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해석하려면 어순 고려해야
바르게 해석하려면 어순 고려해야
  • 안재철 교수
  • 승인 2017.11.20 10:1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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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안재철의 열린강원 8. 한문의 올바른 번역을 위한 제언

다음은 그것들의 통합관계로 이루어진 漢文한문의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어에서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라는 의미를 전달하는데, 설령 “사랑한다. 나는 그녀를”이나,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이라고 기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의미가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 줄 모르는 일은 없다.

또한 영어로 “I love her.”라고 써야 할 것을 “love I her”나 “I her love”라고 쓴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이해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한자로 쓰인 문장은 “我愛她아애저”라고 써야 할 것을 “愛我她애아저”나 “我她愛아저애”라고 쓴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 줄 모를 뿐 아니라 “她愛我저애아”라고 쓰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되어 전혀 다른 의미가 되고 만다.
즉 한자로 쓰인 문장은, 그것이 문장투의 글인 文言文문언문이거나, 입말인 白話백화를 막론하고 반드시 어순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중국에서는 문법이라고 하면 단어의 뜻, 그 중에서도 특히 ‘以, 爲, 與…’ 등과 같은 虛詞허사의 뜻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훈고학이라는 이름으로 단지 “A, B也”와 같은 방식으로 단어의 뜻을 설명할 뿐, 문장성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1898년 馬建忠마건충에 의해 쓰여진 중국 최초의 문법서인 <마씨문통>이 출간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統辭構造통사구조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상황조차도 이러한데 하물며 한국의 상황이야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이와 같이 통사구조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가 늦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해석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해석조차도 간혹 잘못된 것이 보인다.

<六祖法寶壇經諺解육조단경법보언해>에서 이것을 간과한 해석을 들어보자.

譬如大龍이 下雨於閻浮提ᄒᆞ면 城邑聚落이 悉皆漂流호되 如漂棗葉ᄒᆞ고 若雨大海ᄒᆞ면 不增不減ᄐᆞᆺᄒᆞ야 若大乘人과 若最上乘人괘 聞說金剛經ᄒᆞ면 心開悟解ᄒᆞᄂᆞ니
【諺解】가ᄌᆞᆯ비건댄 큰 龍이 閻浮提예 비ᄅᆞᆯ ᄂᆞ리오면 城邑과 聚落이 【聚落은 ᄆᆞᅀᆞᆯ히라】 다 ᄠᅥ 흘로ᄃᆡ 木棗ㅅ 닙 ᄠᅳᄃᆞᆺᄒᆞ고 ᄒᆞ다가 大海예 비오면 더으디 아니ᄒᆞ며 더디 아니ᄐᆞᆺᄒᆞ야 ᄒᆞ다가 大乘人과 最上乘人괘 金剛經 니ᄅᆞ거든 드르면 ᄆᆞᅀᆞᆷ을 여러 아ᄂᆞ니

【諸飜譯】비유하건대 큰 용(龍)이 염부제(閻浮提)에 비를 내리면 성읍(城邑)과 취락(聚落)이 【취락(聚落)은 마을이다.】 다 떠서 흐르되, 대추나무의 잎 뜨듯하고, 만약 대해(大海)에 비가 오면 더하지(늘지) 않으며 덜지(줄지) 아니하듯 한 것과 같다. 만약 대승인(大乘人)과 최상승인(最上乘人)이 「금강경」을 설하거든 들으면 마음을 열어 깨닫느니

‘如漂棗葉여표조엽’를 諺解언해는 “木棗목조ㅅ 닙 ᄠᅳᄃᆞᆺᄒᆞ고 (대추나무의 잎 뜨듯하고)”와 같이 해석하고 있는데, 그와 같이 해석코자 한다면, ‘대추나무의 잎(棗葉)’은 주어이고, 더군다나 ‘漂표’는 自動詞자동사이기 때문에, 어순은 마땅히 ‘如棗葉漂여표조엽’이 옳다.

따라서 어순이 굳이 ‘如漂棗葉’인 것은 그것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漂’의 語彙的意味어휘적의미는 ‘떠돌다’이기 때문에 自動詞자동사라고 할 수 있다. 自動詞란 본래 目的語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동사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그 뒤에 목적어를 쓰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나 위 문장에서 ‘漂’는 自動詞자동사임에도 불구하고 目的語목적어를 취하고 있다.

한문에서는 이렇게 自動詞자동사(形容詞형용사나 名詞명사 등등도 같다.)가 目的語목적어를 취하면, 그 自動詞자동사는 使動사동동사나 意動의동동사의 의미가 드러나도록 해석해야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마치 대추나무의 잎을 띄우듯 하고”라고 해석하여야 하는 것이다.

또 ‘心開悟解심개오해’를 諺解언해는 “ᄆᆞᅀᆞᆷ을 여러 아ᄂᆞ니 (마음을 열어 깨닫느니)”라고 하여 마치 ‘心’을 열어(開) 깨닫는(悟解) 대상(목적어)으로 간주하였으나, ‘心’은 主語주어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被動피동의 의미로 “마음이 열려 깨닫느니”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마치 흠을 찾으려고 털을 부는 것과(취모멱자吹毛覓疵)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해석을 위해서는 意譯의역(한국어 ‘의역’의 상대어는 ‘音譯음역’과 ‘直譯직역’이 있다. ‘直譯직역’의 상대어인 ‘의역’은 ‘意譯의역’이지만, ‘音譯음역’의 상대어인 ‘의역’은 ‘義譯의역’이 옳다. 이것에 관한 論議논의는 훗날의 글에서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이라는 이름으로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위를 참조하여 다시 해석해보면 아래와 같다.

비유하건대 큰 龍이 閻浮提에 비를 내리면, 城邑과 聚落이 【취락(聚落)은 마을이다.】모두 떠서 흐르되, 마치 대추나무의 잎을 띄우듯 하고, 만약 大海에 비가 오면 더하지도 줄지도 아니하듯 한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만약 大乘人 혹은 最上乘人이 金剛經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닫나니,

   
 

안재철 교수(제주대)는 광주서중, 광주일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중국음운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이다. 저서에는 <수행자와 중문학자의 만남 『緇門警訓의 문법적 이해> <수행자와 중문학자의 만남 『禪源諸詮集都序의 이해』> <수행자와 중문학자의 만남 『禪要(上·下)』> <『本義로 이해하는 540部首 漢字』> <『本義로 이해하는 상용한자 1200』> 등이 있다. 여러 저서 가운데 <수행자와 중문학자가 함께 풀이한 『金剛經』>과 <수행자와 중문학자가 함께 풀이한 『無門關』>는 수암 스님(현 태고종 중앙강원 대교과 강백)과 함께 지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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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2017-11-27 11:36:24

金剛經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닫나니, 그러므로 [이와 같이] 알 것이다. 本性에는 본래부터 般若智가 있나니, 스스로 지혜를 써서, 언제나 觀照하는 까닭으로 文字를 빌지 아니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빗물이 하늘로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본디 龍이 능히 일으킬 수 있어서, 一切의 衆生과 一切의 草木과 有情·無情이 모두 적시게 하고, 온 냇물의 모든 흐름은 결국 大海에 들게 하여, 합하여 한 體가 되는 것과 같으니, 중생의 本性인 般若의 智慧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안재철 2017-11-27 11:34:43

善知識아, 만약 심히 깊은 法界와 반야삼매에 들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般若行을 닦아 金剛般若經을 지녀 외우면, 곧 見性할 수 있을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功德이 無量無邊하여, 經 가운데에서 분명하게 讚嘆하셨으니, 능히 갖추어 이르지 못할 것이로구나(이를 다 말할 수 없느니라). 이 法門은 最上乘인지라, 큰 지혜가 있는 사람을 위해서 이르며, 上根人을 위해서 이르신 것이다. [그러므로] 根機가 작고 지혜가 얕은 사람이 들으면, 마음에 믿지 아니함을 낼 것이니, [이는] 어찌해서인가?

안재철 2017-11-27 11:32:52
이 글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문장은 비유를 든 것이어서, 앞 뒤를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해석을 정확히 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습니다.
번역의 종국의 목적은 내용파악을 정확히 하는 것이며, 정확히 번역하고자 노력하였지만, 이와 같이 이해하기가 쉽지않은데, 번역이 잘못되기까지 한다면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설봉 2017-11-25 12:10:38
이것이 한 단락의 문장이라면 도무지 뭔 뜻인지 모르겠음, 앞의 대룡의 일과 뒤의 대승인이며 최상승인의 깨달음이 뭔 관곈지 이해되지가 않음. 글자 한자조차 경을 이루는 경인데 이렇게 많은 글자들의 경이 구태여 일어선 경으로서의 진리의 진실을 알 수 없게 해석되어지는 것이란다면 혹 문법에 치우쳐 문법이 가르키는 육조의 생각을 놓치는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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