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혜개의 표문
신무문관: 혜개의 표문
  • 박영재 교수
  • 승인 2017.10.23 09: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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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30.

성찰배경: 그동안 지금까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무문혜개 선사께서 <무문관無門關>을 출간하면서 이종 황제에게 바치는 ‘표문表文’을 함께 실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무문관>의 출현 의의에 관한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당시 불교를 적대시 하는 사대부들조차 경건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황제의 연호年號가 담긴 <무문관>의 ‘표문’과 그 의의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혜개慧開의 표문表文

소정紹定(남송 이종理宗 황제의 연호) 2년인 1229년 정월 초닷새에 경건하게 천기성절天基聖節(황제의 탄생일이나 즉위일 같은 기념일)을 맞이하여 신하승[臣僧] 혜개는 미리 지난 해 십이월 초닷새에 석가세존과 역대조사들의 기연機緣들 가운데 48칙을 골라 뽑아 이를 책으로 엮어 축연 드리며, 아울러 금상 황제 폐하의 성체가 만세! 만세! 만만세! 지속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황제 폐하의 지덕총명함은 해와 달과 같이 밝고 그 성수聖壽는 하늘과 땅과 같이 무궁하여, 팔방八方에 폐하의 덕이 두루 퍼져 유도有道의 덕德을 노래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천하天下가 모두 그 덕화德化를 입어 어진 정치政治를 누리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염원 드립니다.

(이종 황제의 어머니인) 자의황후慈懿皇后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보인우자선사報因佑慈禪寺의 전주지前住持 전법제자傳法弟子 신승臣僧 혜개慧開 삼가 글을 올립니다.

제창提唱

종달 선사의 <무문관>(보련각, 1974년)은 근대 들어와 출간된, ‘표문’까지 포함한 최초의 한글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출간된 대부분의 국내 <무문관> 한글본의 경우 최근에 출간된 몇몇 한글본들을 제외하고, 거의 표문을 다루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 표문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봅니다.

잘 아시다시피 선풍禪風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던 당唐 나라 시대의 경우 세속을 떠나 출가한 선승禪僧들은 황제에게도 절하지 않는 전통을 지켜 왔었습니다. 더 나아가 국사國師로 모신다고 하여도 이에 잘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송宋 나라 시대에 이르러 역량 있는 선승禪僧을 주지로 임명하는 오산십찰五山十刹 제도를 통한, 엄격한 관치官治 불교 시대가 전개되면서 출가승도 신하의 한 부류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표문’을 통해 황제가 통치하고 있는 송나라에서 혜개 선사 자신 역시 신하임을 드러내고 있는 ‘신하승[신승臣僧]’이라는 표현은 시대적 상황에 잘 부응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얼핏 보면 승려 계층이 황제의 신하인 위치로 전락한 것 같으나 실질적으로 그 의의는 긍정적인 면에서 매우 크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무문관>이란 저서에 ‘소정紹定’이라는 이종 황제의 연호가 들어감으로 해서 고위 관리들도 이 책을 함부로 다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황제에게 바친 책이기 때문에 책 내용도 무엇인지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목판 인쇄술이 발달했던 이 남송 시대에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대량으로 간행된 <무문관>이 중국 천하에 널리 유포됨으로써, 간화선看話禪의 원류인 오조법연 선사가 새롭게 제창한 ‘무無’자字 공안을 자연스레 널리 참구케 하는 계기도 되었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법연 선사의 법을 이은 <벽암록碧巖錄>의 저자이기도 한, 원오극근 선사의 수제자인 대혜종고 선사가 지은 <서장書狀>을 통해 잘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이 정신을 더욱 계승 발전시켜 사대부들의 서신왕래를 포함한 입실점검入室點檢 지도를 바탕으로 간화선 수행 체계를 확립하였습니다. 뒤 이어 <대혜어록>을 포함한 이 <서장>을 디딤돌로 삼아 선종 최후의 공안집이라고 할 수 있는 <무문관>을 저술한 무문혜개 선사에 의해 완결된 간화선 수행법이 마침내 중국 천하로 급속히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한편 송대宋代는 관치불교官治佛敎 시대라 출가승도 백성[臣下]이기 때문에 ‘신승臣僧’이라는 호칭을 자연스레 쓰고 있으나, 그러면서도 ‘황제의 할 일은 백성들을 편안케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표문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앞 글에서 언급했듯이 무문혜개 선사는 남송 시대 가운데 매우 무능했던 이종 황제 시대를 살면서, 부디 황제께서 정신 차려 백성을 돌볼 것을 간절히 염원하며 <무문관>을 간행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참고로 혜개 선사는 스승인 임제종 양기파의 주류였던 오조법연 선사 계열의 월림사관月林師觀 선사 입적 다음해인 1218년 스승의 뒤를 이어 황실과 깊은 인연이 있는 보인우자선사에 주지로 부임한 것으로 미루어 그가 역량을 갖춘 대선사였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 군더더기: 보다 널리 읽히게 하기 위해 황제의 권위까지 동원해 출간한 이런 정신은 오늘날의 현실에도 지혜롭게 잘 적용할 수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사실 오늘날은 민주화 시대가 되면서 출판비용만 마련되면 누구나 출판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선불교禪佛敎에 관한 서적들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출판물들이 자신의 선적禪的 체험과 스승의 인가印可를 바탕으로 쓴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발췌해 짜깁기 식으로 책을 편집하거나, 또는 자신의 부족하고 편협한 체험을 바탕으로 책을 임의대로 저술해 초심자들을 지속적으로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선서禪書 출판에 관한 한, 선불교 분야에 몸담고 있으면서, 깊은 통찰 체험과 이를 바탕으로 일상적인 삶 속에서 언행일치言行一致의 나눔 실천적 삶을 살고 있는 역량 있는 분들로 이루어진, 심의기구를 통해 선정된 우량 선서를 신뢰받는 언론매체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적극 추천하는 제도를 확립한다면 적지 않은 엉터리 저작들의 과대 과장 광고를 포함한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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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손바닥소리 2017-11-11 20:20:20
교수님~
질문 : 외짝 박수소리는 그냥 저냥 들을만 합니다.ㅎㅎ근데 세 손바닥소리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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