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원전 백지화’ 베트남을 걸으며
[이원영] ‘원전 백지화’ 베트남을 걸으며
  • 이원영 수원대 교수
  • 승인 2017.08.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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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실크로드 석달 만에 1400km 베트남 도착
▲ 하노이 근처에서 순례 중인 필자(가운데)에게 생수를 사준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회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표면화되지 않은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전의 위험이다. 반세기 동안 강대국들과 전쟁을 해서 물리친 베트남으로서는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전은 폐연료봉을 식히는 장치에 전원만 중단되어도 문제가 생긴다. 전시라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폭발이 일어나기 쉽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핵사고의 치명적인 문제는 오랫동안 토양이 오염된다는 것. 농업국가인 이 나라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다. ‘대안 있는 불편’이 ‘생존의 위협’을 넘어설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가? 안보를 중시한다는 일부 보수언론이 무엇보다 이상하다. 무엇이 보수란 걸까? ‘값싼 원전’을 외치는 그들에게 원자력공학 전공의 박종운 교수는 일갈한다. “핵폐기장 조성비와 폐로·사고처리 비용을 타국 수준으로 반영하면 원전의 발전단가는 훨씬 비싸진다. 원천기술도 없는 원전산업을 성장산업으로 과장해서 호도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상식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그들에게 권하고 싶다. 베트남에 와서 상식과 안보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기를.

*이 글은 <경향신문> 8월 12일자에 먼저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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