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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남아있는 고구려 승려들의 흔적, 이 정도라니
교토부 기즈시 가미고마에 있는 일본 최고(最古) 고구려절터 '고마데라'
2018년 12월 26일 (수) 12:58:10 이윤옥(오마이뉴스) dasan2580@gmail.com

"고마데라(高麗寺, 고려사는 고구려절을 뜻함. 일본에서 '高麗'를 '고마'라고 발음하면 고구려를 뜻하고, '고우라이'라고 발음하면 '고려'를 뜻함) 는 7세기 초, 아스카시대(飛鳥時代, 592-710)에 창건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의 한 곳입니다. 이 땅은 일찍이 소오라쿠군(相樂郡, 현재 인구 43,654명이 사는 교토부 소속의 군 지역, 고대지명 발음은 사가라카노고오리) 오오고마고(大狛鄕)에 속하여 조선 3국의 하나였던 고구려로부터 건너온 씨족인 고마(한자 고마'狛' 는 고마 '高麗'와 같이 씀)씨족과 연관이 있다고 지적되었으며 문헌자료로 덴표(天平, 729-749) 때인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람은 기즈강(木津川)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남향으로 입지해 있으며 서쪽에 금당(대웅전), 동쪽에 탑을 배치한 법기사식(法起寺式)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탑, 금당, 강당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기와로 쌓은 기단을 외장(外裝)으로 하고 있으며 강당의 양 날개로부터 늘어선 회랑(복도)은 탑과 금당을 둘러싸고 중문으로 연결됩니다. 사역(寺域)은 동서 약 200미터, 남북으로는 약 190미터 규모로 그 주변에는 여러 당탑(堂塔)을 짓던 기와생산지인 고마데라(高麗寺) 기와터(瓦窯)와 다카이데 기와유적지(高井手瓦窯跡)가 존재했습니다. 북방에는 고마데라(高麗寺)를 조성한 씨족으로 생각되는 대규모 집터인 '상박동유적(上狛東遺蹟)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교토부(京都府) 야마시로쵸(山城町)명소, 관광시설

 

'사적 고려사지'의 글쓴이 교토 기즈시에 있는 '사적 고려사지(고려사란 고구려절을 뜻함)'에서 글쓴이
▲ "사적 고려사지"의 글쓴이 교토 기즈시에 있는 "사적 고려사지(고려사란 고구려절을 뜻함)"에서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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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고마역 교토에서 나라행 전철로 53분 거리에 있는 가미고마역(윗 고구려마을이란 뜻)은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다.
▲ 가미고마역 교토에서 나라행 전철로 53분 거리에 있는 가미고마역(윗 고구려마을이란 뜻)은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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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안내판   역에서 나오자 마자 서있는 돌안내판에는 고구려절터 0.7킬로, 야마시로향토사료관 1.5킬로미터라고 써있다. 돌안내판을 끼고 10분 거리에 고구려절터가 있다.
▲ 돌안내판  역에서 나오자 마자 서있는 돌안내판에는 고구려절터 0.7킬로, 야마시로향토사료관 1.5킬로미터라고 써있다. 돌안내판을 끼고 10분 거리에 고구려절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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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봄날과도 같은 화창한 날씨, 교토부 기즈강변(京都府 木津川)에 있는 고마데라(高麗寺趾, 고구려절)터는 시골냄새가 물씬 풍기는 들판 한가운데 있었다. 23일 오전 10시, 고마데라를 가기 위해 교토역을 출발한 나라행(奈良行) 보통열차(가쿠에키, 역마다 서는 열차)를 타고 교토시내를 벗어나자 이내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1시간 쯤 달려 고마데라(高麗寺)로 갈 수 있는 가미고마역(上狛驛)에 내렸지만 역무원이 없는 작은 무인역인데다가 역 앞에는 가게도 없고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마침 가미고마역에서 내린 50대로 보이는 부부가 있어 길을 물었다. 역 앞에 커다란 안내판으로 안내하더니 고마데라(高麗寺)로 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시댁이 있는 가미고마에 다니러 온 야나기하라씨는 상냥하게도 이 일대가 예전에 고구려인들이 살던 곳이며 자신들은 가보지 않았지만 고구려절터가 역전 건너편 들판에 있다고 친절히 알려 주었다. 가미고마역에서 고마데라(高麗寺)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다.
 

고구려마을 가미고마역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나있는 고구려절터로 가지 않고, 편의점을 들르느라 역 앞 마을을 끼고 돈 곳에서 만난 고구려마을(한자로 고려라고 쓴 것은 고구려를 뜻함, 일본발음으로는 '고마노사토')이란 글자가 이곳이 옛 고구려인의 마을이었음을 알려준다.
▲ 고구려마을 가미고마역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나있는 고구려절터로 가지 않고, 편의점을 들르느라 역 앞 마을을 끼고 돈 곳에서 만난 고구려마을(한자로 고려라고 쓴 것은 고구려를 뜻함, 일본발음으로는 "고마노사토")이란 글자가 이곳이 옛 고구려인의 마을이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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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름이 가미고마(上狛)인 이곳은 역이름에서도 고구려인들이 살던 곳임을 알려주는데 일본인들이 고마(狛 = 高麗 = 狛 = 貊 )라고 하는 것은 '고구려'를 뜻한다. 그것을 입증하는 흥미로운 간판을 발견했는데 바로 역에서 가까운 청과물시장 간판에 '고구려 마을(高麗里)이라고 적힌 글이었다. 도매시장인 이곳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모양인데 '고구려 마을(高麗里)'에서 날마다 청과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혹시 고구려의 후예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고마데라(高麗寺)로 향했다.

고마데라(高麗寺)에 도착하니 교토부(京都府) 야마시로쵸(山城町)의 명소라고 커다란 안내판이 서있었다. 그러나 가미고마역(上狛驛)에서 찾아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허허벌판에 남아 있는 절터를 찾아가는 길이라서 물어볼 곳도 없어 도심 속의 건물 찾기처럼 쉽지는 않았다.
 

다나카 씨 고구려절터를 친절히 알려주던 다나카 씨와 글쓴이, 뒤로 난 농로 멀리 작은 창고가 보이고 거기서 50미터 쯤 가는 곳에 고구려절터가 있다.
▲ 다나카 씨 고구려절터를 친절히 알려주던 다나카 씨와 글쓴이, 뒤로 난 농로 멀리 작은 창고가 보이고 거기서 50미터 쯤 가는 곳에 고구려절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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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절터사적지환경정비공사 평성31년(2019)년 3월 31일까지 '고구려절터사적지환경정비공사'를 알리는 선간판도 반갑다.
▲ 고구려절터사적지환경정비공사 평성31년(2019)년 3월 31일까지 "고구려절터사적지환경정비공사"를 알리는 선간판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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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교토의 고마데라(高麗寺, 고구려절)처럼 일본땅 곳곳에 고구려, 신라, 백제와 같은 이름의 절과 신사(神社)와 땅 이름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위로는 아오모리로부터 아래로는 큐슈에 이르는 곳곳에 고대한국 관련 절, 신사, 땅이름을 발견하게 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일 것이다.

"고마데라(高麗寺, 고구려절)는 7세기 초, 아스카시대에 창건된 우리나라(일본) 최고(最古)의 불교사원의 한 곳입니다." -교토부(京都府) 야마시로쵸(山城町)
 

고구려절터의 주춧돌 고구려절의 가람이 있던 자리에는 주춧돌이 남아있다.
▲ 고구려절터의 주춧돌 고구려절의 가람이 있던 자리에는 주춧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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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방터 승방터로 보이는 곳에는 주춧돌들이 1,300여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 승방터 승방터로 보이는 곳에는 주춧돌들이 1,300여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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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땅에 자리한 고대한국 관련 절이 하드웨어라면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것이 승려들일 것이다. 서양식 건물인 명동성당이 들어서고 처음에는 서양인 신부들이 들어와 포교를 한 것처럼 일본땅에 고구려절이 들어섰다는 것은 고구려 승려들이 이곳에서 불법(佛法)을 펼쳤다는 것을 뜻한다. 일본땅에 건너온 고대한국 관련 승려들에 대한 기록을 일본사서인 《니혼쇼키(日本書紀), 720년》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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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스이코 3년(595) 5월 고구려승 혜자가 귀화하여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스승이 되었다.
② 스이코 4년(596) 11월 (고구려승) 혜자가 백제승 혜총과 함께 이해 건립된 호코지(法興寺)에 주석하였다.
③ 스이코 10년(602) 10월 고구려승 운총(雲摠)과 승륭(僧隆)이 귀화하였다.
④ 스이코 18년(610) 4월 고구려승 담징은 5경을 알고 채색 및 지묵(紙墨)과 맷돌을 만들었다. 담징과 함께 법정을 보내왔다.
⑤ 스이코 23년(615) 11월 (고구려승) 혜자가 귀국하였다.
⑥ 스이코 29년(621) 2월 쇼토쿠태자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혜자가 크게 슬퍼하다가 쇼토쿠태자 기일(忌日)에 죽었다.
⑦ 스이코 32년(624) 4월 (백제승) 관륵을 승정(僧正)으로, 고구려 덕적을 승도(僧都)로 삼았다.
⑧ 스이코 33년 (625)조 정월 고구려왕이 승려 혜관을 보냈다. 그를 승정 (僧正)에 임명하였다.
⑨ 덴지(天智) 원년(662) 4월 고구려승 도현(道顯)이 점을 쳐서 고구려의 멸망을 예견하였다.
- 《니혼쇼키(日本書紀)》 권22 스이코(推古) 3년~권27 덴지(天智)원년 기사. 《신편일본고전문학전집(新編日本古典文學全集) 2, 3》 小學館, 1999 


《니혼쇼키(日本書紀)》에 고대한국 승려이름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일본에 불교를 전한 것이 고대한국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불교전래는 백제성왕 때로 《니혼쇼키(日本書紀)》에는 552년(이보다 앞선 기록이 원흥사에서 나와 현재는 538년으로 조정)으로 기록되어 있다. 불교의 전래란 단순한 경전과 불상만을 건네주고 온 것이 아니다. 그걸 입증하는 것이 《니혼쇼키(日本書紀)》 등 수많은 일본의 문헌이다.

예컨대 서기 625년에 건너 간 것으로 기록된 고구려승 혜관만 하더라도 그 기록은 차고 넘친다. 사실 고구려승 혜관의 기록은 국내에는 전무하지만 일본에는 다음과 같이 많은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日本書紀』『元亨釋書』『本朝高僧傳』『續日本紀』,『日本三代實錄』,『日本紀略』,『類聚國史』,『三論師資傳』,『僧鋼補任(興福寺本)』,『僧鋼補任抄出』,『扶桑略記』,『日本高僧傳要文抄』,『東大寺具書』,『內典塵露章』,『三論祖師全集』,『東大寺續要錄』,『三會定日記』,『東大寺圓照行狀』,『東國高僧傳』,『淨土法門源流章』,『寧樂逸文』,『平安逸文』,『鎌倉逸文』,『大日本古典文書』,『大日本史料』,『淨土依憑經律論章疏目錄』,『三論宗章疏』,『東域傳燈目錄』,『諸宗章疏錄』,『大正新修大藏經』,『日本大藏經』,『群書類從』,『續群書類從』,『續續群書類從』 『本朝高僧傳』 등

특히 위 문헌 가운데서 고구려승 혜관에 관한 가장 자세한 책을 뽑는다고 하면 1702년에 일본의 승려 만겐시반이 지은 책을 들 수 있다. 그 책은 30년간 일본 전역을 발로 뛰어 쓴 《本朝高僧傳(본조고승전)》이다. 《本朝高僧傳(본조고승전)》이 전하는 고구려승 혜관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서술돼 있다.

"석혜관(釋慧灌)은 고구려 사람이다. 수나라에 들어가 가상대사 길장(吉藏)에게 삼론종의 종지를 받았다. 스이코왕 33년 정월 초하루 본국(고구려)에서 일본으로 보내와 칙명으로 원흥사(元興寺) 머물러 있게 하였는데 공종(空宗, 곧 삼론종)을 부지런히 강설했다. 이 해 여름에 가물어서 왕이 혜관을 불러 비를 빌게 하였다. 혜관이 푸른 옷을 입고 삼론을 강설하니 비가 크게 와서 왕이 크게 기뻐하고 발탁하여 승정에 임명하였다. 백봉(白鳳) 10년 봄 2월에 와슈 선린사(禪林寺)가 완성되어 혜관을 청해다가 낙성을 경축하는 도사(導師)로 삼았다. 혜관은 또 가와치 시기군에 정상사(井上寺)를 창건하여 삼론종을 널리 폈다. 나이 90에 죽었는데 본조(일본) 삼론종의 시조다."
 

야마시로향토사료관 1 야마시로향토사료관에는 고구려절터에서 나온 기와, 귀면와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야마시로향토사료관 1 야마시로향토사료관에는 고구려절터에서 나온 기와, 귀면와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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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기와 고구려절터에서 나온 고구려 기와 (야마시로향토사료관 제공)
▲ 고구려 기와 고구려절터에서 나온 고구려 기와 (야마시로향토사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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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한 사람의 기록만 봐도 이러하니 당시 일본 불교에 고대 한국승이 남긴 발자취가 어떠한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게 아쉬울 뿐이다. 일본쪽에서는 '고대한국의 승려'에 관한 것이기도 하려니와 명치정부 때 폐불훼석(廃仏毀釈, 명치정부가 불교사원과 승려들이 받고 있던 특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사원, 불경, 불상 등을 훼손한 사건)의 광풍이 불어 불교연구가 뒤쳐졌던 것이고 한국의 입장에서는 고대 일본불교에 관한 관심이 없는 것이 원인인지는 몰라도 고대 일본에서 활약한 한국 승려에 대한 변변한 논문 한 편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할 진대 1300년 전 교토 기즈가와(京都府 木津川)에 건립되어 불법(佛法)을 전수하던 고마데라(高麗寺, 고구려절)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다소 어려움이 따랐다. 그것도 지금은 주춧돌만 나뒹구는 폐허의 절이니 더욱 그렇다. 다행히 절터에서 800미터 쯤 떨진 곳에 교토부립 야마시로향토자료관(京都府立 山城鄕土資料館관)에서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자료과 주사(主査)인 마츠오 후미코(松尾史子) 씨는 친절하게 자료관 안내를 해주고, 고마데라(高麗寺, 고구려절) 절터에서 나온 기와 사진 등을 제공했다.

고구려인에 대한 기록으로 《쇼쿠니혼기(續日本紀), 797년》에 "서기 716년 (靈龜2년) 고구려인 1,799명을 무사시국(관동)에 이주시키고 이곳에 고구려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지금의 관동지방으로 이주하기 전에도 고구려인들은 이곳 교토지역 외에도 여러 곳에서 집단으로 살고 있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현존하는 일본 내 고구려촌(高麗村, 고려촌은 고구려를 뜻함)들이다.
 

고구려절터 2 고구려절터임을 알리는 빗돌, 현재 고구려절터 정비중이라 통행금지 팻말이 서있다.
▲ 고구려절터 2 고구려절터임을 알리는 빗돌, 현재 고구려절터 정비중이라 통행금지 팻말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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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대웅전)터 금당(대웅전)터에서 바라다보면 멀리 앞쪽에 기즈강이 흐른다.
▲ 금당(대웅전)터 금당(대웅전)터에서 바라다보면 멀리 앞쪽에 기즈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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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절터 3 고구려절터를 찾아간 어제(23일)는 매우 화창하여 봄날 같은 분위기였다. 드넓은 고구려절터로 나무가 서 있는 곳에 금당(대웅전), 탑 등이 있었다.
▲ 고구려절터 3 고구려절터를 찾아간 어제(23일)는 매우 화창하여 봄날 같은 분위기였다. 드넓은 고구려절터로 나무가 서 있는 곳에 금당(대웅전), 탑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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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무라 또는 고우라이무라, 고우레이손으로 불리는 현존하는 일본 내의 고구려인 집단 마을은 다음과 같다.
 

고구려인 집단 마을  고구려인 집단 마을
▲ 고구려인 집단 마을  고구려인 집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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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불교는 왕실불교로 고대 한국에서 건너갔던 승려들은 황궁 안에 자리한 절에서 종교인으로 지식인으로, 왕실의 스승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어제 찾아갔던 고마데라(高麗寺, 고구려절) 근처는 일본불교를 중흥시킨 쇼무왕(聖武天皇)이 740년부터 3년간 수도로 쓰던 구닌쿄(恭仁京)가 있던 자리로 고마데라 역시 쇼무왕 시절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때, 활약했던 고대한국의 승려가 누구였는지는 향후 연구가 필요하다.

고구려절터 주변은 사람이 살기 좋은 따스한 곳으로 교토의 젖줄인 기즈강(木津川)이 흘러 예부터 비옥한 농토가 형성된 곳이었으니 수도의 입지로는 더 없이 좋은 자리였다고 본다. 이 이야기는 1300여 년 전의 사실(史實)이지만 지금은 황량한 벌판에 주춧돌만이 나뒹구는 폐사(廢寺) 터로만 남아있으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비록 멸망한 나라지만 고구려인의 후예를 자처하는 글쓴이는 기즈강이 내려다보이는 고구려절터에 서서 고대일본 불교의 한 획을 그었던 고구려스님들을 오래도록 그려보았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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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시간 : 2018-12-26 12:58:10]  
[최종수정시간 : 2018-12-26 12: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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