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운 스님이 교권자주 및 혁신위원회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더불어 종정자문위원장 및 위원직도 사임했다. 밀운 스님은 8일 팔공총림 동화사에 종정자문위원장 사퇴서를 발송했다. 원로의장 퇴임 후 맡아 온 모든 공직을 사실상 사임한 것이다.
밀운 스님이 교권자주 및 혁신위원장직 등 공직에서 물러난 것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통해 교권자주 및 혁신위원회 경과보고와 설정 총무원장 퇴진에 대한 의견을 밝힌 뜻을 사부대중이 곡해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설정 원장 퇴로를 부드럽게 열어 주려했는데"
밀운 스님은 8일 아침 <불교닷컴>과 통화에서 “설정 총무원장 퇴로를 여법하게 열어주려 했는데, 아쉽게 됐다”며 “특별담화로 자신의 용퇴를 밝히겠다고 약속했는데,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면서 일이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교권자주 및 혁신위원장 등 사퇴에 “사부대중이 기자회견 한 후 내가 설정 총무원장이 퇴진하지 못하도록 돕는다고 비판을 하는데, 내 뜻은 그게 아니다”며 “종단의 수장인 총무원장이 종법 절차에 의해 선출됐다면 퇴진 역시 종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헌종법의 절차를 밟지 않고 내쫓는 것은 자칫 교권을 망가뜨리게 된다”고 했다.
밀운 스님은 설정 총무원장을 지지한 몇 안 되는 원로 가운데 한 명이다.
밀운 스님은 “설정 총무원장으로 인해 조계종 상황이 복잡하다. 교권자주 및 혁신위는 유전자 검사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30일(교권자주혁신위 활동시한)에는 총무원장직 사퇴 요구까지 준비해 왔다”면서 “하지만 사부대중이 교권자주 및 혁신위 결과를 지켜보지 않고 설정 총무원장에게 ‘빨리 나가라’고 야단이다”고 했다.
이어 “총무원장은 조계종단의 종헌종법 절차에 의해 선출됐다. 종헌종법 절차는 여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교권자주위가 조사를 하고 있는 데 그 결과 나온 후 나가야지, 설(의혹)만 가지고 나가면 안 된다”며 “조봉암도 사형집행까지 된 후 무죄판결이 나왔다. 죽은 뒤 무죄가 나오면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종정 뜻 어기며 기자회견 했다는 비판도"
밀운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내가 종정 스님의 뜻까지 어겨가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설정 스님을 내가 두둔한다고 비판한다”며 “내 뜻은 종단 질서를 잡자는 것이다. (뜻이 제대로 받다 들여지지 않고 왜곡되고 있어) 교권자주 및 혁신위원장직과 종정자문위원장 및 위원 직을 모두 사임했다. 사임서는 종정 스님이 계시는 동화사에 오늘 보냈다”고 했다.
밀운 스님은 6일 기자회견을 한 의도를 직접 밝혀 눈에 띤다.
스님은 “설정 총무원장이 스스로 퇴진을 결정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그날 기자회견은 설정 원장이 퇴진하는 데 좋은 모양새를 열어 주려 한 것인데”라며 “기자회견에 와서 진퇴를 말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아프셔서 입원해 못 나왔다. 퇴로를 부드럽게 열어 드리려 한 것인 데 잘 안 됐다. 이제 진퇴의 문제는 당신(설정 원장)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아쉬워했다.
"퇴진한다고 끝나는 일 아니다. 문제 있으면 징계해야"
교권자주 및 혁신위에는 ‘애정’을 드러냈다. 밀운 스님은 “교권자주 및 혁신위는 아주 중요하다. 수사권이 없고 의혹에 대한 사실규명만 할 수 있지만, 설정 총무원장이 퇴진하더라도 교권자주위는 진행되어야 한다”며 “특히 설정 총무원장도 조계종단의 승려이다. 의혹을 끝까지 조사하고 규명해 문제가 있으면 징계를 해야 한다. 퇴진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고 했다.
밀운 스님은 교구자주 및 혁신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멸빈제도 폐지 등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전 총무원장 시절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사부대중의 목소리에는 교권자주 및 혁신위 활동 범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밀운 스님은 “내가 위원장에서 물러났어도, 여섯 분의 부위원장이 계신다. 그분들 중 한 분이 위원장을 맡아 활동을 이어가면 된다”며 “혁신소위가 원로의원·총무원장·종회의원·본사주지 등 선출직은 청문회까지 해서라도 범계가 있는 사람은 출마하지 못하도록 법안을 만들어 제안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정 원장을 내쫓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징계를 받은 분들이 많다. 한이 맺혀 있다. 죄가 없는데도 징계당한 사람들도 있다”며 “그들의 한을 맺힌 것도 풀어줘야 한다. 그래서 사형제도인 멸빈제도를 없애자는 것이다. 어느 정도 (징계기간을) 뒀다가 참회하면 받아줘야 한다. 멸빈제도는 맞지 않다”고 했다.
"적폐청산 요구는 교권자주위 활동범위 아니다"
밀운 스님은 “총무원장 시절의 적폐에 책임을 묻고자 하지만 그건 (교권자주위가 할 일이 아니고) 대중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교권자주위는 MBC PD수첩 보도 관련 사실 여부를 조사하면 된다. 의혹 규명위어서 광범위하게 다룰 수 없다. (법이)정한 사건만 다뤄야 한다. 교권자주위가 무엇을 하느냐고 하지만 그런 게 아니다. 한계가 있다”고 했다.
설정 총무원장이 퇴진하면 급속히 차기 총무원장 선거판으로 국면이 전환될 수 있다. 차기 총무원장 후보는 범계가 없는 원로급 인사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밀운 스님은 “차기 총무원장이니 이런 데 나는 관심이 없다. 나는 나가지 않는다”고 못 박으면서 “나는 관계하지 않겠다”고 했다.
교권자주 및 혁신위는 역시 퇴로가 막힌 것으로 보인다. 위원장인 밀운 스님이 사퇴했고, 종단혁신위 소위원장인 도법 스님 역시 물러난 상태다. 설정 총무원장 측이 도법 스님의 복귀를 희망하지만 돌아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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