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우편에는 예수가 없다.
하나님의 우편에는 예수가 없다.
  • 배길몽
  • 승인 2019.01.07 13:05
  • 댓글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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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배길몽의 ‘지피지기’ 20

철학은 올바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학문이다. 그런데 우주의 원리를 모르면 올바른 가치도 알 수 없으므로 과학이 결여된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며 반대로 철학이 결여된 과학은 위험한 학문이다. 핵무기, 핵발전소, 생화학무기, 생명과학, 인공지능 등은 올바른 철학으로 통제되지 않으면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철학은 본질을 탐구하고 과학은 현상을 연구한다. 그들이 다른 길로 가지만 결국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본질을 발견하면 현상을 이해하고 반대로 현상을 이해하면 본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교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들을 신비주의적으로 설명해서 인류를 혼동에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과학이라고 해서 모두 진실은 아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복잡한 개념이나 어려운 수학을 동원하면 그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우주의 원리는 단순하고 명쾌해야 하며 그래야 우주만물이 혼동에 빠지지 않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우주 원리를 어떻게 사물이나 미물들이 이해하고 따르겠는가? 

필자가 지금까지 기독교 성경 속에 있는 내용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기독교인들이 흔히 실수를 범하는 성경 해석의 오류들에 대해서 몇 가지 짚어보겠다. 

메시아에 관한 구약의 여러 예언들을 보면 미세한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이스라엘의 적대 세력을 진멸하고 영광스러운 이스라엘의 시대를 열기위해서 메시아가 온다고 했다. 그런데 소위 메시아라는 예수가 적대 세력을 제거하기는커녕 그들을 피해서 도망 다니다가 그들에게 붙잡혀서 죽는 무능함을 보였다. 예수를 메시아로 만들려는 신약 성경의 시도는 무모하다기보다 차라리 안쓰럽다. 예를 하나 들어 보면, 다윗이 예수를 자신의 주라고 칭했다고 하는데(마태복음 22:45, 누가복음 20:44) 성경 기록자가 예수의 격을 높이려고 구약을 잘못 해석하고 인용했다. 

다윗이 구약에서 자신의 주라고 칭한 사람은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왕인 사울을 말한다(사무엘상 24:8~10). 그리고 다윗이 썼다고 알려진 구약의 시편에서 우편이라는 것은 공간적인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호관계(같은 편)를 뜻하므로 ‘여호와가 나의 우편(자신은 여호와의 좌편)에 있다는 것’은 여호와가 자신을 보호해주는 관계라는 것이고(시편 16:8, 121:5) 반대로 ‘여호와의 우편에 앉으라고 하는 것’은 다른 신을 믿지 말고 여호와에게 순종하라는 뜻이다. 시편 110:1에서 여호와가 다윗의 주(사울 왕)에게 우편에 앉으라고 한 것은 사울이 여호와에게 불순종하므로 순종하라는 뜻이고 순종하면 여호와가 그 다음의 일들을 모두 알아서 해준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우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해석할 때에 잘 분별해야 한다. ‘우편에 있다.’는 것은 보호관계를 나타내면서 여호와가 주어가 되지만, ‘우편에 앉는다.’는 것은 여호와에 대한 복종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인간이 주어가 된다. 공간적으로 따지면 여호와가 자신의 우편에 있는 것과 여호와의 우편에 자신이 앉는 것은 서로 반대 위치가 되므로 잘못 된 표현이지만 둘이 모두 공간적인 위치를 나타내려고 하는 표현이 아니라 우호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므로 위치가 상충돼도 큰 문제는 아니지만 성경 기록자들이 구약을 잘 못 해석해서 신약에 인용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면서 예배를 할 때마다 암송하게 하는 사도신경은 예수가 아직 하나님으로 진급하지 못한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약의 표현을 본떠서 예수를 하나님의 우편(우호적인 측근)에 있다고 함으로써 예수는 하나님과 삼위일체가 아니라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안정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는 하나님의 좌편(반대파)에는 누가 있는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예수가 자신이 메시아임을 선포하며(마태복음 11:13, 누가복음 16:16) 천국에 가는 방법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에 대해서 언급한 성경 구절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필자가 영어성경을 살펴봤더니 영어성경도 원어에서 약간 잘못 번역한 것으로 추정됐으나 그래도 의미파악은 가능했다. 성경학자들이 번역을 잘 못한 이유는 천국이 하늘에 있는 나라인 것으로 잘못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자신의 반대파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사용한 반어법적인 표현들을 글자 그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수호신인 여호와를 순종하지 않으므로 여호와가 로마를 이용해서 이스라엘을 징벌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는 유태인들이 회개하고 여호와의 뜻에 따르기만 하면 굳이 무력적인 독립운동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로마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회개는 하지도 않고 로마와 투쟁만 하고 있던 무장 독립운동 세력을 비난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어성경을 참조해서 마태복음 11:12~13절을 바르게 해석하면, 천국(이스라엘의 독립)이 가까이 오고 있으나(예수의 기본 설교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구절과 상통하는 것을 참조하기 바람) 힘센 자들(무장 독립운동 세력)이 쓸데없이 힘(무력)을 사용해서 천국(이스라엘의 독립)이 가까이 오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내용을 언급한 누가복음의 구절(16:16)도 앞에서 말한 마태복음과 같은 맥으로 해석이 돼야 한다. 영어 성경에는 사람들(무장독립세력)이 힘을 사용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만든다고 돼있는데 예수가 그 말을 한 이유는 그것을 권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난하기 위한 반어법이다. 부모가 사고를 낸 자녀에게 잘했다고 말하면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비난이다. 그런데 신학자들이 이것을 마치 힘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옳은 것처럼 번역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16:16)의 구절은, 복음을 실천하면(회개와 순종을 통한 비폭력적인 독립운동을 실천하면) 여호와께서 종말을 통해서 적대세력(로마)을 물리치고 지상천국(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루게 할 것인데 유태인들이 복음(예수의 가르침과 예언)을 멀리하고 오히려 모두가 바라바(그 당시 무장 독립 운동가, 훗날 십자가에서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를 추종하며 힘(무력)으로 천국(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하려고 하는 것을 비난하기 위한 표현이다. 어찌 하늘에 있는 나라를 힘(무력)을 사용해서 침입할(쟁취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는 진보주의자였기 때문에 보수주의자인 바리새인들과 수시로 충돌했다. 마태복음 5:17~18도 율법에 관한 구절이며 메시아의 선포와 연관된 내용인데 그것 역시 신학자들이 해석을 잘못했다. 성경번역자가 17절에서 ‘율법과 선지자(예언서)를 완전(완성)하게 하려 함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구절을 처음 보았을 때에 나도 사도 바울의 견해처럼(로마 13:10) 불완전한 율법을 사랑(복음)으로 보완해서 완전하게 한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율법과 예언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으로서 적절한 해석이 아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해석은, 예언서와 율법의 임무(역할)는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인데 이제 메시아인 예수가 와서 예언도 성취됐고 또 새로운 율법(복음)도 선포해서 낡은 율법은 필요 없으므로 예언과 율법의 시대는 세례요한으로 끝났고 예수와 함께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쉽게 다시 설명하면, 17절은 율법과 예언서가 잘못돼서 폐기하거나 율법의 부족함을 보완해서 완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성해서 율법의 역할이 끝났으므로 영광스럽게 퇴장한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18절에서도 신학자들이 부사절의 동사를 마치 주절의 동사처럼 잘못 번역해서 의미를 바꿔놓았다. 18절에서 천지가 없어지는 것과 전부 이루는 것은 모두 종말과 심판의 때를 나타내는 부사절이므로 18절은 기득권층이며 보수파인 바리새인들이 새로운 율법인 예수의 복음을 무시하며 종말이 올 때까지 회개하지 않고 낡은 율법만 지키고 있을 것을 비난하는 표현이다. 신학자들은 다음 구절에서 계명을 잘 지키라는 예수의 말을 보고 율법도 잘 지키라는 말로 오해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오역이 생겼으며 그래서 19절을 번역하면서 첫머리에 영어성경에는 있지도 않은 접속사 ‘그러므로’를 첨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굳이 접속사를 넣으려면 ‘그러나’를 넣어야 한다. 19절의 바른 의미는, 율법이 임무를 다하고 폐기되므로 제자들이 계명(십계명)도 폐기되는 것으로 오해할 것을 염려해서 계명은 잘 지키라고 한 것이고 오히려 바리새인들보다 더 잘 지켜야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처럼 새로운 시대가 왔으므로 기득권층들이 과거에 만든 율법은 버리고 새로운 율법(예수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것이다. 

누가복음의 16장17절도 율법의 영원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율법의 한 점을 바꾸는 것이 천지를 없애는 것보다 더 어렵게 만드는 바리새인들의 율법고수주의를 비난한 것이며 그래야  전체적인 문장의 맥락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교리는 물론 예수의 평소 언행과도 일치한다. 

예수가 평소에 바리새인들의 율법고수주의(새 술인 복음을 멀리하고 묵은 술인 율법만 좋아하는 것)를 비난한 것에서 율법에 대한 예수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하며 그 점을 고려해서 율법(사람이 만든 것)과 계명(하나님이 주신 것)에 관한 구절을 구분해서 해석해야 성경 전체가 맥이 통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예수의 생각은 제사장들이 만든 낡은 율법은 폐기하고 자신이 준 새로운 율법(복음)을 따라야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계명은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왕)가 돼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피신하면서 아지랑이와 함께 언덕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졌는데 성경은 그것을 예수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기록했다.

예수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메시아라고 선포했지만 사실은 메시아를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의식인 기름부음이 정식으로 행해진 적이 없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물세례를 받고 마지막에 기름(향유)부음을 받은 매우 의미 있는 두 번의 의식이 있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물세례 후에 나타나는 성령의 강림(성령세례)과 하늘의 소리로 예수가 이미 공식적인 메시아로 인식됐는데 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를 보내어서 예수가 메시아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보아서(마태 11:3, 누가 7:20) 물세례를 할 때에 하늘의 소리나 성령강림은 없었음이 분명하고 또 그 후에도 예수가 자신에게 성령세례가 아직 없었음을 괴로워하고 그것을 기다리고 있음을 표현하는 기록이 있다(누가복음 12:50). 그래서 예수가 성령세례 대신에 마리아의 기름부음(메시아에 대한 인증)을 매우 기뻐했다.

기름부음은 원래 선지자가 해주는 것이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았으므로 마리아라는 여인이 대신 용감하게 했는데 마태와 마가복음은 예수의 기름을 머리에 부었다고 했고 누가와 요한복음은 발에 발랐다고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차마 거룩한 기름부음(메시아의 인증)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장사준비라고 얼버무린 표현도 있다. 그들은 예수가 죽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 설혹 알았다고 하더라도 3일 만에 부활하기로 돼있으니까 장사준비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장사준비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 아니라 시체에 바르는 것이기 때문에 죽기 전에 미리 할 필요가 없었다. 마리아의 기름부음은 장사 준비가 아니라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는 의식을 한 것이다. 예수가 시몬에게 비싼 향유대신 싼 감람유마저도 부어주지 않은 것을 질책한 것(누가복음 7:46)으로 보아서 예수가 기름부음(메시아에 대한 인증)을 얼마나 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수가 미래에 다가올 종말을 이야기하면서 구약의 선지자 다니엘을 인용한 것은(마태복음 24:15) 구약의 예언(종말과 메시아의 도래)이 그때까지 완성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예수가 포도원 주인이나 귀인이 먼 길을 다녀온다는 비유로 설교한 것이 바로 자신이 도피한 후에 재림한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며 자신이 돌아와서 종말과 심판 그리고 메시아의 임무를 이행하면 구약의 예언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다시 오겠다고 한 것은 신약(새로운 약속)이 아니라 구약 실현의 지체와 연기를 의미하며 유감스럽게도 아직 이루지 못했고 그것이 유대교의 기본 교리다. 그런데 예수의 이런 설교가 예수의 부활 이후에 조작된 것이 아니고 사실이라면 예수는 자신에 대한 포위망이 좁혀오니까 도피할 생각을 미리 하고 있었는데 미처 실행하기 전에 붙잡혔고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부활의 사건으로 착각되고 예수를 메시아(지도자)로 추종하게 만든 것이다. 

예수가 비록 메시아일 지라도 메시아는 하나님이 인정한 정치 지도자에 불과하고 신앙의 대상인 신이 아니다. 필자는 기독교인들에게 조언한다. 하나님만 믿으면 칭찬을 받겠지만 예수를 믿으면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예수를 믿으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마라는 십계명의 1항에 위배되는 엄청난 우를 범할 수 있다. 설혹 예수가 메시아를 넘어서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만 열심히 믿은 사람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임금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행차했는데 임금을 몰라보고 엎드리지 않았다면 그 백성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임금이 평복을 입고 궁궐 밖으로 암행을 나섰는데 임금을 몰라봤다고 백성에게 벌을 줄 이유가 없듯이, 하나님이 천사들을 데리고 구름을 타고 오지 않고 인간의 몸을 빌려서 세상에 나타났는데 누가 그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또 그가  하나님인 것을 몰라 봤다고 어찌 책망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사탄이 예수로 변신해서 나타났는지 어찌 알고 함부로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믿는단 말인가?  

여호와의 입장에서 보면 누군지 모르는 불확실한 존재를 여호와라고 덜컥 믿는 것보다 여호와 외에는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더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워 보일 것이다. 하나님만 믿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굳이 예수를 믿어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1항을 위반할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영리하다고 알려져 있는 유태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성경 특히 신약성경에 나온 구원은 영혼구원이 아니라 로마가 쳐들어 올 때에 유태인의 목숨을 구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의 구원론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논할 필요조차도 없지만 기독교의 주장대로 영혼구원을 의미한다고 가정해도 기독교는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지금부터 기독교가 주장하는 원죄와 구원에 관해서 정리해보기로 하자.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아무리 착해도 원죄가 있어서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원죄라는 이론은 참으로 잘못됐다. 우선 성경적으로 살펴보면 십계명에서 죄는 3~4대를 내려가고 은혜는 1,000대를 내려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설혹 원죄가 있어도 3~4대밖에 내려갈 수 없다. 기독교적인 논리로 살펴보아도 우리가 비록 조상의 후손으로서 조상의 몸을 도구로 빌려서 태어났지만 우리의 영혼은 부모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부모와 전혀 별개로 하나님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창조된 개체이므로 영적으로 전혀 상관없는 육신의 조상들이 지은 죄를 유산처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어서 원죄를 지었다고 하는데 선악과를 먹도록 이미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돼있었던 것이며 선악과를 먹은 것은 그들의 잘 못이 아니다.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선악과를 심어서 인간을 함정에 빠트려 놓고 인간에게 그 죄를 물어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 온갖 고생을 시킨 후에 예수를 보내서 구원해준다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것이며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한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보상에 불과하다.

인간 모두를 계획적으로 원죄로 묶어 놓고 구원해주는 것을 은혜라고 한다는 것은, 권력자가 대한민국을 전부 그린벨트로 묶어 놓고 일부 사람의 땅만 슬금슬금 풀어주면서 그것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라는 함정을 설치한 것을 미안해하며 사과하고 그 보상으로 내세에서는 무조건 천당에 보내서 편히 지내게 해주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함정에 빠진 책임을 불완전한 인간의 잘못으로 돌려놓고 원죄라는 굴레를 씌워서 구원의 대가(헌금)를 지불하지 않으면 지옥에 보내겠다고 하는 것은 불량배들이 주변의 상인들에게 보호해준다고 돈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아담과 하와에게 덮어씌운 기독교의 원죄설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의사가 어린애 앞에 칼을 슬며시 놓아두고 애가 그 칼을 만져서 상처가 난 것을 치료해주면서 사고가 난 것은 아이의 책임이므로 치료비를 안내면 법으로 강제집행 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참고로, 모범적인 신앙을 보여 주는 구약의 욥기와 지혜의 왕 솔로몬이 작성한 전도서에서 유산이나 낙태를 옹호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기독교 이론대로 해석하면 유산된 아이는 자신의 죄가 없어도 원죄에 의해서 지옥으로 가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최고의 신앙으로 칭찬한 욥과 최고의 지혜자인 솔로몬이 원죄의 교리를 몰랐었던 것인지 아니면 후세의 신학자들이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원죄설을 만든 것인지는 저절로 자명해진다.

기독교는 예수의 착각과 잠적, 바울의 능력과 야심, 요한의 위선과 조작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2천 년 전의 사건이므로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물적인 증거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대로 성경을 해석하면 막히는 곳이 단 한 줄도 없지만 신학자들의 주장대로 해석하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으니까 누구의 주장을 믿을 것인지는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기 바라며 그 판단이 독자들에게 미치는 결과도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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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2019-01-15 11:05:09
구제할 수 없는 자들은
스스로 오만하고 교만함 때문에 구제받지 못한다.
그 원인은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정확한 지적 2019-01-14 14:17:04
배길몽은 자신의 모자람을 굳이 칼럼으로 만방에 알리고 있네요. 지리산에서 하늘 보며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양 겨우 3류 물리학자에게 시비를 걸다 퇴짜를 맞고, 5천만원 드립도 안 먹히니 공개토론 운운하다 실제로 토론이 진행될 뻔하니 바로 내뺐죠. 쯧쯧 가만히만 있어도 이런 망신은 안 당할텐데....

못난자들 2019-01-14 13:30:41
가만히 있으면 남이 모를 수도 있는데
구태여 자신의 행위로
자신의 모자람을 증명하는 존재들.

아줌마 2019-01-14 11:40:38
여기 똥파리 명단 하나 추가요.
똥파리 명단: 크리스쳔, 뉴턴2세, 시시비비, 허위의식, 부나방 <= !!
똥파리: 배길몽

부나방들 2019-01-14 08:15:11
이제 따라쟁이 본 모습이 드러나는군.
남의 말 따라다니다 죽는 부나방같은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