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그 지구촌 이야기
야마구치, 그 지구촌 이야기
  • 이원영 교수(수원대)
  • 승인 2017.09.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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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의 생명·탈핵 실크로드
야마구치에서 순례단을 환영하는 주민들과 함께.

야마구치에서 순례단을 환영하는 주민들과 함께.

 

‘로마까지 걸어간다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지난 6월 궁금해하던 일본의 한 사람이 지금 생명·탈핵 실크로드(이하 생명로드) 도상의 라오스에 와서 함께 걷고 있다. 지구촌 안전을 꾀하자는 근본 뜻을 알고는 자신의 일을 잠시 접고 로마까지 도우면서 2년간 순례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의 출신지는 야마구치(山口)다. 이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메이지 유신의 본고장이기도 하고 아베 신조 총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생명로드에서 알게 된 사실들이 더욱 인상 깊다.

단연 첫 번째는 조세이(長生) 탄광 사고다. 최근 상영된 영화 <군함도>보다 ‘막장’스러운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1942년 2월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있던 이 탄광에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이 일시에 수몰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조선인 강제 연행조사 기록>(朝鮮人 强制連行 調査の記錄)을 인용한 글(박인식)에는 “조세이 탄광은 해저탄층이 해안선에 따른 얕은 지층에서 채굴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갱도로 내려가면, 바로 머리 위가 바다이므로 노동자들은 무너질까 봐 두려움에 떨었고, 작업을 멈추고 도시락을 먹고 있으면, 머리 위에서 어선이 지나가는 엔진 소리가 나고, 스크루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똑똑히 들리므로 언제 천장이 무너질 것인가에 늘 공포에 떨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심각한 문제는 이 좁은 바다에서 석탄을 캐다가 이미 1911년, 1915년, 1921년 세 차례에 걸쳐 수십명을 수몰하는 사고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석탄을 캐도록 했다는 것이다. 억장이 무너진다. 이건 알고 죽인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의 죄질이 너무나 나쁘다. 책임을 누가 져야 하나? 이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걸린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겪고도 아베 정권이 핵발전소를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 그리고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까지 겪고도 인류가 또다시 핵발전소를 추진하는 것. 야마구치와 지구촌은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야마구치현 ‘가미노세키’에 원전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주고쿠전력과 일본 정부에 의해 오래전에 세워졌지만 주민들의 줄기찬 저항 때문에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중단되었던 곳이다. 그곳이 최근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원전 건설을 위한 관련 공사가 재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원전사업자 측은 여전히 추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해녀투쟁’과 같은 방식을 동원해 무려 30년이 넘도록 싸우고 있다. 상상 이상의 기간이다. 이 투쟁의 추이와 결말이 일본 탈원전을 가늠하는 리트머스다.

세 번째는 주민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다. 야마구치는 한반도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곧바로 피해를 입는 지역이다. 그리고 이번 생명로드의 도상에서 생명존엄과 탈원전의 뜻에 가장 뜨겁게 호응해준 동네이기도 하다. 야마구치현을 걸어가는 일주일 동안 하루 20㎞ 순례를 마치고 난 저녁시간이면, 모이는 이들은 기존 평화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과 생명존엄을 중시하는 일에 대한 관심이 컸다.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대표적 지식인으로서 조세이 탄광을 안내해준 모 교수를 필두로, 신부님과 스님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필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특히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모노세키에서 ‘일본과 코리아를 맺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어느 주민은 생명로드를 널리 알리고 도와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금 함께 걷고 있는 이의 동참도 주민의 열정이 낳은 작품일 것이다.

야마구치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지구촌의 일부다. 그 사연들은 생명로드상에서 날줄로 엮여서 새로운 에너지로 모일 것이다.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다. 야마구치에서 이기면 지구촌도 바뀐다고.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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