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눈앞에 두고 스님들이 단체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불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사회의 목탁이자 인천의 사표를 자처하는 종단 지도자들이 종단이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권력과 유착하는 현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40개의 군소종단 종정과 총무원장 스님 등은 17일 오전11시 프레스센터에서 '한국불교 종단지도자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지지선언'식을 가졌다.
한국불교 종단지도자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게 대부분 이름도 생소한 불교계 소수종단의 대표들 20여명과 재가자 등 모두 4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지선언문에서 "이 후보가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후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올곧게 지켜나가고자 하는 만큼이나 전통문화의 보존과 발전, 그리고 이웃종교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충분히 실천한 것임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며 "2천만 불교도의 적극적인 격려와 지지를 바탕으로 반드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전지 크기의 백지에 "석가모니 부처님, 이명박 대통령 해주세요"라는 자필 선전물을 들고 지지선언문 낭독식에 참석, 실소를 금치못하게 했다.
이날 지지선언문에 이름을 명기한 불교종단 지도자 명단 |
이날 오후3시 대통합민주신당 부산시선대위에서는 부산지역 스님 30여명이 정동영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다.
이에앞서 지난 13일 한국불교 최대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명의의 지지선언도 있었다. 중앙종회의 한 종책모임 소속 등 225명의 스님들은 이날 '제17대 대통령선거에 대한 불교계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부패와 비리를 저질러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공직자들에게 청렴성과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냐"며 "국민들의 일자리와 자녀교육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도덕적이고 깨끗한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정종교에 편향적이지 않고 종교적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남북화해협력정책을 통해 평화적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후보, 차별없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후보, 종교 간 화합을 진정성 있게 실천할 수 있는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각 후보들의 지지선언문에 적혀있는 스님들이 모두 동의했는지 또는 실존하는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한국불교 종단 지도자' 또는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명칭 사용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지 사전에 점검할 수 없지만 몇몇 군소종단 대표들을 마치 한국 불교 전체의 대표자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특히 대한불교조계종의 상표권등을 가진 조계종은 225명의 스님들에게 명칭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고 성명서 내용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문제는 종단이나 종단 지도자의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의사의 공식적인 표명은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손혁재 경기대교수는 <불교평론> 2007.여름호에서 "이제 불교가 산중에만 머무르면서 사회 정치 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어서는 안된다. 불교의 기본 교리가 고통 속의 중생을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종단이나 종단 지도자의 이름으로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불교계가 한국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 '올바른 정치 구현'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며 "정당이나 후보의 정책을 불교계의 관점에서 검증할 수는 있지만 불교계 전체가 특정인을 지지하거가 거부하는 이미지를 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국민들이나 불자들이 원하는 것과 무관하게 종단 지도자들이 종단의 이익이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권력과 유착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실례로 이승만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들의 선거과정과 당선이후 불교계와 정치권의 유착이 보여준 피해를 꼽았다.
승가 내부의 원융화합을 통해 사회통합과 국민의 정신적 평안을 제고해야 할 불교계가 대선판에 이상한 모양새로 뛰어들어 치열한 세대결의 한 축을 형성하는 사태에 대해 불자와 국민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