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값 하는 보이차, 나이 값 못하는 보이차
나이 값 하는 보이차, 나이 값 못하는 보이차
  • 한유미/한국차심평원장
  • 승인 2018.03.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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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생 한유미의 차와 놀자] (19) 보이차의 풋맛

곰팡이 보이차를 함께 마시던 스님이(연재 17회 ‘당신의 보이차는 안녕하십니까’에 등장한 주인공), ‘다른 것은 다 알겠는데 목 넘김이 좀 껄끄러운 감각의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차에 대한 생각이 진지하고 열중해 보였다. 스님의 그 궁금증은 주관적 감각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묵은 보이차를 마실 때 깔깔하게 느끼는 감각이다. 스님과 함께 마신 나이 많은 보이차의 가공스캔은 까다롭지 않아 바로 알아차렸다. ‘그렇잖아도 그것에 대한 원고를 준비 중입니다. 보이차의 신비를 벗겨내는 일 중에 첫 번째가 그것인데요, 곧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많이들 궁금해 하는데 한마디로 해결이 되니 기다려주시지요’하였다.

목 넘김 거북함, 풋맛의 문제

사람들은 묵은 보이차를 마시면서(이 글에서 나이든 보이차 기준을 20년 좌우의 청병으로 한정하였다), ‘좋긴 한데 목에 뭐가 걸리는 느낌이야 뭐지?’라든가, ‘괜찮기는 한데 목 넘김이 좀 거북해 뭐지?’라고 한다. 아직까지 보이차의 품질에 대해 공개 거론한 적이 없고, 차 상인이나 차 생활을 좀 했다는 사람들은, 이거다 저거다 보다는 그저 그러려니 혹은 다수결의 입김 따라(사실상 이익 따라), 혹은 목소리나 돈의 영향력이 큰 사람의 혀를 따라가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묵은 보이차는 세월이 주는 중압감과 홍콩·대만 상인들의 지식정보에 눌려(통속적 상식까지 포함 된) 여간해서는 자신의 견해나 생각의 의심을 일으켜보려고 하지 않는다.

목에 뭔가 걸리는 것 같은 마뜩잖은 감각은, 스님과 함께 마셨던 곰팡이 보이차의 태곳적 태생(가공)에서 비롯된 문제, 즉 ‘풋맛이 순화된 흔적’이었다. 세월이 묵었지만 특히 풋맛의 순화 정도에 따라, ‘나이 값을 하는 보이차’가 되기도 하고 ‘나이 값을 못하는 보이차’가 되기도 한다. 보이차에서도 풋맛의 영향이 그만큼 크다.

스님과 마신 곰팡이 보이차는 습기로 급노화(급발효)가 진행되었어도, 태생이 풋차였다는 흔적이 아주 지워지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풋맛이 순화되면 어떤 감각으로 자극하는지 거의 모른다. 차의 가공과 차의 맛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라는 말을 허투루 넘기면 생각이 막혀버린다. 차를 즐기는 데 깊이가 다른 이유다.

▲ 보이차의 한 종류. 원고와 직접관련 없음.

일반 소비자야 단순히 내 입에 맛있으면 그만이지만, 차는 공산품이 아니어서 맛 품질을 일관성 있게 보증할 수 없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장기저장까지 판단하고 또 관리에도 세심하지 않으면 손실이 크기 때문에 염려하는 것이다. 보이차 풋맛의 엄격함은 녹차보다 덜하지만 어쨌든 풋맛은 불쾌감을 준다.

소위 인급·호급이라고 불리는 보이차들도 거의 풋차로 출발하였다. 가공을 통해 본 그 시대의 보이차 중에서 풋차가 아니었던 차를 찾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묵은 보이차의 풋맛은 시대의 특권으로 앞으로도 계속 눈감아야 하는가? 또 세월에 무조건 대가를 지불하라는 거래에 의심을 하고, 가격에 품질을 반영하는 시점을 언제부터 잡아야 설득력이 있을까.

장사논리에 학습 되어 품질의 본질 외면

중국에서 보이차 등급이 관리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등급은 상품성의 강화가 핵심이다. 지금까지 상업적으로 보이차의 나잇값은 무조건 돈값이었다. 묵은 보이차는 시간이 만들어가는 음료이지만,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제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품질이 무시된 ‘나잇값 못하는 차’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음을 기억할 것이다(‘당신의 보이차는 안녕하십니까’ 편 참고).

묵은 보이차들 가공이 풋차 일색이었기 때문에, 비싼 차였음에도 ‘목에 걸린다’는 마땅찮은 감각에도 비싼 몸값은 소비자의 몫이었다. 목에 걸린 느낌이 썩 매끄럽지 않아도 단맛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서 무미건조한 그저 그런 차들을 맛있음으로 세뇌학습하면서 지금까지 과분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꼭 비싼 가격 때문이 아니라(상인들은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차의 가격은 수요에 따른 시장 나름의 무시 못 할 결정권이 있고, 우리나라 상인을 일부러 염두에 둔 것이 아니므로 무조건 불쾌하지 않았으면 한다. 차는 상인의 문화라고 할 만큼 상인의 주도권이 세고 소비자는 한참 느리다), 맛없는 보이차가 맛있는 맛으로 학습이 되어버리면 개선하기가 정말 어렵다. 차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사실은 초보 입문자보다 더 문제될 때가 많다.

사례를 들어보면, 지금은 천 만 원이 웃도는 차가 된 유명한 병차(둥근 모양 보이차)보다 옛 하관다창(타차로 이름을 날린 중국의 유명한 차공장)의 어느 타차(버섯 자루가 없는 버섯 머리 모양) 샘플이 탁월하게 우수하였다. 그 타차를 사람들에게 우려주면 감동하며 잘 마시다가 타차라고 말하는 순간, 심드렁해지는 표정을 누구누구 가릴 것 없이 수도 없이 보았다. 돈 벌기 편한 상인들의 병차 장사논리에 학습이 되어 품질의 본질을 스스로 외면하였다. 그런 것 말고도 녹차부터 차에 입문한 초보자의 혀가 훨씬 정직하고 정확한 예를 많이 경험하였다.

혀에 익숙하지 않거나 스스로 지어낸 관념의 맛에 갇혀 정상적이고 좋은 차를 밀어내버린다. 맛의 편견이 쌓이면 차를 보는 눈이 암담해져 발전 가능성과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여 장막을 친다. 가성비에 대한 문제는 소비자의 책임이 막중하다. 아직까지는 묵은 보이차가 ‘무조건’ 돈이라는 흐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품질대비 가격에 대한 생각에 불편함과 불만이 따를 것으로 생각되지만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90년대 이후의 차, 무조건 세월 기준은 곤란

앞서 말했듯이 중국에서 1990년대부터 차의 등급관리가 시작되었다. 차는 중국의 국가중심문화산업이어서 90년대부터 품질관리를 위해 국가에서 차농민들에게 심평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우리에게까지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차는 주변부, 즉 비주류문화산업이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차의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 개념이 바뀌었는데 구입 방식이나 생각이 먼 과거에 머무르면 손실이 아닌가. 1980년대까지의 차들은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기에 홍콩·대만 상인들의 일방적 공급 입김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생산된 차는 환경의 다름에 따라 무조건 세월의 기준을 무조건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 보이차병의 모습. 원고와 직접관련 없음.

보이차 시장도 ‘우리들의 질서’로 재편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이 축적되었다. 90년대 차들부터는 홍콩·대만 상인들의 입김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품질에 근거한 상품 선택(무조건 세월 대신)에 대한 환기가 있어야 더 이상 ‘묻지 마 구정물 소비처’로 전락하지 않는다. 품질가치에 근거한 건강한 소비를 생각하자는 의미다.

요즘은 소비자들이 시장경험도 많이 쌓여 선별능력도 있고, 정보를 몰라 무턱대고 타인의 혀를 의지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보이차는 일단 묵혀놓으면 좋아지지 나빠지지는 않아요(발효의 순화를 맛으로 착각한 것을 두고 하는 말), 맹목적으로 세월이 약이라는 정신을 1990년대 차들부터는 적용을 하지 말자는 얘기다.

‘기아 상태’의 나이 값 못하는 보이차

90년대 차중에서 나이 값 못하는 대표적인 차를 꼽으라면 ‘1998년 이무 동경호’를 들겠다. 세월의 가치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대표적인 차라고 생각해서다. 이 차에 대해 한 회를 독립적으로 다루려고 했는데 연구샘플이 부족하여 잠깐 언급만 하게 되었다.

국제규정에 근거한 심평(차 품질 관능검사) 결과, 수용성 침출물(차탕)에 맛이라는 내용이 아예 없다. 마치 ‘건더기 없는 멀건 국 국물’과 같아, 싱겁고 맛없기가 세월이 무색할 정도다(70~80년대 차들 중에서도 이런 차들이 많다. 세월과 발효의 최면에 걸려 소비자가 잘 모르고, 소비자 역시 세월의 신비를 벗겨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침묵이 더 길었다). 일명 ‘영양실조 보이차’이다. 영양의 균형비가 안 맞는 정도가 아니라, ‘기아 상태’에 놓인 차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녹차의 풋맛을 딱 꼬집어 문제 삼은 것이 2000년대 말~201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녹차 풋맛 문제 지적은 한중간의 많은 교류와 시장의 확장으로 당연히 보이차 가공에도 영향을 미친다. 풋맛을 문제 삼기 전에는 풋맛을 향기로운 햇녹차의 특징으로 알고들 있었다. 차 우리는 온도는 일본차 온도를 참고하여 우리의 차 포장에 그냥 형식적으로만 새겨놓을 뿐이었고, 국제통용의 차저울이 따로 있는 줄 그 누구도 몰라, 그런 일부터 하다 보니, 보이차의 품질거론은 까마득하여 지금에야 이르렀다.

2013년 무렵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서 생산해 들어와 판매하는 보이차 중에서 서서히 풋맛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서너 종류 샘플로 확인하였다. 2005년에 타이완에서 처음으로 풋맛이 없는 보이차 가공 샘플을 구입하였다. 차에 관한한 확실히 대만이 앞선다. 대만의 자본과 기술이 중국에 들어가서 만들어 나온 제품이었기에 가능했지, 그 당시 중국 전통가공의 보이차들, 특히 농가 수제품의 품질 균일도는 제멋대로 널뛰기였다. 영문도 모르고 묵은 보이차든 햇보이차든 그 풋기로 인해 위장에 자극 받아 고생한 사람들 수도 없을 것이다(땡감을 먹었을 때 속이 오그라드는 이치를 생각해보라).

처음의 주제로 다시 돌아와 정리해보면, 햇보이차를 마시면 우리는 풋맛인지 아닌지 이제는 쉽게 안다. 그러나 그 풋맛이 세월의 풍상을 거치면서 어떻게 발효 속에 고물고물 몸 보존을 하면서, 세월의 위세에 슬그머니 묻어가는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20여년이 넘은 차의 풋맛 흔적은 햇차의 풋맛처럼 분명치 않아서이다. 따라서 막연히 거슬리는 감각(근거 있는 경험), 목 넘김이 매끄럽지 않았던 이유는 풋맛이 원인이었음을 밝혔다.

차선생 한유미(韓有美)

중국 항주다엽연구소(杭州茶葉硏究所) 심배화 선생에게 차심평(Tea Tasting)을 배웠다. 2003년부터 심평과 가공, 차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주해서 《육우다경》과 《동다송·다신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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