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존·상생해야 할 차계지만 개인 다원들이 대기업에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으로 자명하다. 하지만 세상이 꼭 자명한대로 돌아가지만은 않는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그 기업이 늘, 다 잘 된다고 확신할 수 없다(차에 관계된 부분에 한해서). 하기에 따라서 어느 중견 다원의 비용 대비 순이익이 더 알찰 수도 있다.
처음으로 가공에 손을 댔을 때, 태평양 한라진 세작(지금은 이 상품이 없음)을 샘플삼아 차를 만들었다. 융통성 있고 소탈한 어느 다원 공장장의 배려가 있었다. 시설도 좋고 모든 환경조건이 넘치도록 좋은 다원이었고, 최상의 원료를 사용하는 다원이었지만, 그 다원에서 만든 차는 맛이 없어 마시지 않았다. 좋은 등급을 쓰면서도 기술에 자신이 없어(혹은 몰라서) 제대로 가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한번의 기계가공으로 한라진 세작과 1점 차이로 따라붙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엔지니어 아닌 엔지니어가 된 것도 처음이었다. 객관적 기준 샘플이 없으면 막연할 것 같아 한라진 세작을 기준 샘플로 제시했다. 맛의 개념이 많이 알려진 지금은 굳이 똑같은 차를 찾을 필요는 없다. 대기업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도전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만약, 그 다원이 꾸준히 가공기술을 받아들여 차를 생산했다면, 설령 한라진 세작보다 품질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가격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으므로 시장 점유율을 넓힐 수 있었다. 그랬다면 지금 소개하는 국민녹차 오설록 세작(80g 40,000원. 7월 17일 인사동 지점에서 구입) 대신 그 다원의 차가 소개되고 있을 것이다.
가공수업을 한번 해본 그 다원의 공장장은 발전가능성에 고무되어 기술을 배우고자 했지만, 다원대표의 무관심으로 씨도 들어가지 않더라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차계에 어중이떠중이들로 인한 불신감이 깊어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차이는 대안이 있냐 없냐로 판단할 수 있다. 아픈 사람을 보고 아프다는 것을 일반인이나 의사나 다 알지만, 일반인은 해결을 하지 못한다. 의사가 치료를 하는 이치와 같다. 위기대처 능력이나 가공 해결능력 없는 사람들이 메뚜기처럼 들쑤시고 다녀 불신감을 주고, 그 불신감이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는 사례가 그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싫증나지 않고, 균일한 맛, 꾸준한 생산이 장점
또, 꼭 그 다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개인 다원 차중에서 지금 소개되는 오설록 세작과 품질이 같은 정도가 있다면 그 차를 먼저 추천했을 것이다. 십수 년 동안 직·간접적으로 품질에 대한 주장을 꾸준히 제기했고, 조언했음에도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가 없음을 감안해볼 때, 마시는 즐거움을 주는 오설록 세작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싫증나지 않고 균일한 맛이 꾸준히 생산되는 이 차의 장점을 숨길 필요가 없다.
원료, 생산시설, 가격 경쟁력 등을 생각하면 대기업에 도전장을 내밀어보거나, 질 좋고 가격 좋은 차 생산에 유리한 곳은 농협이라고 생각한다. 가공원리를 먼저 알아야 능력이 생기고 품질을 유지하는데, 사람들은 단 한 번의 기계세팅 해주는 것을 보고 그대로 흉내내어 이익을 얻고 싶어 한다. 한 번 또는 몇 번의 눈치로 차를 잘 만들 수 있다면 누군들 고뇌하고 살까.
진정한 ‘맛있음’에는 선입견 작동 안 돼
수년 전, 필자의 가공지도로 어느 농협에서 차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시음을 시킨 적이 있다. 증제차였음에도 반응이 좋아 순식간에 몇 킬로그램이 없어졌다. 소비자가 맛에 대한 객관적 감각을 모를 때 덖음이니 증제차니 선입견이 작용하지, 진정한 ‘맛있음’ 앞에서는 그런 편견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녹차는 가공방법에 따라 증제차와 덖음차가 있다. 증제차는 ‘신선함’이 특징이고, 덖음차의 특징은 ‘감칠맛’이다. 차의 선택은 개개인의 기호에 따라 다르다. 진정한 기호란 최소한의 품질을 보증한 차들의 세계에서 향유하는 선택의 자유, 상품들의 이야기이다. 기본적인 품질을 갖추지 않은 차(상품이라고 할 수 없는, 차를 차라고 할 수 없는 불량 차)를 선택하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품이라는 말은 수익성의 도구라는 뜻이다. 차계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수익을 보면서 차를 상품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품질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음을 예전에도 거론한 적이 있다. 차 문화든 산업이든 차에 관계하여 삶을 지탱하는 사람들은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와 상관없이 차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방적으로 얻어먹는 사람들 말고는 없다. 그런 사람들의 차는 나물거리라 한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품질을 바탕으로 삼기 이전의 개인적 취향을 절대적 가치(나물거리 차에 해당되는 차의 취향)로 여긴다면, 굳이 품질을 논할 필요가 없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 글은 쓸모가 없다. 차계에는 이상한 망상들이 있어 차를 상품으로 대하지 않는다. 주제가 맞지 않아 더 이상 여기서 거론은 하지 않겠지만, 품질에 대한 개념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차생산자 기술 터득 ·차다운 차 널리 알렸으면
우리나라 차 중에서 곰팡이가 핀 차들이 발효차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팔리는 것을 두 종류나 보았다. 보이차나 떡차를 흉내내어 만든 것인데 만든 사람은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선물 받은 사람 외에 여러 사람이 함께 보았다. 다인임을 내세우며 드러내놓고 영업을 하지 않으면서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만든 차들 중에 그런 제품이 있었다. 두 종류 다 단체 납품용이었다.
차선생을 하면서 2가지의 목표를 겨냥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목표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차생산자에게 기술이라는 개념을 터득케 하여 차품질을 변화케 하고 싶었다. 최소 불쏘시게 역할은 확실히 했다. 두 번째 목표는, 소비자에게 기술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차다운 차’, 국민녹차(또는 국민녹차로 등극케 하려는 목적)를 알리는 일이다. 이 글을 쓴 목적이기도하다. 소비자에게 차에 좋은 물을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보이차에 좋은 물’ 원고를 썼던 것처럼, 차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국민녹차는 지속성·유명세…브랜드 가치도
국민녹차라는 타이틀이 붙으려면 몇 가지 조건에 맞아야 한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지속성’의 가치다. 그래야 다가온 소비자를 잡아두고 유지할 것 아닌가. 대기업과 개인 다원을 운영하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기술 외에도 인식의 차이가 컸다. 경험적인 인식은 대기업 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데도 말이다.
또, 유명세가 있어야 한다. 무조건 대기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녹차를 생산하는 회사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말한다. 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폭이 그리 넓지 않아서인지 차를 생산하는 대기업이 있다는 사실과 우리나라에서 차가 생산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렇게 여러 가지 가망이 없는 차계에 오설록 세작이 분투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 것은, 우리의 볼품없는 차산업계의 현실을 반영해서였다.
공정성을 담보로 하는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오랜 세월 많은 경제적 이익을 포기했다. 개인 생산자를 차산업의 주춧돌로 생각하여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가격대비 품질이 떨어지는 녹차의 공개심평을 미룬 일(일찍 했다면 소비자나 사회적으로 훨씬 도움이 되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원을 받지 않는 일, 끝이 없는 개인적인 무보수 조언 등이다. 소비자를 보고 가는 이 글의 진심이, 차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들의 불쾌감으로, 혹시라도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짚어보았다. (5회까지 이어집니다).
*공개 질문을 받습니다. 댓글에 질문을 달아 놓으시면 주제들을 선별하여 소비자나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토록 하겠습니다. 실물을 다루는 분야의 한계로 부득이 질문을 선별해야 함을 양해바랍니다.
차선생 한유미(韓有美)는
중국 항주다엽연구소(杭州茶葉硏究所) 심배화 선생에게 차심평(Tea Tasting)을 배웠다. 2003년부터 심평과 가공, 차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주해서 《육우다경》과 《동다송·다신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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