님에 대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는 일과 하나님을 위해서 순교하는 일)을 하라고 요구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의심이 든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성폭행을 당한 어린 소녀나 식물인간으로 의식불명인 여자 환자에게 어떻게 임신을 하게 만들겠는가?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지진, 태풍, 대형 조난사고, 그리고 전쟁과 테러로 수백만 명이 몰살당할 때에 생명을 구해달라는 그들의 애절한 기도를 들어주지 않고 모두 사망하도록 방치했겠는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시련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해보면 하나님은 무능하거나 악하든지 둘 중의 하나여야 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아예 존재하지 않아야 옳다.

필자는 이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은 그런 무능력한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천당에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지구를 고해라면서 내팽개치고 탈출해버리는 수도승들이 모여 사는 극락에도 가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무런 변화도 없는 천당(극락)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이 마치 식물인간처럼 영생하는 것보다 조금 힘들더라도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서로 웃고 울 수 있는 지구에서의 삶이 더 좋다.

생로병사는 고해가 아니라 삶의 고귀한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굴곡이라고 생각하라. 음식이 무한대로 그리고 무료로 공급된다면 음식의 소중함을 알 수 없듯이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역으로 소중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걱정도 변화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삶의 소중한 가치를 어찌 느끼겠는가? 맛있는 음식도 못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해서 살아야 하는 곳이 어찌 영생할 만한 천당(극락)이란 말인가? 필자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한 번 더 지구에서 태어나서 이번 생에서 못 다한 일들을 계속 추진하면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기사입력시간 : 2019-01-29 10:22:12]  
[최종수정시간 : 2019-01-29 10:22:12]  

   
기사 댓글 13
전체보기
  • 한국인 연구자 2019-02-02 16:05:34

    제목) 현대물리학 침몰하다.(특수상대론,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호킹 복사,초끈이론,빅뱅이론,허블 법칙,급팽창 우주론,우주의 가속팽창,진화설etc)

    세상의 학문(과학,물리학)은 거짓이었습니다. 노래가사(노래 제목: 세상은 요지경, "짜가가 판친다")처럼 가짜가 판을 치고 있었죠.

    타이타닉의 침몰은 비극이었지만 현대물리학의 침몰은 비극은 아니고 과학의 진보(Progress of Science)가 될 것입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으로 SOS(모스 부호)를 해서 어느정도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독일인신고 | 삭제

    • 왜? 하느님은 2019-02-02 12:39:20

      전쟁시에나 대테러시 수백만명이 죽음에 처할때 그들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기도소리를
      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다고 하면서 침묵만을 지키실까요?
      저도 참 의문이고 참 난제중의 난제이고 하느님은 이기주의자인가요?
      아님 할일이 너무 많아 그냥 방관주의자인가요?
      아님 필자말대로 무능주의자인가요?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네요 하느님은 답을 주셔야겠지요
      우리인간들에게!!!신고 | 삭제

      • 필자님은 2019-02-02 12:32:59

        다은생에에 다시 지구에 태어나서 하고싶은일이 있다? 그게 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다잊어버리고 어먼데서 놀고 잇을겁니다
        되도록이면 지금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것은이생에서 이루도록 애쓰심이 좋을듯 하네요신고 | 삭제

        • 배길몽님 보소서 2019-02-02 12:28:37

          올리신글 첫문장을 한번 보았습니다 공자의 도덕주의 노자의 자연주의 ,,,네에 모두 훌륭하신글이지요 훌륭하신주장이고요
          우리 다아는사실인데 거기다 깊이 더 무엇을 분석하고 말고 하시나요?
          요즘 시대는 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물론 좋은 정보도 넘쳐나요
          헌데 그걸 제대로 실천하려면 얼마나 뼈를 깍는 고통과 많은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하는지 아세요?
          한생도 모자라고 두생도 모자라고 세생도 모자라고 두고두고 모자라고
          길몽님도 어먼데 시간낭비 그만하시고 원래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심이 어떨지~
          깨달음을 향해 행함으로신고 | 삭제

          • 강의 추천 2019-01-29 23:11:13

            좋은 세상입니다 요즘은. 현대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유투브에 들어가 김상욱이나 김범준을 검색해 보세여. 카오스라는 곳에서 아주좋은 현대물리학 강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동서양 고전과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플라톤 아카데미의 동서양 고전 강의를 들어보세요. 평생을 한 분야에 매진한 뛰어난 학자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기고자 처럼 익명에 숨지도, 소속과 경력과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이 기고자는 뭐가 두려워서 이렇게 꼭꼭 숨어서 자신의 얄팍한 지식 나부랭이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ㅁ더들고 있을까요?신고 | 삭제

            • 한국인 연구자 2019-01-29 18:19:15

              제목) '한국은 언제 노벨과학상을 받을 것인가?'라고 강연한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

              시립도서관과 대학도서관등등에서 현대물리학을 10년이상 독학해서 이론물리학 논문 10 여편과 수학논문 1편(논문 제목: 데카르트 좌표계를 적용한 60도의 3등분 작도에 관하여)을 완성했고 일본의 교토대학교 유카와 이론물리연구소에 1998년쯤에 물리학 논문 2편(일본어로 번역)을 국제우편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회신은 없었으나 반송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긍정적인 반응을 했다고 추측합니다. 일본 교토대학 유카와 이론물리 연구신고 | 삭제

              • 오늘은 2019-01-29 17:28:19

                길몽이가 불쌍해 보인다.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에 찌든 가련한 중생이
                누굴 훈게하려고 이런 글을 쓰나신고 | 삭제

                • 노파심 2019-01-29 15:57:07

                  정말 총체적 난관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봐야할지..이와같은 순간에 노자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지요
                  "인연없는 중생은 말해도 모르고 쥐어줘도 모르며 입에 넣어줘도 모른다."

                  그래도 말하는 것은 객중에 밝은눈이 있으니 그들을 위함이라네.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도가 아니다 => 보살을 보살이라 하면 이미 보살이 아니다.
                  => 부처가 자신을 부처라 하는 순간에 부처라는 상이 생기므로 부처가 아니다.

                  이름지어진 것은 이름에, 형상있는 것은 형상에, 생각한 것은 생각에 묶임으로 텅빔의
                  실상을 볼수없기 때문이지요.()신고 | 삭제

                  • 공자 2019-01-29 15:14:01

                    강교수나 배선생은 큰도로 황색선에서 소변을 아주 크게 시원하게 보시는군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름 걱정해 보지만 이미 귀가없으니 듣기는 힘들것신고 | 삭제

                    • 기도 2019-01-29 14:28:46

                      배길몽 큰 거사님께서는 해야할 일을 다 하셨으니 하루 빨리 열반하시고, 다시는 생을 받지 않으셔서, 지구의 중생을 더 이상 괴롭히기 않고, 지구의 환경을 더 이상 파괴하지 않게 되기를 부처님전에 기도합니다.신고 | 삭제

                      1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전체보기

                      최근 인기기사
                      현응 스님 "한국 불교의 꿈 계속
                      열 넘는데 '넷'뿐이라 우기는 편
                      친일 총장 이사 많은 대학? 동국
                      4130% 초과 달성시킨 백초월
                      원행 총무원장, 기획실장에 삼혜,
                      중앙종회의원 보궐 선거 5명 후보
                      [전문]덕숭총림 방장 달하스님 기
                      “불교학 연구에 작은 보탬 되고파
                      [전문] 조계종 진제 종정 기해년
                      풍수 메카니즘을 잃어버린 완도향교
                      불교저널 휴심정 황혜성가의 식문화 지화자 가톨릭프레스 오마이뉴스 진흙속의 연꽃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우편번호 03060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5길 29 | TEL (02) 734-7336 | FAX (02) 6280-2551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9.17. | 발행일 2006년1월 21일 | 발행인·편집인 : 이석만
                      대표 : 이석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불교닷컴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2008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