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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들었으면 쫓아내야
[진흙속의연꽃] 자타가 이익 되는 정의로운 삶을 위하여
2018년 06월 25일 (월) 12:40:11 이병욱 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

사회적 실천에 대하여 또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늘 화두처럼 머리에 떠나지 않는 것이 사회적 실천입니다. 대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해야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따비에 대하여

사회적 실천방법은 여럿 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회적 봉사입니다. 노숙자에게 밥 한 끼 제공하는 것 같은 것입니다. 이런 봉사는 이미 체험한 바 있습니다. 지금은 회향하여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2017년 1월과 2월에 을지로굴다리 노숙자 ‘따비’에 참여했습니다.

따비라는 말은 큰 농기구가 역할을 못하는 모서리 진 곳 등을 경작하는 데 사용하는 작은 농기구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작은 봉사라는 의미에서 따비라 합니다. 노숙자 봉사를 통하여 같은 하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동시대를 죽지 못해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 언젠가 해야 할 사업입니다.

자타(自他)의 이익을 위한 삶

사회적 실천은 개인적 실천과 병행하여 진행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개인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는 정평법회에서 지도법사인 박경준 교수가 “개인적인 수행은 개인적 완성으로 귀결되고, 사회적 실천은 사회적 완성으로 귀결됩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는 사회적 실천을 지향합니다. 사회적 실천이라 함은 세상의 약자에 대한 봉사도 포함되고, 세상의 강자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개인적 수행과 이익에만 몰두하는 것을 지양(止揚)하고, 또한 오로지 사회적 실천과 사회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것 역시 지양합니다. 이와 같이 자타의 이익을 위한 삶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원리를 갖추면, 수행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있는데, 그는 스스로 계행을 갖추고, 타인에게 계행을 갖추도록 권한다. 그는 스스로 삼매를 갖추고, 타인에게 삼매를 갖추도록 권한다. 그는 스스로 지혜를 갖추고, 타인에게 지혜를 갖추도록 권한다. 그는 스스로 해탈을 갖추고, 타인에게 해탈을 갖추도록 권한다. 그는 스스로 해탈에 대한 앎과 봄을 갖추고, 타인에게 해탈에 대한 앎과 봄을 갖추도록 권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원리를 갖추면, 수행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것이다.”(A5.20)

   
▲ 관악산 내비산 등산로 입구에서 본 꽃과 나비

부처님은 수행에 따른 개인적 이익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한 삶도 이야기 했습니다. 경에서는 계행, 삼매, 지혜, 해탈, 해탈지견 이렇게 다섯 가지를 갖추는 것이 개인적 이익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삶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다면 타인도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줄 의무가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것이다.”(A5.20)라 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자타(自他)의 이익을 위한 삶을 말합니다.

학의천을 가로질러 일터로

매일 아침 학의천을 가로 질로 일터로 향합니다. 글에서 학의천을 언급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만나는 사람들은 학의천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의천은 수도권 대도시 중의 하나인 안양시를 가로지르는 생태하천입니다. 시시사철 하천의 일부를 출퇴근 시에 걷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걸으면 상쾌하기 그지없습니다. 동시에 끊임없이 좋은 생각이 샘솟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 메모앱에 키워드만 저장해 둡니다.

   
▲ 학의천에 핀 하와이안 무궁화

오늘 아침 학의천을 걸으면서 개인적 실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도 개인적 실천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세에 대해 지적받았기 때문입니다. ‘경준샘’이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고 다니라고 충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선 뒷짐을 지고 경행하라고 했습니다. 뒷짐을 지긴 지되 허리와 가슴을 펴는 것입니다. 방법은 뒷짐을 허리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허리와 가슴이 펴집니다. 매일 이렇게 이른바 ‘뒷짐경행’을 실천하면 자세가 좋아질 것이라 합니다. 동시에 보기도 좋아 질 것이라 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임

사람들은 지적 받으면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정이 있기 때문에 잘못을 알려 줍니다. 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면 지나칠 것입니다. 오히려 지적을 고맙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법구경>에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임,
꾸짖어 충고하는 임, 현명한 임.
숨겨진 보물을 알려주는 임을 보라.
이러한 현자와 교류하라.
그러한 사람과 교류하면,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은 없으리.”(Dhp.76)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망신 주기 위해서입니다. 대중이 있는 곳에서 잘못을 지적했을 때 모욕 받았다고 느낄 것입니다. 또 한 부류는 잘못을 그만 두게 하려는 애정 어린 충고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잘못을 말하고 잘못을 그만 두게 만들었을 때 고마운 사람입니다.

잘못을 보아도 상대방을 보아 가며 말해야 합니다. 잘못을 지적할만한 가치가 없는 자에게 잘못을 지적해 보았자 불쾌하게 생각하며 적의를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수용할 수 있는 자에게 잘못을 지적하면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나는 꾸짖어야 할 것은 꾸짖어 말하고, 충고해야 할 것은 충고하여 말한다. 견실한 자는 견디어 낼 것이다.”(M122)라고 말했습니다.

뒷짐 경행 이틀 째

뒷짐경행 이틀 째 입니다. 아침에 학의천을 걸어오면서 뒷짐 지고 허리와 가슴을 펴고 경행했습니다. 집에서도 틈만 나면 뒷짐 경행합니다. 선천적으로 약골에다 신체적인 콤플렉스가 많은 자에게 허리와 가슴을 펴는 자세는 자신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합니다. 지적해 주신 샘에게 감사드립니다.

정평불에서는 선생 또는 선생님을 ‘샘’이라 칭합니다. 친구와 같은 말로 누구나 동등한 관계임을 말합니다. 나이와 지위와 관계없이 모두 샘이라 합니다. 샘물처럼 끊임없이 샘솟는다고 하여 샘이라 합니다. 매일매일 새로워지고 매일매일 성장하는 삶을 산다고 해서 샘이라 합니다.

뒷짐 경행하여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은 개인적 실천입니다. 개인적으로 수행하면 반드시 이익이 따릅니다. 수행하는 것은 바른 습관을 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개인적인 수행은 개인적인 실천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 실천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부가 되었으면 사회에 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회적 실천이 요구됩니다.

붓다사사나(Buddhasāsana)

부처님은 개인적 해탈만을 추구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의 경(A5.20)’에서와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것이다.”(A5.20)라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붓다사사나(Buddhasāsana), 즉 부처님의 훈계 또는 부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는 개인적인 실천과 동시에 사회적 실천을 추구하는 재가불교단체입니다. 정의와 평화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법하게, 정의롭게 실천하여 개인과 사회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자타의 이익을 위한 삶입니다.

자타의 이익을 위한 삶의 범주는 매우 넓습니다. 노숙자 봉사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에게 봉사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국가의 틀을 바꾸기 위한 헌법 개정 작업에 이르기 까지 스펙트럼은 매우 넓습니다. 우선 당면한 현실에 대하여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로운 불교, 여법한 불교를 만들기 위한 불교적폐청산운동입니다.

현재 우정공원에서는 설조스님이 단식 6일 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나이 88세의 노스님은 죽음을 전제로 한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한국불교를 바꾸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한 몸 바쳐서라도 선한 사람들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평불 회원들은 스님을 외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성장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사회적 실천운동의 하나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부처님의 명령, ‘붓다사사나’입니다.

한국불교에 큰 도둑이 들었는데

어떤 이들은 불교적폐청산운동에 대하여 냉소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무리 해 보았자 바위에 계란치기라 하면 되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진즉 포기했다고 하면서 개인적 수행에나 열심히 하겠다고 말합니다.

패배주의는 재가자뿐만 아니라 이해 당사자인 출자가에게도 만연되어 있습니다.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권승들의 눈밖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비열하고 비겁한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도둑이 들었습니다. 집안에 도둑이 들었을 때 가만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도둑이 들었으면 도둑을 쫓아 버려야 할 것입니다. 한국불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에 큰 도둑이 들었습니다. 큰 도둑은 큰스님 행세를 하며 정치권에 로비를 하여 각종 국가예산을 챙기는가 하면, 그 동안 확보된 자금을 이용하여 종회와 교구본사 주지를 모두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국불교에 큰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들은 돈이 될 만한 사찰을 점령하여 막대한 부를 챙기고 있습니다. 조상이 물려준 토지와 문화유산을 사유화 하여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도둑이 들어 매일 도둑질 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도둑의 세력이 너무 강해서 도둑질 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입니다.

“그대들은 모두 화합해서
그러한 사람을 물리치고
쌀겨처럼 그를 키질하여
쓰레기처럼 날려버려라.”(Stn.281)

“그리하여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체하는 악한 욕망에 사로잡혀있고,
수행의 초원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
그 쌀겨들을 날려버려라.” (Stn.282)

   
▲ 조계종 적폐청산 설조스님 단식현장과 노숙인

부처님의 메시지는 명료합니다. 집안에 도둑이 들었으면 힘을 합하여 몰아내라는 것입니다. 도둑이 무서워 집을 나간다면 비겁한 행위입니다. 나중에 집을 또 하나 만들었는데 또 다시 도둑이 들었을 때 그때도 집을 나가야 할까?

도둑이 무섭다고 하여 도둑의 눈치를 보며 산다거나 아예 도둑을 피해 멀리 떠나 산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는 자와 같습니다.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불교에서는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들이 넘쳐 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화장터 나무토막 같은 반승반속(半僧半俗)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는 도둑을 방관하지 않습니다. 개인적 수행과 개인의 완성을 목표로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실천과 사회적 완성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경전적 근거를 갖습니다. 먼저 최악의 경우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화장용 장작은 양끝이 불타고 중간은 악취가 나기 때문에 마을에서도 장작으로 사용하지 않고 한적한 곳에서도 장작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이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A4.95)

최악은 자신의 이익도 타인의 이익도 아닌 삶을 사는 자를 말합니다. 오로지 즐기는 삶을 사는 자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길거리에서 널 부러 자는 노숙자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개인의 향상에도 노력하지도 않고 사회의 성장에도 관심 없는 자에 대하여 화장터에서 타다만 장작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권승들도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득과 명예와 칭송만을 추구하는 스님들은 반승반속(半僧半俗)이어서 화장터 나무토막과 같습니다.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여기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와 타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일까? 초기경전에서는 명백하게 전자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먼저 자신의 수행이 되어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구보리도 되어 있지 않은 자가 하화중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 가운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실천하지만,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이러한 앞의 세 사람 가운데 보다 가장 훌륭하고 훨씬 탁월하다.”(A4.95) 라 했습니다.

한국불교 개혁을 위해 매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노력과 열정에 감탄합니다. 매일 하루 종일 조계사 일주문 현장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또 단식현장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직장 다니는 사람이나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쭌다여, 스스로 진흙에 빠진 사람이 다른 진흙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M8)라 했습니다. 이 말은 ‘물에 빠진 자가 물에 빠진 자를 구할 수 없디.’라는 말과 같습니다. 봉사를 해도 먼저 자신의 수행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정도 주말에 시간을 낸다면 훌륭한 봉사가 됩니다. 하루 종일 봉사하는 사람이나 일주일에 한번 시간 내는 사람이나 공덕에 있어서는 동등합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봉사하는 자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개인적 수행이 없이 타인을 위한 삶만 산다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 개인적 이익을 위해 실천하는 자가 개인적 이익 없이 타인을 이익을 위해서만 사는 자 보다 훨씬 더 수승합니다.

아는 것만큼 알려주고 능력껏 보시하고

보살행은 상구보리하화중생입니다. 먼저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개인적 이익을 위한 실천수행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타인의 이익을 위한 실천수행을 해야 합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 추구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으로도 확인 됩니다.

“수행승들이여, 이 가운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이러한 모든 사람 가운데 최상이고 수승하고 가장 훌륭하고 훨씬 탁월하다.”(A4.95)

일주일이 시작 되는 월요일 아침 학의천을 걸어 일터로 가면서 개인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사회적 실천에 앞장 서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인적인 실천이 우선합니다. 물에 빠진 자가 물에 빠진 자를 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자가 남의 문제를 풀어 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공부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아는 만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알려 주는 것은 자타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수행으로 개인을 완성하고 사회적 실천으로 사회를 완성한다.”라는 정평불의 이념과도 맞는 것입니다. 지금 비록 조금 밖에 알지 못해도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지금 비록 조금 밖에 가진 것이 없어도 능력껏 보시하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실천입니다.

오늘 아침 뒷짐경행을 하며 걸었습니다. 허리를 펴고 가슴을 펴는 연습입니다. 이런 지적을 해 주신 샘에게 감사드립니다. 이것도 일종의 개인의 실천수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수행이 개인의 이익으로 그치지 않고 자타가 모두 이익 되는 방향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고, 여법한 삶이고, 정의로운 삶이라 봅니다.

이병욱/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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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시간 : 2018-06-25 12:40:11]  
[최종수정시간 : 2018-06-25 13:44:13]  

   
기사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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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합시다 2018-06-27 12:36:0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에 든 도둑은 꼭 내신고 | 삭제

    • 적폐 2018-06-26 11:21:01

      입진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사람 전형적인 입불자..초기 경전 몇권 읽었다고 입만 살아서 끊임 없이 지 잘난체하고, 다른 사람 바보취급하고, 지 입맛에 안 맞으면 적폐니 뭐니 딱지 붙이는 위인. 가장 비불교적인 성정을 가진 사람이 도사행세하니 웃기지도 않는다!신고 | 삭제

      • 박민수 2018-06-26 07:28:30

        YouTube에서 '(124-5회)종정스님교시를 원장스님 하야와 비대위구성원로회의 승인받고 광화문광장과 각도시에 하안거를 진행-진리해설사박민수(선사)' 보기
        https://youtu.be/VCuv0eheYSg신고 | 삭제

        • 동산/부동산 2018-06-25 22:51:50

          그대들이여!
          조계종 부동산을 포기하고
          새로운 수행운동을 합시다.
          그대들도 조계종단 재산 때문에
          지금나서는것이 아닌가?
          한번쯤 깊히 돌아보기를~~^^
          봉은사에 집착하는 것을
          말로는
          본래무일물이라하고신고 | 삭제

          • 한마디 2018-06-25 22:43:56

            여러분 도둑들과 싸우다 보면 아수라 업만 짓습니다.
            더러운 싸움 구더기와 시시비비 뒤로하고
            그대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길을 개척해야합니다.
            설령 지금의 적폐를 청산하고 그자리에
            그대들이 들어간다하더라도 20년이 지나면
            또다른 괴물이 되어 있을 것은 불보듯합니다.
            부디 지금의 시비에서 벗어나 무소의뿔처럼
            수행하여 붓다가 됩시다 .
            겉은 부드러우나 속은 단단하기가 금강과 같느니~~***

            모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합니다.신고 | 삭제

            • 재가자 2018-06-25 16:16:23

              절에 계신 스님들도 마음은 편치 안으시라 믿습니다. 몰라라 할 상황이 아닌 듯 합니다.
              뜻을 모으다 보면 길이 보일 것입니다. 매일같이 몇몇스님과 재가인 몇명이서 스님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모두가 설 자리가 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많은 스님들이 함께 해주시길 재가인으로서 간곡히 부신고 | 삭제

              • 나무 2018-06-25 15:21:14

                잠시라도 시간을 내 5일동안 단식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조계사 일주문에서 뙤약볕에서 서명바는 분분은 본인은 불자가 아닌데, 하도 답답하여 나와서 돕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뜻을 가지고 있는 불자라면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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