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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에 아직 초의 스님 산다네
[차선생 한유미의 차와 놀자] (20) 연재를 마치며
2018년 03월 28일 (수) 22:05:24 한유미/한국차심평원장 mytrea70@gmail.com
   
▲ 다산초당ⓒ불교닷컴

2014년 여름, 차를 인연으로 정약용 유배지였던 강진 ‘다산초당’에 갔다.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은 소나무 뿌리가 땅위로 드러나 그물처럼 엉켜 울퉁불퉁하다(뿌리길). 가파르거나 험한 산길이 아님에도 사람들의 발을 많이 타서인지 나무뿌리를 밟고 걷는 길이 미끄러워 편치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색적이고 운치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늦은 오후에 도착했는데 방문객이 없어 한적했다. 건물은 새로 보수된 한 채가 전부였고, 마당에는 한 사람이 드러누워 별을 바라볼 수 있는 평평한 큰 돌이 놓여 있었다. 다산은 그 돌을 부조(차 부뚜막: 차를 달이던 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건물 옆에는 다산이 팠다는 연못이 있다.

귀양 이후 마신 차는 치료약 아닐까

정약용은 체증으로 차를 달고 살았는데 다산초당의 분위기도 어딘지 모르게 좀 답답해 보였다. 산속이라고는 해도 마을과 아주 멀리 떨어진 것 같지 않아 귀양살이 치고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아무리 숲속이라고 해도 사방이 막혀 옴짝달싹 하기 힘든 분위기로 느껴졌다. 잠시 머물렀지만 정약용의 화병이 전이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지금의 눈으로, 자연의 무제한 인심과 역사적인 인물들의 자취를 일방적으로 아름답게 칭송들 할 테지만 말이다. 귀양을 가기 전에 마신 차는 정약용에게 분명 즐거움이었겠지만, 귀양 이후의 차는 그에게 그야말로 치료약이었다.

육신을 갉아먹는 것이 어디 마음의 병(화병)뿐이었을까. 읽고 쓰는 일 또한 작은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저술활동을 정신노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체력의 비중이 더 높아져 노동 중의 중노동이다. 귀양 중에 이루어낸 그의 많은 저술을 사람들은, 다산이라는 천재가 아니면 누가 이뤄내겠냐고 감탄 또 감탄하지만, 필자는 순수하게 천재의 학문적 열정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귀양살이지만, 문사(文士)가 책을 읽거나 저술활동을 하지 않으면, 새털 같이 그 많은 날들을, 속된 말로 맨 정신을 하루하루 부지하기 어려워, 살기 위해서라도 머리를 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탁월한 능력이 있기에 ‘할 수 있었음’은 당연했겠지만, 막상 다산초당에 들어서보니 ‘아무리 할 수 있는 것’이었을지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직감이 파고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의 업적이 치열한 생존의 유산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이래저래 육체와 정신의 괴로움을 떠날 수 없어, 차를 달고 살 수 밖에 없는 정황이 눈에 선하여 ‘여러 가지 참 안 됐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다산이라는 호는 차가 생산되는 지역의 영향이겠지만, 중국의 차생산지 이름과 남송의 시인 ‘증기’의 별호가 ‘다산거사’였다고 《속다경》에 나온 데서 힌트를 얻지 않았나 싶다. 정약용은 청대 육정찬이 지은 《속다경》과 당대 육우의 《다경》을 읽고 차를 만드는데 참고하였다.

   
▲ 일지암 연못.ⓒ불교닷컴

다산초당에 다녀온 다음날, 해남 대흥사 일지암을 방문하였다. 차를 직업으로 삼게 된 것도 뜻밖의 우연이었지만 《동다송 주해》를 저술하게 된 것 또한 우연 중의 우연이었다. 어찌됐건 초의스님(이하 초의라 하겠다)의 저술에 얹혀있는 입장에서,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있어 방문하였다.

대흥사 주차장에서 일지암으로 가는 길은 산길치고는 완만한 편이었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는 보슬비 덕분에 아스팔트길이 촉촉이 젖어 차분해 보이고, 길 양쪽에는 비 맞은 큰 나무들이 늘어서 싱그러웠다. 그 싱그러움에 마음이 상쾌했는지 제법 걸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자질구레 널린 것 없는 도량에 탄성”

일지암 도량(절 마당)에 들어섰을 때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부담을 짊어지지 않은 정도의 마음 빚 갚으러 왔다는, 약간 홀가분한 정도 이외의 기대는 없었는데,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암자가 무슨 별천지나 되는 양 눈길을 잡아당겼다. 뭐 하나 자질구레하게 널린 것이 없는 도량이 아담하고 시원하였다(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다를 수 있음). 단정한 소박함이라고 해야 할까. 무례함을 보여서는 민망해지는 그런 정갈함이, 마치 초보 낚시꾼이 첫 낚시에 대어를 낚은 듯 얼떨떨한 기분을 들게 하였다.

한 여름이었지만, 숲의 곤충들도 낮잠을 자는지 적막할 정도로 고요했으나 적적하지는 않았다. 암자를 통틀어 인기척 하나 없어 썰렁할 법도 했건만, 그 적막감마저 따스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당연한 단순한 훈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초의의 초암은 일지암 본체에서 숲쪽 가까운 곳에 따로 있었다. 초가지붕 초암 입구에는 수국봉오리가 생기 있게 몽실몽실 뭉쳐있고, 초암 뒤쪽에는 산에서 내려온 물이 받쳐놓은 대나무를 타고 졸졸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초암 툇마루에 족히 서너 시간을 앉아 있었다. 눈앞은 바로 소나무 숲이어서 시야가 툭 터진 것도 아닌데 하늘이 내려다보고, 이끼 낀 돌을 품어 세월의 깊이를 안은 연못을 들여다보면 함박웃음 절로 번지고, 바람은 수시로 소나무 그네를 살랑살랑 타고 날아와 콧잔등에 맺힌 땀을 날려주었다.

   
▲ 일지암 초암.ⓒ불교닷컴

정겨운 싸리문은 활짝 열려 있어, 사람이 기거하지 않음에도 초암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아랫동네 볼일 보러간 초의가 곧 들어설 것만 같은 현장감(정다움)이 느껴져 하냥 기다리고 싶었다. 작은 방에 당장이라도 친한 벗 서너 명 불러 모아, 돌솥 걸린 부뚜막에 불을 지펴 찻자리를 열고 싶었다. 누구라도 어찌 흥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지암에 아직 초의스님 산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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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 툇마루에
두륜산 구름 같고 소나무 이슬 같은 청빈들 불러 모았다.
육우의 중정으로 우린 차, 흰 찻잔에 넘실넘실 채워 돌리니
자신이 찻물인지 찻물이 자신인지
시를 읊던 초의스님, ‘추사가 목을 메도 돌아가지 않겠다’ 한다.

무릎이 맞닿을 만한 공간에서 벗들과 나누는 정다움, 차 한 잔에 계곡을 담아 마시고, 또 한 잔에 소나무를 담아 마시고, 또 한잔에 달과 별을, 또 한잔에 풀과 흙을, 바람과 새를, 벌과 나비와 꽃을, 구름을……. 대체 몇 잔의 차를 마셔야 두륜산을 통째 마셔 마음에 담을까.

또 초암 바로 옆에는 ‘루’가 있는데 그 또한 일품이었다.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주인이 없어 차 마시는 상상만으로 입맛만 다시다 돌아와야 했다. 이런 경우, 초의가 좋아 일지암이 좋았다기보다 일지암의 매력이 초의를 더 살 깊게 느끼게 했다고 할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끔, 처음 방문한 곳인데도 익숙하여 자신의 집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특별한 장소들이 있다.

찻물 한 방울이 신비한 약물(경액)이 될 때마다 찻잎이 싹트듯 삶도 새로워진다. 일지암은 찻잎의 싹, ‘정화의 처소’였다. /끝.

*연재를 마치며

인터넷이라는 간접 경로를 통해서인지 직접 피부에 닿지는 않으나 1년 동안 과분할 정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차에 대해 필터링 해 주는 공인된 기관이 없어, 미흡하나마 차계의 용어·품질기준 개념을 알리는데 심혈을 기울여 혼란을 최소화하는데 열중했습니다. 자연과학과 자연과학을 기초로 한 인문학적 입장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또 제한된 차 과학지식이 일반생활상식으로 친근하게 자리를 잡아 더 일반화되기를 목표하였습니다.

불교닷컴의 요청으로 얼떨결에 가볍게 시작했지만, 독자들의 관심에 보답코자 식상하지 않으면서 차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주제를 따로 생산하고, 공개질문을 받아가면서 언론과 독자들의 사회참여 소통기여에 사력을 다했으나 부족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또 노컷 지면을 내준 불교닷컴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매체의 특성을 감안하여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관심사를 각별히 선정한 접근성에 나름대로 1년을 집중하였습니다. 집필도 중단한 채 수년에 버금가는 1년의 삶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진정한 그 친절은, 삶이 갉히는 독한 언론투쟁에 미약하나마 기운 돋움에 활용되기를 바라서였는데(이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필자들, 즉 조력자가 ‘되어버린’ 사람들까지도 불교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이 흉흉함. 뉴스로만 듣던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번개 맞은 기분이었음. 기능적 조건이 서로 맞는다면 어느 언론이라도 불이익·편견 없이 활동하기를 부디 희망함), 신문의 전파위력이 워낙 강해 생각지도 못했던 약간의 보람이라는 부산물을 얻었습니다. 다시 한 번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차선생 한유미(韓有美)

   
 

중국 항주다엽연구소(杭州茶葉硏究所) 심배화 선생에게 차심평(Tea Tasting)을 배웠다. 2003년부터 심평과 가공, 차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주해서 《육우다경》과 《동다송·다신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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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시간 : 2018-03-28 22:05:24]  
[최종수정시간 : 2018-03-29 10: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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