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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주 분쟁? 범계로 신도 신뢰 상실이 원인!”
[불광사 좌담회-上] 불광사 사태의 본질은?
“문도회 탈퇴 공분, 횡령 등 의혹 해소되지 않아”
2018년 10월 24일 (수) 16:36:04 서현욱 기자 mytrea70@gmail.com

불광사 사태가 ‘창건주 권한 승계’로 일단락됐다. 불광사 사태는 사찰 신도들이 조직적으로 비위 의혹이 있는 출가자를 더 이상 스승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찰운영에서 손을 떼게 만든 사찰개혁이라는 점에서 한국불교사에서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불광사 사태를 신도들이 물리력을 동원해 사찰을 봉쇄하고 창건주와 종무원을 절에 들어올 수 없도록 하고 스님을 몰아낸 사건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불광사 신도들은 왜 창건주 권한을 가진 지홍 스님을 ‘탄핵’했을까. 일부 세력이 말하는 것처럼 불광사 사태의 본질이 ‘창건주 권한’ 문제에 있었을까. 신도에 의한 신도들을 위한 사찰 개혁 운동은 불광사가 처음은 아니다. 용주사 신도비대위는 물론 길상사 거사림회 등 사찰신도들에 의한 개혁운동은 이전에도 있었다. 다른 개혁운동과 차이는 불광사 사태는 신도 구성원 전체의 의견이 반영된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불교닷컴>은 불광사 사태의 본질과 뒷이야기, 향후 과제 등을 짚어 보는 좌담회를 가졌다. 지난 15일 열린 좌담회에는 불광사 명등 대표인 조대연 거사(법명 도문), 마하보디 합창단원인 김선학 보살(법명 원묘행), 권정호 변호사(법명 원택)와 김영국 불교개혁행동 상임공동대표, 김경호 지지협동조합 이사장이 참석했다. 좌담회는 상/중/하로 나눠 게재한다.

   
▲ 불광사 사태가 일단락됐다. 불광사 사태의 본질과 과제 등에 <불교닷컴>이 좌담회를 열었다. 불광법회 신도인 권정호, 조대연, 김순학 신도.(왼쪽)

Q. 불광사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일부에서는 불광사 사태를 ‘창건주 권한 승계 갈등’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조대연-신도들에게 스님이 계율을 지키는 모습이 중요했다. 종무소 여직원과의 문자메시지로 볼 때 (두 사람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신도들에게는 ‘회주’라는 큰스님이 계율을 지키지 않았다는 실망감이 컸다. 또 (신도들의 항의와 해명 요구에) 대응하는 자세가 스님의 자세가 아니었다. 명등 회의에서 참회나 사실관계를 해명하기보다 오히려 신도들을 공격해 분노를 일으켰다. 또 하나는 주지 스님(본공 스님)이 종무소 직원들의 압력에 나가는 상황에 신도들의 분노가 커졌다. 사찰 운영의 책임자인 주지를 회주의 지시를 받은 직원들이 압력을 넣어 쫓아내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지홍 스님은 해명의 기회를 분노와 실망감을 키웠다. 신도의 존경과 신뢰가 없이 회주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신도들은 지홍 스님에게 삼배조차 할 수 없었고,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었다. 일부에서 지홍 스님을 비호하려하지만 진실이 사라지거나 왜곡될 수 없다. 일부 교계언론이 비호한다고 해서 왜곡될 수 없다. 지홍 스님 관련 비위와 의혹은 신도들에 의해 추적되다가 ‘불광사 정상화’를 위해 중단됐을 뿐이다. 횡령 의혹 등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약속 불이행, 신뢰 잃은 지홍 스님 부도덕성이 문제”

김선학-불광사 사태가 일부에서 지홍 스님의 창건주 권한 승계 문제로 인한 다툼처럼 비춰진 것 같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신뢰를 잃은, 부도덕함 때문이었다. 창건주 문제만 해도 불광사 창건주는 문도회에서 10년 씩 문도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지홍 스님이 창건주를 한 지 10년 쯤 됐을 때 이미 그 말이 나왔다. 지홍 스님 쪽이 만불전이 완성이 안 됐으니 3년만 기회를 달라고 했다. 당시 신도들은 ‘중창불사에 애썼는데 만불전 불사를 마무리하고 가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더니, 평생 창건주를 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합의 과정에서도 (특정 부분에) ‘평생’하겠다는 문구가 포함됐었다. 최종 합의문에는 없지만, 논의 과정에서 문구를 발견해 삭제했다. 자칫 싸인하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홍 스님은 계를 지키지 않았다. 약속을 지켰어야 한다.

권정호-‘살도음망(殺盜淫妄)’의 계율 중 살(殺) 빼고 다 범한 것이다. 계율을 범한 스님을 신도들이 쫓아낸 것으로만 보이지만, 14년 동안 있던 지홍 스님의 독단과 전횡이 있었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랄까, 주지 스님이 해야 할 권한까지 감 놔라 밤 놔라 하며 본인이 좌지우지하고, 신도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종무행정에 수완이 있는지 모르지만, 법문은 울림이 없고 신도들의 불만이 쌓여오던 차에 계기를 만나 표출된 것이다. 불광사는 광덕 스님이 불광법회를 창립한 이후로 사찰운영에 불광법회가 참여해 왔다. 스님들의 출가공동체와 신도들의 불광법회가 대등하다는, 불광사의 주인은 신도들이라는 주인의식이 남달랐다. 종무원과 부적절한 관계, 유치원 횡령 등이 드러나면서 신도들의 자존심이 유린됐다는 생각이 강했다. 불광사 사태는 신도들이 그런 것을 되찾기 위한 성격이 있었다.

   
▲ 불광법회 명등 조대연 거사(법명 도문).

“불광사 사유화 의도, 사찰운영 투명하지 않아”

조대연-광덕 스님의 정신이 있지만 불광사도 여느 절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조계종 스님들의 사찰운영의 스타일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10년간 창건주를 하면 법을 떠나 도의적으로 내놓아야 하는데, 평생 차지하려고 사유화를 계획한 게 아닌가 싶다. 본인이 승계하지 않으면 창건주 권한을 넘길 수 없다는 법적인 부분을 악용한 게 아닌가 싶다. 광덕문도회인 지홍 스님이 문중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 불광사 종무소 직원들에게 매월 1억 1,000만 원정도의 급여가 나간다. 지홍 스님은 불광사 운영을 독단적이고 완전한 사유화를 위해 종무소를 친위대로 강화한 것 같다. 종무소 직원들은 신도들에게 서비스하는 사람이지 않고 지홍 스님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한 것 같다. 직원들이 신도는 물론 주지 스님이나 총무 스님의 말도 듣지 않았다. 불광법회 회장단이 감사 기능이 있지만 감사를 해 보지 못했다. 구역법회 책임자인 명등도 필요성에 회의가 들 정도였다. 명등은 구법회 회원들에게 사찰운영 실태를 설명해 줘야 하는데 아는 게 없었다. 큰 타이틀로 비용을 얼마나 썼는지 만 듣는다. 회장단이나 감사 누구도 회계 내역을 알고 명등과 논의할 수 없었다. 불광사 역시 다른 사찰과 다를 게 없었다. 지홍 스님이 회주로 있던 14년 동안 다른 사찰 보다 더 폐쇄적이었다.

Q. 지홍 스님 이전에도 회계 감사가 없었나. 사중 운영은 어땠나.

김선학-지정 스님 때인데 외부감사도 했다. 신문에도 크게 났었다. 지홍 스님이 들어오면서 외부감사가 없어졌다. 2011년도 명등으로 소임 볼 때 중창불사가 시작됐다. 우리 구가 100명 정도 됐다. 구법회에서 누가 보시를 했는지 알아야 권선을 할 수 있는데, 종무소에 가서 보시명단을 뽑아달라니 없다고 하더라. 그때는 전산화가 안 돼서 안 된다고 해서 장부라도 있을 것 아니냐 했더니 그것도 없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주먹구구식으로 했다는 의심이 들었다. 돈이 어디로 새는 것은 아닌지 알고 싶었지만, 마침 집안에 크게 사고가 나 그런 걸 확인할 마음을 못 내고 보시만 계속했다. 중창불사도 그렇고, 만불도 1기당 108만 원씩 가족 수대로 하고 친척에 손주 이름으로 봉안하며 애정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불사를 하고도 빚은 너무 많이 남았다.

조대연-그때는 신도들 목소리가 컸다. 잘못하면 여지없이 책임을 져야 했다. 점점 사유화를 위해 편법으로 가다 보니 신도의 권한은 없어졌고, 사찰운영은 보시 위주로 전환됐다. 중창불사나 만불전 불사 등에 명등이 역할을 했다. 지홍 스님은 명등 회의 때마다 보시금을 내도록 독려했고, 명등끼리 경쟁을 붙였다. 어느 구가 만불 봉안을 많이 추진했다면 특별히 칭찬도 해주고 박수도 쳐주고 그랬다. 그래서 본래 불광법회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신도들 의견이 많았다.

김경호-불광사 모범적 선도적 사찰로 알려졌지만, 강남 대형교회의 외형성장주의가 오버랩 된다.

조대연-불광사 창건주 광덕 스님은 상당히 존경받는 큰 스님이다. 이분은 도심포교, 생활불교를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으로 하며 큰 가르침을 주신 분이다. 광덕 스님 때부터 교육을 받아 신도들 수준이 상당히 높다. 또 광덕 스님의 가르침을 잇겠다는 자부시도 높다. 우리 불교는 기복 불교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지만, 불광사는 기복 불교로 운영되지 않았다. 기복 불교는 이기주의다. 오직 나만 잘되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 불교는 거기에 안주하지만 불광사는 다르다. 신도들이 많이 깨어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지홍 스님이 문제가 많았어도 중창불사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부채도 있고 만불전 조성도 되고 있어 당시 분위기는 다른 마찰이 일어나기 어려웠다.

   
▲ 김선학 보살(불광사 전 명등, 마하보디합창단원 법명 원묘행).

“신도 숙원인 중창불사, 불사위원 불광사 떠나기도”

Q. 불광사는 처음부터 중창불사 규모를 이 정도로 상정하고 갔나.(김경호)

조대연-아니다. 중창불사 과정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우리 절은 RC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사찰은 목조건축이 많지만 불광사는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이다. 보통 콘크리트 건물의 건축비는 보통 평당 400만 원 정도를 잡는다. 건축비는 지하 터파기 흙막이나 어떤 공법으로 할 것인지 단청 등 공법이 나오면 건축비가 산정된다. 중창불사 당시 RC콘크리트 구조물은 지하실 빼고 아파트는 350~400만 원 정도이다. 지하실 포함해도 350~400이면 상당히 좋게 지을 수 있다. 그런데 불광사는 실제 750만 원 정도가 들어갔다. 계속 설계 변경되면서 당초 계획보다 많이 늘어났다. 불광사에는 건축전문가가 포함된 불사위원회가 있었다. 당시 건축비로 이렇게 많이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 마찰이 심했다. 불사위원이었던 이 모 씨는 건축비 때문에 아예 불광사를 떠나 버렸다.

권정호-중창불사 과정에서 지홍 스님은 합리적으로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자신이 지목한 설계사와 해야 한다고 우기기도 했다. 정도껏 차이가 나야지 배를 비싼 설계사를 끌고 갔다. 신도들의 숙원인 중창불사를 빌미로, 다른 의도가 강하게 내재돼 있지 않았나 싶었다.

김선학-간혹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단체장을 했거나, 지홍 스님과 가까이 지낸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자기들이 나서려 해도 확실한 증거가 나타났고, 많은 사람 앞에서 어필하지 못했다. 뒤에서만 움직였지만 많지 않았다. 지홍 스님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구법회가 많았다.

조대연-대부분 신도들이 지홍 스님을 반대했다. 지홍 스님을 지지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작아졌다.

“횡령 수사, 거리투쟁 이어지고 포교원장 유지 위해 합의”

   
▲ 불광사 관련 좌담회에서 발언하는 김경호 지지협동조합 이사장, 김영국 불교개혁행동 상임공동대표(오른쪽부터).

Q. 주제를 바꿔보자. 지홍 스님이 창건주 권한에 집착했는데, 합의한 결정적 계기가 뭐라고 생각하나.

권정호-제가 보기에 세 가지 정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처음 고발하기 전에 법회장에게 지홍 스님 측이 변호사를 보내서 ‘제발 고발은 하지 마라’고 했다. 지홍 스님은 처음에는 “모른다, 예전에도 받았고, 다 상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유치원 원장도 “기억 안 난다”, “당연히 드려야 할 돈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증거를 가지고 수사망이 조여 오니까 유치원 원장이 태도를 바꿨다. “상근 한 것은 아니고 창건주로 공이 많다고 생각해 드렸다”고 진술을 바꿨다. 유치원 원장은 자기 살길 찾는 듯이 변호사를 별도로 선임하고 진술을 바꿨다. 제 생각에는 지홍 스님이 길어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신도들이 2차 고발에 들어갔다. 1차 보다 금액이 더 크고 물증도 뚜렷했다. 구속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새로 총무원장 선거가 돌입되고 포교원장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는 부분이다. 지홍 포교원장을 거리 두려는 것도 감지되고, 누가 총무원장이 되든지 포교원장 자리 유지하기 위해서 불광사 문제를 어떻게든 봉합할 필요가 있었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지홍 스님은 불광사가 ‘오래 가겠나’. ‘몇 달하다가 신도들끼리 다투고 끝나겠지’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8, 9월 두 달간 24시간 지킴이 활동이 이어지고, 도심에 몇 백 명씩 와서 ‘지홍퇴진 구속 멸빈’을 외치니까 다시 ‘불광사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해겠나’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경호-진단이 정확하다고 본다. 승려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사회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이다. 종단법에 의한 처벌은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편이어서 절대적으로 봐준다. 사회법으로 기소되는 것은 자기가 해결할 길이 없다. 죄상이 뚜렷하다면. 선거 국면에서 포교원장 자리도 거래 품목으로 나왔다. 이번 당선자 측에서도 그랬다. 자기는 끈 떨어지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정치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장 선거에 올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던 상황인데,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고는 그 게임 판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딜레마가 있었을 것이다.

   
▲ 불광사 사태 관련 좌담회.

Q. 지홍 스님은 처음부터 창건주 권한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다거나 신도들 저항이 내려놓을 수 없는 분위기를 형성해 몽니부린 게 아니냐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경호-그런 사람들이 꽤 된다.

권정호-전혀 아니다. 신도들을 더 화나게 하는 이야기다.

조대연-불광사는 사유화가 됐다. 불광사 같은 조건의 절이 우리나라에 몇 개나 되나. 기업으로 보면 연 매출이 60억~70억이 되는 절이다. 사회적으로 몇 백억 이상 되는 기업일 것이다. 불광사를 사유화해 돈을 빼간 것 때문에 2차 고발도 이루어졌다. 지홍 스님은 불광사를 가지고 있어서 포교원장이 된 것 아닌가. 상징성이 큰 포교사찰인 불광사의 창건주라는 좋은 조건이 있었다.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볼 때 쉽게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부 반대도 있었지만 우리(명등)가 고발장을 먼저 접수했다. 그것이 아니면 절대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불광사 창건주 자리를 내놓는 명분을 거슬렀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김선학-그런 인식은 책임을 사찰과 신도들에게 전가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김경호-회주 10년 임기가 다가 왔을 때 교계에 돈 이야기가 있다. ‘불광사 회주가 곧 끝나는 데 그 이후는 무엇을 할 것이냐’라고 했을 때 다들 ‘중흥사로’ 옮긴다고 보았다. 그러기 위해 불광사 자금을 중흥사로 돌려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중창불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종무원도 월급은 불광사서 받고 일은 중흥사에서 하게하고. 이런 일들이 있었다. 불광사 불사를 핑계로 회주 임기를 몇 년 연장했다. 그래서 ‘불광사도 먹고 중흥사도 먹겠네’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권정호-그 점이 2차 고발 주요 내용이다.

#[불광사 좌담회-中]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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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시간 : 2018-10-24 16:36:04]  
[최종수정시간 : 2018-10-25 12: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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