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사 칠보사 불상 보물 지정 예고
불암사 칠보사 불상 보물 지정 예고
  • 조현성 기자
  • 승인 2018.08.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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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조선창화시권’ ‘비해당 소상팔경시첩’은 국보 승격
▲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등 4건을 보물 지정 예고하고, ‘봉사조선창화사권’과 ‘비해당 소상팔경시첩’은 국보로 승격한다고 23일 발표했다.

보물 지정이 예고된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7세기 전반기 활동한 조각승 무염 등 모두 5명의 조각승이 조성에 참여해 1649년(인조 27년)에 완성한 불상이다.

불상은 높이 67cm의 단아한 규모에 머리에는 연꽃과 불꽃문양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썼고, 가사는 두벌 겹쳐 입은(이중착의법) 모습에 상반신을 앞으로 구부렸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고 신체의 자연스러운 양감이 돋보인다. 얼굴은 이마가 넓고 턱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져 역삼각형이나, 날렵하고 갸름하게 처리한 턱선, 높게 돌출된 코, 자비로운 인상에 실재감 있는 이목구비의 표현 등 1650년대를 전후로 아담하고 현실적인 조형미를 추구한 무염이 참여한 작품의 특징을 보인다.

17세기 대표 조각승 무염이 참여한 작품이자 정확한 제작 시기와 봉안처를 알 수 있고, 보존상태도 비교적 양호하여 17세기 중엽 불교 조각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1622년(광해군 14년) 광해군의 부인인 문성군부인 유씨(장렬왕후)가 왕족들과 친정 부모의 천도를 목적으로 발원해 왕실 원찰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한 11존 불상 중 하나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17세기 대표적 조각승 현진과 수연, 응원, 인균 등 당대 유명 조각승들이 합작해 만든 작품으로, 조각승들의 제작 특징이 복합적으로 반영돼 있다.

불상은 머리와 상반신을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에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다리 위에 둔 항마촉지인을 한 모습이다. 상반신은 허리가 짧고 어깨가 넓지만 하반신은 다리가 높고, 턱을 수평으로 깎은 네모진 얼굴에 양 볼이 볼록하게 양감이 살아 있으며, 작고 가는 눈에 오뚝한 코, 미소가 있는 작은 입 등 단정하고 인자해 보이는 인상 등은 현진과 수연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 불상은 기법이 화려하지 않고 비교적 간결하지만 중후한 기품과 위엄이 느껴진다. 17세기 전반 불상 중에서 수준 높은 작품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가 월등히 뛰어난 작품이다.  

‘이익태 지영록’ 은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익태(1633~1704)가 1694년(숙종 20년)년 7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래 1696년(숙종 22년) 9월까지 재임기간 중의 업무와 행적, 제주 관련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제주도의 문화와 지명 등의 연원을 이해하는 데에 실질적이고 중요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외국인의 표류 상황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시대 표류민 정책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1949년 경주 황오동 52호분에서 출토된 귀걸이 한 쌍으로, 외형상 주고리, 중간장식, 마감장식의 삼단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신라 시대 5~6세기에 해당하는 유물이다.

이 귀걸이는 신라 시대 경주에서 만든 전형적인 귀걸이 형태라는 점, 제작기법과 조형성이 우수하고 펜촉형 장식물의 창의적인 형태와 입체감이 돋보이는 점 등에서 신라 고분 금속공예품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며, 신라 장신구의 발전과 변화를 고찰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455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로 명칭을 변경했다.

국보로 승격되는‘봉사조선창화시권’(보물 제1404호)은 1450년(세종 32년)에 명나라 경제(재위 1450∼1457)의 조서를 갖고 조선에 사신으로 온 한림원시강 예겸(1415∼1479)이 원접사로 나온 정인지(1396~1478), 신숙주(1417~1475), 성삼문(1418~1456) 등과 서로 주고받은 글 37편이 수록된 총길이 16m에 달하는 두루마리이다.

오늘날 친필이 거의 전하지 않는 정인지‧성삼문‧신숙주가 쓴 글씨를 전서‧예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확인할 수 있고 이들의 기준작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서예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 명나라 사신과 조선의 관료가 문학 수준을 겨루며 양국 간의 외교를 수행한 일면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한‧중 외교사에 있어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같이 국보로 승격되는 ‘비해당 소상팔경시첩’(보물 제1405호)은 1442년(세종 24)에 비해당 안평대군 이용(세종의 셋째아들, 1418~1453)이 주도해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주제로 당대 문인 21명의 글을 모아놓은 시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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