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예언한 종말은 지나갔다
예수가 예언한 종말은 지나갔다
  • 배길몽
  • 승인 2018.11.14 09:51
  •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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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배길몽의 ‘지피지기’ 12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우주를 섭리한다고 믿고 과학자들은 에너지가 우주를 작동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하나님과 에너지양자는 똑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질량이 없고, 둘째, 형체가 없으며, 셋째, 우주를 운행한다. 그런데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힘과 가속도의 공식(f=ma)을 적용해보면 질량이 없는 존재에 아주 작은 힘을 가해도 무한대의 가속도가 발생해서 우주 밖으로 나가버려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나 에너지양자처럼 질량을 수반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는 우주의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참고로 말하면, 인간의 의식은 독립적인 질량이 없지만 뇌신경이라는 실체적인 존재를 수반하므로 다른 곳으로 밀려나지 않고 일정한 장소에 머무를 수 있다. 의식은 뇌신경이라는 실체적인 존재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의식을 포함해서 정신, 자아, 영혼 등에 대해서는 추후에 ‘나는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함께 설명하겠다.

그리고 질량이 없는 존재가 반대로 주변에 어떤 영향을 주려면 상대에게 힘을 가해야 하는데 힘을 가하는 순간에 오히려 자신이 밀려나 버리므로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다. 어떤 존재가 상대와 힘을 주고받으려면 서로 저항해야 가능하고 저항은 관성에서 나오고 관성은 질량으로부터 나오므로 질량이 없는 존재는 힘을 주고받을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질량을 수반하지 않는 존재는 자신의 주변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어서 설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존재 가치가 전혀 없으므로 그들의 존재여부를 탐구하는 것보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연법칙을 공부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자연이 훼손되면서 지구가 점차 병들어가고 있으므로 지구의 종말(폭발)이 오기 전에 먼저 인간의 종말이 올 수 있다. 그런데 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은 인간의 종말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이 아니다. 지구의 인구수를 줄이지 않는 한 자연파괴는 자연회복을 앞지르게 되므로 종말을 막을 수 없다. 모든 동식물은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을 따르며 스스로 개체수도 조절하는데 인간들만 근시안적인 경제정책을 이유로 내세우며 인구증가를 장려하고 있다. 결국 무분별한 개체수의 증가가 환경을 파괴하고 인류를 멸망하게 할 것이다. 인간은 지구라는 생명체(숙주)에 기생하는 더부살이인데 인간의 숫자가 많아지고 활동이 왕성할수록 지구(숙주)는 더욱 병들어 간다. 환경파괴에 의한 종말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이만 줄이고 여기서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종교적인 종말과 구원에 대해서 논해보겠다.

기독교 경전의 일부분인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모두 합해서 부르는 통칭)에 있는 종말에 관한 계시(이하 요한계시록에 대비해서 공관계시록이라고 칭함)에는 종말의 과정이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돼있다. 기독교에서는 요한계시록에 근거해서 종말이 불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하지만 공관계시록에는 불이 아니라 물로 이루어진다고 돼있고 그 대피방법 및 주의사항까지 세밀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마태복음 24:15~21, 마가복음 13:14~18, 누가복음 17:31, 21:21). 예수가 직접 물에 의한 종말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인자(예수)가 노아의 때와 같이 온다고(재림한다고) 말하면서 물의 심판을 암시했고(마태복음 24:37, 누가복음 17:26) 성경에서 제시한 종말에 대한 대피방법을 살펴보면 초등학생도 그것이 물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공관계시록이 제시하는 종말에 대한 세 가지 대피법(산, 지붕, 밭으로 피난하라는 것)의 공통점은 ‘높은 곳으로 피하거나 높은 곳에서 내려오지 마라’는 것인데 그것은 절대로 불의 종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불의 종말이라면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 즉 강이나 바다로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우기겠지만 이 대피법의 앞뒤의 내용에는 전혀 비유가 섞여있지 않은 매우 사실적인 표현들로 돼있으며 앞뒤 내용이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피방법에 대한 묘사는 비유적인 표현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공관복음은 비유로 말할 때는 항상 비유라고 명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참고하기 바라며 이어지는 설명들을 보면 명확하게 물의 종말임을 알 수 있다.

종말의 세부적인 방법들을 살펴보면 매우 유치한 내용으로 돼있다. 종말의 집행자인 홍수(큰물)는 적군(로마군)과 아군(유태인)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죽이기 때문에 유태인들에게만 미리 홍수의 발생시기와 주의 사항을 가르쳐주어서 대피시킨다는 것이다. 내용이 조금 더 황당한 것은, 이 물난리가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인데(마태복음 24:20), 그 이유는 겨울에 홍수가 나면 피난민들이 추운 산에서 홍수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면 추위와 굶주림에 죽을 가능성이 높고 또 안식일에 홍수가 일어나면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하다가 홍수가 오는 것도 모르고 단체로 몰살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말은 거룩해야할 안식일에도 일어날 수 있고 예배하고 있는 의인(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들도 무차별로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예수의 권능(사람의 권능)으로 종말(자연 재해)의 시기와 방법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종말이 오면 임신한 여인과 젖먹이는 여인은 화를 입는다는 구절이 있는데(마태복음 24:19, 누가복음 21:23) 필자가 처음 이 구절을 읽을 때에는 성범죄에 대한 경고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뒤 구절과 연계해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임신하거나 젖먹이는 여자는 아이 때문에 몸이 둔해서 홍수가 닥쳐도 재빨리 피난하지 못하므로 화를 입는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경고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임박한 종말에 대비해서 공관계시록의 경고대로 처녀들에게 결혼을 하지 말 것을 권하고(고린도전서 7:26) 또 남편들도 때가 이르렀으므로 부부관계를 하지마라고 하면서(고린도전서 7:29) 자신도 결혼하지 않고 기다린다. 사도 바울도 종말(로마의 멸망과 예수의 재림 및 이스라엘의 독립)이 수년 내에 온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에 대해서는 추후에 상세히 언급하겠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가 재림하면 자신이 12사도를 제치고 권력의 2인자가 되려고 자신의 조직(초대 교회)을 만들면서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종말이 오면(큰 홍수가 오면) 물에 빠져서 죽은 적군들의 시체를 독수리들이 먹어서 청소하고(마태복음 24:28, 누가복음 17:37) 예수가 구름을 타고 재림해서 남은 자(유태인 중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깨어있는 자(예수의 추종자)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마태복음 24:30~31, 누가복음 21:36)이 예수의 예언(대권 시나리오)이었다. 종말에서 행해지는 구원은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영혼구원이 아니고 육체구원(생명구원)이므로 유태인이면 악인이나 선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 구해주지만 그 중에서 깨어있는 자(예수의 추종자)만 천국건설에 참여한다는(높은 직위를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가 대권선언을 하면서 정치자금을 많이 걷기 위해서 미리 매관매직을 한 것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가 유대 12지파의 수장자리를 12사도에게 매도했고 그래서 12사도가 충성을 한 것이며 예수의 매관매직에 대해서는 추후에 상세히 설명하겠다. 사도의 숫자를 12로 맞춘 이유도 12지파의 수장 자리를 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공관계시록에는 종말이 끝난 직후에 예수가 구름을 타고 온 천하가 모두 알도록(번개처럼) 공개적으로 온다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AD 70년에 예수가 예언한 종말의 징표처럼(마태복음 24:15)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을 점령해서(로마 군대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점령해서; 누가복음 21:20) 이스라엘을 초토화 시키는(마태복음 24:2, 누가복음 21:24) 종말이 왔고 유태인의 디아스포라가 발생했는데도 예수는 재림하지 못했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했다.

그리고 공관계시록의 예언처럼 로마가 멸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이스라엘이 멸망했으므로 분노한 예수의 추종자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도요한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예수를 이스라엘의 메시아에서 지구의 메시아로 둔갑시키고 재림의 시기도 연기하는 등 공관복음과 정 반대로 복음과 계시록을 창작했다. 요한계시록은 100% 창작이고 요한복음은 90%가 조작이며 공관복음은 70%가 과장이다. 공관복음에는 종말의 지역이 유대로 국한 돼있으며(마태복음 24:16, 마가복음 13:14, 누가복음 21:21; 종말의 목적이 이스라엘을 침공한 로마군을 섬멸시키기 위한 것이며 계시록처럼 온 지구를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종말의 방법도 홍수에 의한 것인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지구 전체에 불의 심판이 있다는 내용으로 바뀌면서 공관계시록과 정반대로 조작된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이 왜 거짓인지 추후에 상세하게 알려주겠지만 간략하게 핵심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의 핵심은 예수의 신격화(독생자)와 보혜사(예수의 대리인)에 대한 예언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원래 20장에서 끝났는데 21장을 추가해서 베드로는 죽지만 요한 자신은 살아남아서 보혜사가 된다는 내용을 첨가하고 첨가된 내용에 맞추어서 자신이 계시록도 만든다. 기독교인들이 보혜사를 성령이라고 착각하는데 성령은 창세기에서 여호와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요한복음 20: 22에서 보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입김으로 성령을 이미 불어넣어 주었으므로 예수가 망명한 다음에 자신의 대리인으로 보내줄 보혜사는 성령이 전혀 아니며 요한 자신을 말한다. 그리고 요한복음에 나오는 ‘보혜사가 하게 될 일’을 요한 자신이 모두 한 것을 보면 요한이 바로 보혜사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의 부활은 예언되지도 않았고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것과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기적들도 모두 조작됐다는 것도 차후에 상세히 설명하겠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cet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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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언론이 2018-11-19 19:32:41
불교 이야기만 수만 번을 실었으나 불교는 발전하지 않았다. 불교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이 나면 치료만 하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왜 병이 발생했는지 탐구해서 근원적인 대책을 세워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적폐청산만 열심히 하면 뭐하나? 다시 적폐가 발생하게 될 것을...

현대물리학이 2018-11-19 19:23:15
엉망이어서 창조과학이 개판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지요. 현대물리학이 바로서면 창조과학은 사라집니다.

소 돼지는 2018-11-19 19:14:16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환생한 것이므로 잡아 먹혀서 죄 값을 치르는 거니까 괜찮아요. 다시 말해서 인간이 짐승을 잡아 먹는 것은 사형수를 사형에 처하는 것과 같아요.

종교를 해부해서 2018-11-19 19:08:30
진실을 밝히고 모두 정신 차리자는 거지요.

지구를 버리고 2018-11-19 18:57:56
혼자만 탈출(해탈)하겠다는 소승은 잘하는 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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