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소 차가 뒤엉킨 혼돈 속 질서
사람 소 차가 뒤엉킨 혼돈 속 질서
  • 이병욱/정평불 사무총장
  • 승인 2018.06.1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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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과 함께한 인도성지순례] (3) 가장 인도다운 도시 바라나시

원담 스님과 함께, 진주선원 불자들과 함께 하는 인도성지순례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1월 1일 늦은 오후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안개로 인하여 델리에서 무려 다섯 시간 넘게 기다리다 간신히 비행기를 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첫 날 순례일정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원래 계획은 점심 전에 도착하여 오후에는 초전지 사르나트와 박물관 그리고 초전법륜사(寺) 순례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라나시 공항에 오후 다섯 시가 넘어 도착하는 바람에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사르나트 순례하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 바라나시 공항의 인도전통의상 마네킹

바라나시 공항에서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는 840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입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에서 자동차로 달리면 꼬박 12시간이 걸립니다. 이전에는 주로 철도를 이용해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행기로 이동하면 불과 1시간 15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바라나시 공항은 작습니다. 국제선이 있다면 인천에서 이곳까지 직항으로 왔을 것입니다. 작은 공항에서도 연말연시 분위기가 납니다. 공항로비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 인도의 상징 공작새 그림도 그려져 있습니다. 바닥에 ‘HAPPY NEW YEAR’라고 쓰여 있어서 새해임을 실감케 합니다.

바라나시 공항에서 본 것 중의 또 하나는 인도전통의상입니다. 로비 한 켠에는 인도 여성복식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인도영화에서도 볼 수 있고 인도거리에서 볼 수 있는 복식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한다면 한복과도 같은 것입니다.

복식을 보니 더운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얇은 천으로 몸을 감싼 형식입니다. 특히 허리에 맨살이 보여서 마치 속옷 입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왼쪽 어깨에 걸쳐 있는 숄이 있어서 보일락 말락 한 여운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 바라나시 시내의 노점상

“꼭 가봐야 합니다. 이건 놓쳐서는 안 됩니다.”

바라나시에서부터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됩니다. 8박 9일 순례일정에서 항상 함께 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순례가 끝날 때 까지 함께 하는 전세버스입니다. 운전기사가 딸린 일종의 자가용과 같아서 언제 어느 때고 어느 곳이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습니다. 순례 팀에게 날개를 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비행기가 늦게 뜨는 바람에 오후의 공식일정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호텔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가이드 샌디는 저녁에 바라나시 ‘불의 제사의식’으로 안내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꼭 가봐야 합니다. 이건 놓쳐서는 안 됩니다.”라 했습니다. 아침에 가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저녁에만 볼 수 있는 ‘불의 제사의식’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바라나시 ‘불의 제사의식’ 관람은 원래 예정에 없던 것입니다. 오후 일정이 모두 취소됨에 따라 그대로 호텔로 들어가 쉬는 것이 아쉬워서 가이드가 일정에도 없는 것을 만든 것입니다. 일단 호텔에 짐을 풀어 놓고 곧바로 바라나시 시내로 향했습니다.

▲ 바라나시 시내 지도.

인도의 진수를 보여 주는 듯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할 때 바라나시의 거리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이것이 인도다’라 할 것입니다. 인도의 진수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고서 인도를 보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두 번째로 땅덩어리가 큰 주가 우따르 쁘라데시(UP, Uttar Pradesh)주라 합니다. 그 중에서 바라나시가 가장 중심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오륙천년 전에 형성된 바라나시는 종교도시이자 힌두교 성지입니다.

마치 인도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바라나시 시내를 차창으로 내다보았을 때 그들의 삶의 모습에 충격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공항과 호텔에서만 있다가 인도의 현실과 제대로 마주친 것입니다. 마치 싯다르타 태자가 사대문안 궁전에서 살다가 농경제 때 사대문 밖에 나가 생생한 민중의 삶을 본 것과 다름없습니다.

바라나시에서 본 것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이곳저곳에 사람들로 넘쳐 납니다. 그래서일까 인구밀도 가장 높은 곳이라 합니다. 대부분 빈궁하게 보입니다. 집들은 허름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대체 저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자전거 릭샤를 힘겹게 끌고 가는 릭샤꾼

자전거를 개조해서 만든 2인승 릭샤

예정에 없던 불의 제사의식을 보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갠지스 강을 보는 일정이 잡혀 있긴 하지만 저녁에 보는 바라나시는 아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먼저 릭샤를 탔습니다. 자전거를 개조해서 만든 2인승 릭샤입니다.

릭샤를 타기 전에 가이드가 경고했습니다. 절대로 단독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혼돈의 도가니와 같은 곳에서 길을 잃어 버렸을 때 되돌아 올 수 없음을 말합니다.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가이드 깃발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을 요청했습니다.

10대 이상의 릭샤가 편대를 이루어 신나게 달렸습니다. 릭샤를 운전하는 자는 온갖 교통수단이 엉켜 있는 혼돈의 도가니를 용케 요리조리 잘도 빠져 달렸습니다. 곧 부딪칠 것처럼 아슬아슬하지만 한 번도 접촉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이드에 따르면 불의 제사의식은 매일 저녁 6시 20분에 시작한다고 합니다. 여름에는 7시 20분이라 합니다. 갠지스강가 가트에서 열리는 제사의식을 보기 위하여 달렸습니다. 마딘(Madin)호텔에서 가트(Ghat)까지는 릭샤로 30분가량 걸립니다. 릭샤꾼은 힘차게 페달을 밟았습니다.

▲ 바라나시 시내에서의 가이드 깃발

바라나시(Varanasi)는 어떤 도시?

바라나시(Varanasi)는 어떤 도시일까? 가이드는 인구가 약 350만 명으로 부산 급이라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이고, 인도에 가장 성스런 도시입니다. 마치 이슬람에서 일생에 한번은 메카를 순례 하듯이, 힌두교도들은 일생에 한번은 바라나시를 순례한다고 합니다.

힌두교도들의 고향 바라나시는 불교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바라나시 외곽에 초전지 사르나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도 부처님 당시 이곳 종교도시에서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가르침의 수레바퀴의 경에서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 계셨다.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bārāṇasiyaṃ viharati isipatane migadāye.)”(S56.11)로 경이 시작됩니다.

▲ 바라나시 시내의 걸사.

흩어지면 죽는다고

갠지스강가에 있는 가트로 가는 길에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자동차로 진입할 수 없어서 자전거를 개조한 릭샤를 이용했습니다. 열대 가량의 릭샤가 부대를 이루어 바라나시 시내를 질주했습니다.

바라나시 중심부에서는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흩어지면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기 때문에 가급적 뭉쳐 다니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조금만 방심해도 길을 잃기 쉽습니다. 가이드가 들고 있는 깃발을 이정표 삼아 서서히 강가 가트로 향했습니다.

도보로 이동 중에 갖가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들입니다. 모습도 다르고 행색도 다릅니다. 더구나 길거리에는 소가 유유히 어슬렁거리며 다닙니다. 끊임없이 눌러 대는 경적소리와 시끌벅적한 소리, 그리고 구걸하기 위하여 달라붙는 자들이 어우러진 바라나시는 카오스, 혼돈의 도가니입니다.

바라나시의 경적소리

바라나시가 카오스의 도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혼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혼돈 속에 질서가 있습니다.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이 ‘무질서하게 보이는 현상 혹은 예측 불가능한 현상도 배후에는 모종의 정연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이론’을 말하는데 바라나시에 딱 적용되는 말입니다.

바라나시 시내를 걷다 보면 끊임없는 경적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차량과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기도 하지만, 교통신호등도 없고 교통경찰관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라나시에서 경적 울리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아니 오히려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면 이는 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우리와 정반대입니다. 바라나시에서 법은 경적을 울리는 것입니다. 경적을 울려야 조심할 수 있고 비켜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켜 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사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 사람과 소가 공존하는 바라나시.

가장 인도다운 도시

바라나시에서는 혼돈의 도가니입니다. 그러나 혼돈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차량이 뒤엉켜 부딪칠 것 같지만 경적소리 등으로 경고하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혼돈속의 질서, 즉 카오스 이론이 통하는 곳이 바라나시입니다.

바라나시의 밤거리를 거닐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입니다. 예정에 없던 것이 들어 간 것은 순전히 비행기가 다섯 시간 넘게 지연됨에 따른 것입니다. 만일 이번 인도순례에서 바라나시의 밤거리를 걷지 못했다면 여행이 반감 됐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가이드가 “꼭 가봐야 합니다. 이건 놓쳐서는 안 됩니다.”라 말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도여행을 하면서 사성급 호텔에서 자고 전세버스로 이동합니다. 인도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기 어렵습니다. 계획에 없던 바라나시의 밤거리를 본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마치 싯다르타 태자가 성문 밖에 나가서 본 것과 같습니다. 성문 밖에는 병자, 늙은 자, 죽은 자,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오로지 즐거움과 행복만 있는 궁전에 살았습니다. 이는 <맛지마니까야> ‘마간디야의 경’에서 “나에게는 세 개의 궁전이 있어 하나는 우기를 위한 것이고, 하나는 겨울을 위한 것이고, 하나는 여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간디야여, 그러한 나는 우기의 궁전에서 사는 사 개월 동안 궁녀들의 음악에 탐닉하여 밑에 있는 궁전으로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M75)라고 묘사 되어 있습니다. 부왕이 일부러 생로병사의 현장을 보여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문 밖에서 생로병사의 현실을 보았을 때 충격으로 다가 왔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태자는 성문을 결국 나서게 됩니다. 감각적 욕망에서 오는 재난을 보고 출가한 것입니다. 만일 이번 인도순례에서 바라나시의 밤거리를 보지 못했다면 성지순례는 반감됐을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출가 후에 종교와 사상의 도시 바라나시에서 보냈음에 틀림없습니다. 인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도시이자 모든 사상의 원류 바라나시에서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 바라나시는 부처님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종교의 도시, 종교인의 도시로서의 바라나시는 가장 인도다운, 가장 인도스러운 도시입니다.

이병욱/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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