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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문관: 여자출정(女子出定)
[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35.
2018년 07월 31일 (화) 11:02:16 박영재 교수 서강대, 선도회 지도법사

* 성찰배경: 최근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양성평등(兩性平等)을 위한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경기도는 양성평등 문화를 두루 확산시키기 위해 올해부터 성인지(性認知) 교육인 ‘젠더 스쿨(gender school)’을 운영한다고 지난 7월 11일 밝혔습니다. 한편 불교계가 지금까지 비록 이웃종교에 비해 비교적 양성평등 문화가 정착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에 발맞추어 종교계를 선도하며 더욱 양성평등 문화 진작에 관심을 기울여야할 때라 판단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양성평등과 관계된 ‘여자출정(女子出定)’(<무문관> 제42칙) 공안을 제창하고자 합니다.

본칙(本則): 석가세존께서 전법하시던 어느 때 문수(文殊) 보살이 제불(諸佛)이 모인 곳에 이르자, 제불 모두 각각 ‘계시던 곳’[본처(本處)]으로 돌아감을 보았다. 그런데 다만 한 여인(女人)이 있어, 세존 가까운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어 있다.

문수 곧 세존께 아뢰어 가로되, “어째서 저 여인은 세존 가까이 할 수 있고, 저는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입니까?” 그러자 세존께서 문수에게 고하기를, “그대가 다만 이 여인을 선정에서 깨워 그대 스스로 그 까닭을 물어보아라.”

문수가 여인의 주위를 3번 돌며 ‘손가락을 한번 튕기고’[명지(鳴指)], 그녀를 범천(梵天)에까지 들어 올려서 온갖 신통력(神通力)을 다 부려보았으나, 그녀를 선정에서 나오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세존께서 가로되, “비록 백천(百千)의 문수가 와도 이 여인을 선정에서 나오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땅속으로 일십이억(一十二億)개나 되는 갠지스강변의 모래처럼 무수하게 많은 국토를 지난 곳에 망명(罔明) 보살이 살고 있는데 그가 능히 선정에 들어있는 이 여인을 깨울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자 잠깐새[수유須臾] 망명이 땅에서 솟아 나와서 세존께 예배(禮拜)했다. 이때 세존께서 곧 그녀를 선정에서 깨우도록 그에게 명하니, 망명이 그녀의 앞에 이르러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그녀가 즉시 선정에서 깨어났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 가로되, ‘석가 늙은이’[선종 특유의 석가세존의 극존칭]가 한바탕 연극을 연출했는데 시시한 것들과는 그 격이 달랐네. 자! 말해 보아라. 문수 보살은 칠불(七佛)의 스승인데 어째서 이 여인을 선정에서 나오게 하지 못했는가?

반면 망명 보살은 지위가 제일 낮은 초짜 보살인데 어떻게 그녀를 선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었는가? 만약 이에 대해 제대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끝없는 ‘업식의 삶’[중생의 삶] 그대로, 부처[나가(那伽), 대룡(大龍)이라는 뜻]가 삼매에 든 경지이리라!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깨울 수 있는 것도 깨울 수 없는 것도, 망명과 문수 각자의 자유이네! 신선(神仙)의 탈과 도깨비의 탈을 쓰고 한바탕 벌린 연극에서, 성공한 망명도 실패[패궐(敗闕)]한 문수도 또한 당연히 멋진 풍류인 것을! [출득출부득出得出不得 거농득자유渠儂得自由. 신두병귀면神頭并鬼面 패궐당풍류敗闕當風流.]

군더더기: 이 공안은 본래 <제불요집경(諸佛要集經)>이라는 인도 경전(經典)속에 나오는 비유적인 우화(寓話)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전혀 다른 의도, 즉 수행자들의 안목을 넓히게 하기 위한 공안으로 활용되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원전(原典)에 관계없이 수행자로 하여금 분별 작용을 멈추고 의심에 사무치게 하는 공안(公案)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참고로 촌음(寸陰)을 헛되이 하지 않는 치열한 수행자들의 시간관을 잘 엿볼 수 있는, 경전이나 선어록에 등장하는 시간 간격에 대한 용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찰나(刹那)’는 순간(瞬間)의 음역으로 약 0.013초를 뜻하며, ‘탄지(彈指)’[명지(鳴指)]는 찰나의 열배로 약 0.13초를 뜻하며, ‘순식(瞬息)’은 탄지의 열배로 약 1.3초를 뜻하며, ‘수유(須臾)’는 ‘순식’의 열배로 약 13초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편 기존의 상식과는 달리 역전된 상황 설정을 통한 이 공안은 또한 수행자로 하여금 신구불이(新舊不二), 즉 갓 입문한 신참[망명보살]과 오래 수행한 구참[문수보살] 및 여남불이(女男不二), 즉 여자[선정에 든 여인]와 남자[문수보살]에 대한 이원적 분별심까지도 철저히 타파하도록 몰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양성’이니 ‘평등’이니 하는 분별심조차 일어나지 않는 경지로 나아갈 것을 다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노래’[증도가(證道歌)]

영가현각(永嘉玄覺, 665년-713년) 선사의 저작으로 알려진 <증도가(證道歌)>에서는 더욱 철저히 상황을 역전시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먼저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용녀돈성불(龍女頓成佛)’ 설화를 인용하며, ‘만일 올바르게 수행한다면 용녀(龍女)처럼 비록 여성일지라도 단박에 성불(成佛)할 것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선성생함추(善星生陷墜)’ 설화를 인용하며, ‘잘못 수행한다면 비록 오랜 출가수행자일지라도 선성(善星) 비구처럼 땅이 갈라지며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노래에는 일불(一佛) 사상을 제창했던 소승불교 시대를 지나,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다불(多佛) 사상으로 바뀐 대승불교 시대가 도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아직 여성으로 태어난 경우 다음 생(生)에서 남성으로 몸을 바꾸어 태어나야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는 ‘변성성불론(變性成佛論)’이 만연하던 당시의 (아니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묵시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넓은 안목을 갖춘 현각 선사께서 이를 혁파(革罷)하기 위해 여성의 몸으로도 즉시 성불할 수 있다는 ‘즉신성불론(卽身成佛論)’을 노래한 것이라 판단됩니다.

비과학적인 남녀차별 관행

이번에는 과학 전공자로서 남녀차별 문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이 주제는 매학기 전공을 불문하고 제 강의 시간에 한 번은 꼭 언급하는 주제인 동시에 시대적 흐름에 따라 틈날 때마다 기고를 통해 다루어 오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재가와 출가를 막론하고 불제자들은 대개 불교가 매우 과학적인 종교라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해오고 있으나 냉철히 살펴보면 비과학적(비합리적)인 요소가 적지 않게 내재해 있습니다.

따라서 첨단과학 시대를 살고 있는 불제자들은 이제 과학적인 추론을 통해 비과학적으로 맹신하고 있는 점들을 하나하나 개선해 가야 할 때라 생각됩니다.

특히 시급히 고쳐야 할 관습 가운데 이번 글과 관계된 여성차별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성이 구별되어 있는 생물체는 원래의 체세포가 가진 염색체 수의 절반을 갖는 생식세포를 만듭니다.

이들이 세포융합 과정을 거쳐 반감되었던 염색체 수는 새로 만들어진 세포 속에서 원래대로 돌아가고 이 수정된 세포가 분열하여 새로운 생명이 탄생됩니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남성과 여성은 부모가 되어 출산을 할 경우, 자녀에게 똑같이 유전 형질을 평등하게 반반씩 물려주며, 자녀는 다만 XY 염색체의 조합에 따라 딸과 아들로 나누어지는 것일 뿐 결코 여기에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뛰어난 과학자 중에는 여성이 그토록 희귀한가?’ 서구 문화권에서 행해진 일련의 조사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의 불균형은 생물학적 요인이 아니라, 문화적·사회적 요인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습니다.

특히 보부아르 부인은 ‘여성은 여성으로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여성으로 만들어진다’고 역설했습니다. 1970년대 미국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여러 여성 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과학과 젠더(gender: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 사회적·시대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을 의미하는 개념)’에 관한 연구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과학 정책의 토대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그 결실로 지난 1999년 7월 브뤼셀에서 유럽연합국가의 대표들은 ‘과학에서의 남녀평등 문제를 긴급하고 중요한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선언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무렵 프랑스의 경우, 정책적으로 여성 과학자에 대한 동등한 기회 보장을 위해 종일반 학교, 전일제 탁아소 등 가정과 직업을 양립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가장 잘 마련해 놓고 있어, 여성 교수 비율도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성차별 근거인 ‘비구니 8경법’

한편 불교적인 측면에서 여성차별 문제를 살펴보면, 그 발단은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비구니가 비구를 공경해야 할 8가지 계율을 설정한데 있었다고 봅니다.

<사분율(四分律)>에 나오는 비구니팔경법(比丘尼八敬法)은 교단 내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근거로 지금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첫 번째 조항은 ‘비록 백세 비구니일지라도 처음으로 수계한 어린 비구를 보거든 마땅히 일어나서 친절히 맞이할 것이니 이를 형수(形壽)가 다하도록 어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세존께서 비구니 승단의 인정 과정에서 이미 20여년 동안에 걸쳐 틀을 갖춘 비구 승단으로부터 수행에 관한 노하우를 철저히 전수 받으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지, 여성차별을 전제로 하신 것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이제 이런 비과학적인 조항들을 재가와 출가를 막론하고 지혜로운 법사(法師)들께서 앞장서서 완전히 폐지하거나 또는 다음과 같이 바꾸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남녀를 불문하고 백세 수행자가 배울 것이 있다면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어릴지라도 법사께 마땅히 스승의 예를 갖추고 가르침을 청해야할 것이며 이를 형수(形壽)가 다하도록 어기지 말라.’

또한 계율이나 규범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출가의 경우 비구계는 250계이나 비구니계는 348계인 것도 피상적으로만 보면 여성을 차별한 것처럼 보이나, 원래 계율은 승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수범제계(隨犯制戒: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직은 의지가 굳세지 못한 다수의 수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비구니 승단의 형성 과정에서 여성 수행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더 추가된 것이라 판단됩니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시대도 바뀌고 문화적 배경도 인도와 다른 한국적 현실에서 비과학적이고 불필요한 계율이나 규범들[불문율(不文律) 포함]은 적극적으로 폐기되거나 개정되어야할 것입니다.

또한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 과학계에서 강구하고 있는 재능 있는 여성과학자 지원육성 정책처럼, 불교계도 가부장적인 남성 법사와 종속적인 여성 법사 관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무한 경쟁 속에 내몰리며 첨단과학 시대를 살고 있는 고통 받는 중생들을 보다 가까이에서 이끌어 줄, 재가와 출가를 막론하고 성차별이나 노소의 분별없이 스승으로서의 역량을 갖춘 법사들을 다수 배출하고 이 분들을 적극 활용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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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시간 : 2018-07-31 11:02:16]  
[최종수정시간 : 2018-07-31 1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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