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해 보내며 다시 ‘포용사회’를 고대합니다
가는 해 보내며 다시 ‘포용사회’를 고대합니다
  • 안봉모 전 대통령 국정기록비서관
  • 승인 2018.12.2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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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안봉모 전 대통령 국정기록비서관
안봉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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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해의 끝자락에서 서있노라니 온갖 소회가 치밀어 오릅니다. 수능시험에서 해방되어 모처럼 또래 친구들과 펜션에서 놀다 잠이든 사이 가스에 중독되어 생사가 엇갈린 자식들의 슬픈 사연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슬픈 죽음의 사연들은 연말까지 이어지네요..

바로 며칠전엔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나홀로 석탄운송 관련 작업 도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채 동료들에게 발견돼 ‘위험한 작업의 외주화’로 인한 차별이 국민적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전동차에 치여 숨진 김모(19)군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작업시간에 내몰린 나머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처지였음이 밝혀져 더더욱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고, 노동사회단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집회를 열면서 범정부차원의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고, 대통령이 직접 대책마련을 지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가하면 조직의 변호를 받지 못하는 죽음은 더더욱 서럽습니다. 지난 11월초 어느 날 새벽 서울의 종로 한복판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불이나 7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화상을 입어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고시원 3층 29개 칸으로 나뉜 방으로 쪼개어 살던 ‘그들’의 생과 사를 가른 경계는 한달 4만원 이었다고 합니다. 월세 32만원인 길가 쪽 방에 살던 ‘그들’은 창문을 통해 탈출하였지만, 월세 28만원인 가운데 먹통방에 살던 ‘그들’은 계단을 찾다 연기와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대부분 일용노동자들인 ‘그들’은 원래 새벽 4시 지나면 일터로 나가는데 사고당일 새벽엔 비가 많이 와서 모처럼 곤히 잠자던 중에 덮친 화염을 벗어나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치다 그렇게 생사(生死)가 엇갈리고 말았습니다.

화재 발생 일주일여 지난 11월14일 오후 학교선배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울음도 항의도 크게 들리지 않고 ‘그들’의 장례식은 조용히 끝났으나 아직 속이 가라않지 않아 불편하지만 오늘은 현장을 찾아볼 생각인데 같이 갈 수 있을지..” 그날 저녁 종로3가역에서 걸어 십분 거리인 청계천변 을지로 쪽에 가까운 고시원현장을 둘러보니 화재로 시커멓게 탄 건물아래 인도바닥에는 시민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애도하며 놓고 간 조화와 함께 ‘스프링클러 설치와 주거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격문이 보였습니다. 불난 고시원건물의 1층 식당 출입문에는 ‘정상영업 합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고, 대형유리창 너머로 식탁에서 술과 음식을 먹는 손님들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비주택 기타 거주지’에 사는 분들이 40만가구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들이 ’비주택‘, 즉 ’집 같지 않은 집‘에 살면서 내는 돈은 한달 20만~30여 만원 정도입니다. 1997년 국제구제금융(IMF)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처리된 가난한 5060세대가 주로 살면서 하루하루 버티던 고시원은 요즘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출현한 2030 청년 빈곤층들의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창문 없는 원룸만큼이나 희망도 미래도 기약할 길 없는 삶을 사는 ‘그들’은 인생의 패자부활전도, 계층사다리도 없이 하루살이 일감 찾아 새벽시장을 헤매며 생존에 급급합니다.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20%와 하위20%간의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져서 소득불균형이 한층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기준 중 장년층 행정통계 결과는 우리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만 40~64세 중장년층 10명중 3명은 연 평균 소득이 1000만원~3000만원 미만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개인별 소득 구간은 1천만원 미만이 30.2%, 1천만원 이상~3천만원 미만이 33.5%로 우리 국민 2/3 정도가 월소득 250만원 미만의 소위 서민층인 셈입니다. 그나마도 가족과 함꼐 집에 사는 생활을 하는 입장과 달리 원룸에서 하루하루 벌이에 의존하는 분들의 삶은 곤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먹먹해진 세모의 심사를 달랠 겸 어둠이 내려 네온사인이 켜진 청계천변 종로의 화재현장에서 좀 떨어진 종각역부근 소줏집으로 가서 음복하던 중 화재현장을 함께 찾은 선배가 독백처럼 말하였습니다.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 포용사회가 왜 필요한지 생생하게 드러냈지만 국민들의 관심에서는 저 멀리 사라져버린 듯하다.” 불난 고시원에서 가까운 조계사나 명동성당에서 누군가 찾아와 서러운 넋들의 가는 길을 달래주는 염불이나 기도를 올려주었더라면... 누가 와서 진혼구음이라도 구성지게 울어주었더라면... 서럽게 살다가는 저 외로운 넋들을 달래줄 문화예술인들의 한바탕 해원진혼(解鎭魂) 굿판이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문화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이 어떠해야하는지, 종교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해봅니다.

비슷한 시기에 언론을 장식한 불쾌한 뉴스들이 떠오릅니다. 얼마 전 국회청문회를 거쳐 임용된 대법관과 헌법재판과 5명이 위장전입을 22차례나 하였고, 대법관 헌법재판관 15명중 11명이 위장전입 또는 다운계약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더욱 어이없는 건 이들 가운데는 자신은 위장전입 하였으면서도 위장전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전력이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기도 합니다. 광고수입 감소로 인한 경영난을 호소하며 방송중간광고를 허용해달라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과반수 이상이 억대연봉을 받는 간부급이라고 하는 뉴스도 실리고 있습니다. 그저께 새해 예산안을 심의하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 세비를 은근슬쩍 인상하여 또 비난을 사고 있습니다. 불과 2년 전엔 정치개혁 하겠노라며 세비 30%삭감 등 의원의 기득권포기를 앞 다투다시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당사자들이 국민 앞에 아무런 해명도 없이 되레 세비를 인상하는 배짱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말길이 끊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해주는 의원들한테 고맙다고 인사라도 드려야 할까요. 이런 식이라면 대통령이 천명한 ‘포용사회’ 청사진은 상처만 남기고 하공으로 사라진 화재현장의 화염처럼 이미 흐려져 가는 정책이미지로 퇴색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화재현장의 그을음 냄새와 함께 코를 건드리는 종로통 음식점들의 고기 굽는 냄새를 맡노라니 문득 이만주 시인의 <삼겹살 애가哀歌>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 돈에 주린 이들이/돈삼겹 구우며 피워 내는/흰 연기 사이사이/돈 벌러 한국에 와/돈사에서 삶을 다한/이방 청년의 몸도/가느다란 연기 되어/함께 피어올랐다.’

2017년5월 어느날 네팔에서 한국에 돈 벌러 와 사람 키 보다 깊은 돼지우리 똥통을 치우다 빠진 청년과 이를 구하려던 청년-20대 두 청년이 빠져죽은 사연을 접하고 명복울 빌며 애도한 시입니다. 내국인과 외국인 가릴 것 없이, 곤궁한 삶을 살고 있는 동시대의 ‘그들’을 세모의 찬바람 속에 떠올리면서 새해부터는 외롭고 가난한 이웃들을 좀 더 배려하고 포용하는 따스한 기운이 우리사회 온누리에 가득해지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 안봉모 전 대통령 국정기록비서관·부산매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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