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평불이 뭐하는 데에요”
“정평불이 뭐하는 데에요”
  • 진흙속의연꽃
  • 승인 2018.05.01 14:0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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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정의평화불교연대와 자주불교(自主佛敎)

“정평불이 뭐하는 데에요?”

정평불 가입을 권유했을 때 흔히 듣는 질문입니다. 질문에 대하여 “재가불교단체로서 불교개혁운동을 하는 곳입니다.”라고 답합니다. 대부분 개혁과 운동이라는 말에 멈칫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평불의 시작

정의평화불교연대, 줄여서 ‘정평불’이라 합니다. 정평법회도 함께 하기 때문에 ‘정평불 정평법회’라고도 합니다. ‘정의’와 ‘평화’를 특징으로 하는 재가불교단체입니다. 발단은 문수 스님 소신공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단지 불교개혁을 외치다 소신한 것이 아니라 완성된 자의 대자대비의 소신공양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불교지식인들과 불교활동가들이 뜻을 함께 한 것이 정의평화불교연대의 시작입니다.

정평불 창립선언문에 따르면 “개인의 이익보다 정의를 생각하고, 불의에 분노하고….”로 시작되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이는 강력한 사회적 실천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여기고 보살행을 실천한다.”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정의로운 세상,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평불이 추구하는 목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정평불이 새롭게 도약하려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정평법회입니다. 매월 한차례 여법한 법회를 통하여 정평불의 정체성을 알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실천입니다. 지금까지 불자들이 개인적인 구복이나 수행에 열중해 왔다면 이제 사회로 눈을 돌려야 할 때 입니다. 마치 심산유곡에서 공부가 된 스님이 저자거리로 내려와서 중생들과 함께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평불의 정체성은 무얼까?

현재 여러 개의 재가불교단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 역할을 하는 곳은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체성입니다. 정체성이 결여 되었을 때 열정은 식어 버리고 동력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시대에 맞는 정평불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정평불 사무총장을 맡았습니다. 재가불교활동 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임에도 중책을 맡겨 주었습니다. 총장 소임을 수락하면서 가장 고민한 것은 정체성입니다. 과연 이 시대에 맞는 정평불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에 대하여 숙고해 보았습니다.

재가불교단체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한국불교의 현실에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승가의 비리에 대한 뉴스를 접했을 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승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로 나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가자의 큰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한국불교

작년 촛불법회가 성황이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촛불법회가 열릴 때마다 천 명가량 되는 불자들이 참여하여 불교적폐청산과 불교개혁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습니다. 종권을 장악하고 있는 권승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최소한 용주사와 마곡사 문제만큼은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문수 스님 소신(燒身) 이래 수 없이 개혁을 요구했지만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오히려 최악의 총무원장을 선출했습니다.

종단의 권승들은 재가불교단체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한국불교는 오로지 비구승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오로지 이익으로 똘똘 뭉쳐진 이익공동체에 이제 철퇴가 내려지려 하고 있습니다. 5월 1일 방영되는 피디수첩이 바로 그것입니다.

조계종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총무원장 스님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방송에 탈 것입니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여 작년 총무원장 후보 설정 스님의 학력사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쓴 바 있습니다.

“허위학력사칭 등으로 점철된 설정 스님이 총무원장이 되면 한국불교의 망신입니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사회분위기에서 허위학력사칭은 국민정서법이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보다 방송 등에서 적폐청산 일환으로서 대대적으로 보도한다면 그 순간 한국불교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진흙속의연꽃, 학력사칭 설정스님은 사퇴하시라!, 2017-09-26)

불행하게도 예견대로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피디수첩에서 낱낱이 밝혀질 때 전 국민은 충격에 빠지고 불자들은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민망할 정도가 될 것입니다.

한국불교에서는 종종 국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백양사도박 사건이 났을 때 정말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이전에는 스님들이 각목을 들고 종권다툼을 했는데 TV로 생중계 되었고 CNN에도 방송되어 국제망신을 당한 바 있습니다.

100명이 결집하면

더 이상 타락한 스님들에게 한국불교의 미래를 맡겨 둘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재가불자들이 나서야 할 때 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화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능력이 탁월하고 훌륭하지만 조직화 되지 않으면 모래알이나 자갈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래와 자갈에 시멘트를 섞어서 물을 부의면 단단한 콘크리트가 되듯이,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재가불자들이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정평불에서는 108명의 정평행자를 모집합니다. 예로부터 100명만 모이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108이라는 숫자를 중시합니다. 108명이 정평행자들이 한 목소리를 냈을 때 권승들도 어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108명이 216명이 되고, 216명이 432명이 되어 배가 된다면 한국불교에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체성입니다.

▲ 정평법회 안내 배너.

여법하게 또는 정의롭게 사는 것

“정의는 밝혀지고 진실은 승리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의는 진실이라는 말과 사실상 동의어입니다. 이는 빠알리어 담마(Dhamma)가 법(法)을 뜻하기도 하지만, 가르침, 진리, 원리, 정의 등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불의에 살 것인가,
정의를 위해 죽을 것인가,
불의에 사는 것보다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이 낫다.”(Thag.670)

<테라가타>에 실려 있는 게송입니다. 명진 스님이 법회에서 즐겨 인용하는 게송이기도 합니다. 고닷타 존자가 읊은 게송으로 <테라가타> ‘십사련시집’에 실려있는 게송 중의 하나입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박사는 “여법하지 못한 삶과 여법한 죽음이 있다.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Thag.670)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여법’또는 ‘정의’라는 말은 빠알리어 ‘담메나(Dhammena)’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담마(Dhamma)입니다.

부처님 ‘가르침(Dhamma)’대로 사는 것이 정의로운 삶이고 여법한 삶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고닷따 존자는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라고 했습니다. 악을 행하지 않고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가르침으로 인한 죽음, 즉 여법한 죽음이 낫다는 것입니다. 여법한 죽음은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아서 여법하고 천상계에 도달하거나 열반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식자들이 칭찬하는 것이라 고 주석(Thag.A.II.280)에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의 정체성은 분명합니다. 여법하게 또는 정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가르침 아닌 것(非法: adhamma)이 득세할 때 이에 편승하지 않는 것이 가르침(正法: Dhamma)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닷따 존자는 “정법으로 불익을 보는 것이, 비법으로 이익을 보는 것보다 낫다.”(Thag.666)라 했습니다.

고닷따 존자는 수년전 소신한 문수 스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테라가타>에서 본 고닷따 존자의 ‘십사련시집’을 보면 마치 한국불교 현실을 나무라는 듯합니다.

시대의 산물 민중불교

누군가 물어 봅니다. “정평불이 뭐하는데 에요?”라고. 이럴 때 불교개혁운동하는 곳이라고 알려줍니다. 더 좋은 것은 정의롭게 사는 곳,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재가단체라고 알려 주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그러나 더 좋은 말은 ‘자주(自主)’라는 말입니다.

‘자주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몇 번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 아직까지 자주불교라는 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2006년 각묵 스님이 범어불전 국역을 주장하면서 불교신문에서 자주불교라는 말을 사용한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불교단체에서 사용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민중불교라는 말은 있습니다. 백과사전에도 실려 있는 용어로서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민중의 고통을 구원하고자 노력하는 운동”라고 요약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1984년에 형성된 민중불교운동연합을 시발점으로 봅니다.

민중불교운동은 시대적 산물이라 봅니다. 암울했던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운동일 것입니다. 그런데 민중불교운동 시발이 전재성 박사였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현재는 빠알리 삼장 번역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암울하던 시절 76년에 개최된 대불련 하계수련대회에서 전재성 당시 대불련 회장이 ‘민중불교운동론’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또 다른 불교를 요구합니다.

한국재가불교의 롤모델 ‘ACBC’

앞으로 한국불교는 이원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가와 재가가 역할 분담하는 것입니다. 재가에서 사찰과 교단의 운영을 맡고 승가는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만 전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가장 이상적인 롤모델이 있습니다. 스리랑카사부대중공동체 ‘ACBC’입니다.

스리랑카 사부대중공동체 ACBC는 ‘All Ceylon Buddhist Congress’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전스리랑카불교도회’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단체는 일종의 교단입니다. 사부대중공동체 교단으로서 재가자가 운영합니다. 승단은 비구와 비구니로 구성된 이부대중공동체입니다. 이렇게 교단과 승단으로 분리 되어 이원화 된다면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보는 것과 같은 승려들의 타락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전스리랑카불교도회(ACBC)는 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작은 미미했습니다. 1919년 콜롬보에서 재가의 지식인들과 불교활동가들이 모임을 만든 것이 시초입니다. 이후 발전하여 1955년 스리랑카 국회에서 법적으로 인정되어 창립 35년 만에 교단으로서 법적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현재 ACBC는 재가불자들이 주도하여 교단을 운영하고 재가자들을 교육하고, 각종 행사를 주도하는 등 사실상 재가불교단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부대중공동체이기 때문에 빅쿠(비구)들도 참여 하는데 감사 역할만 할 뿐입니다. 스리랑카 ACBC는 미래 한국불교, 특히 재가불교의 롤모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시대는 자주불교를 요청한다

시대는 새로운 불교를 요청합니다. 1970년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불교를 요청했고, 1980년대 역시 시대에 맞는 불교를 요청했습니다. 그렇다면 2018년 현재 한국불교에서는 무엇을 요청할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자주(自主)라 봅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는 불교, 자주불교를 요청합니다.

이제까지 신도들은 스님들과의 관계에서 종속관계 내지 주종관계였습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인데 일부 스님들의 이익 추구에 한국불교가 나락에 떨어졌어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설령 목소리를 냈다고 하더라도 찻잔 속의 흔들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PD수첩 취재처럼 외부에서 충격을 주어야 그제야 움직이는 정도였습니다.

불자들이 참여하여 연대하면 한국불교를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는 자주불교를 실현하면 더 이상 추락은 없고 오히려 중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자주불교의 최종목표는 교단과 승단의 분리입니다.

여기 청신사와 청신녀의 재가전문가가 주도하여 사찰의 모든 것을 운영하고 교육하고 행사하는 사부대중공동체의 교단이 있습니다. 이렇게 교단과 승단으로 이원화 되었을 때 한국불교의 개혁은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자주불교일 것입니다. 자주불교를 위하여 정의롭게 평화롭게 사는 것이 정평불의 정체성일 것입니다.

진흙속의연꽃/정평불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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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전수수 라니 2018-05-02 10:43:49
이런데 사용하는게 아닌데...

우바새 2018-05-01 19:44:21
정평불은 재가자의 단체입니다. 잘 알고 말씀하십시오.

명진아 2018-05-01 15:39:59
봉은사 주지할때 강남 룸 살롱 단골 죽쟁이가 무엇을 하겠는가? 나대지 말고 조용히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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